캐나다 군은 2001년 말 현재 5만여명의 현역 병력으로 짜여져 있다. 한국과 같은 특수 상황이나 세계 경찰을 자처한 미국과는 애초부터 비교할 수 없지만, 인구(약 3100만명)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비춰볼 때 캐나다 군의 규모가 너무 초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서 냉전의 긴장이 정점이었던 1960년대 캐나다 군은 11만명에 이르렀으나 그 뒤로 지금까지 줄곧 감축됐다. 역대 연방정부는 재정적자 해소의 단골 처방으로 군 규모를 줄여왔다. 당장 쳐들어올 적이 없는 상황이니 국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웬만한 소신이 아니면 입을 닫아버렸고, 국민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면서도 캐나다는 세계의 분쟁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빠짐없이 보내, 개근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다. 이런 캐나다에 국내 방위를 위해 군의 ‘근육’을 과시해야 할 현안이 생겼다. 바로 북극권에 대한 주권 수호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의 탐험가들이 서쪽으로 항해해서 아시아에 이르려다가 발견한 땅이 신대륙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대륙이란 꿈의 땅 아시아에 이르는 뱃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당시는 중국의 문화가 서양을 앞질러 있었고 금과 비단, 향료가 넘치는 땅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동경은 열렬했다.
10~20년 후 상업적 항해 가능 예고
유럽 사람들은 신대륙이 북미에서 중미를 거쳐 남미까지 한 덩어리로 이어지지 않고 그 중간 어딘가에 아시아로 빠져 나가는 통로가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로 그런 통로가 없어 근세에 인위적으로 만든 뱃길이 파나마 운하다. 질러가는 뱃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유럽인들, 그중에서 특히 영국인들은 신대륙의 북쪽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신대륙의 남쪽(남미 대륙의 끝)을 돌아 태평양으로 빠지는 항로는 1521년 마젤란에 의해 개척됐으나 유럽에서 가기엔 여전히 멀었고, 스페인의 강력한 무적함대가 견제하는 길목이어서 다른 나라가 이용할 엄두를 못 냈다.
유럽 사람들은 신대륙의 북쪽을 우회해 아시아에 이르는 미지의 뱃길을 ‘북서통로’(Northwest Passage)라 불렀다. 북서통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그러나 매번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결론은 이렇다. 대서양에서 캐나다 북쪽의 북극권 섬들을 돌아 나가면 태평양에 이를 수 있지만 그 바다는 연중 대부분 얼어 있는 상태고, 설사 잠시 녹는다 해도 떠다니는 얼음덩이 때문에 항해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북서통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초 북서통로가 현실성 없는 뱃길임이 확인됐지만 영국은 거의 무인도인 북극권 섬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위해 탐사를 계속했다. 이 노력의 결과로 영국의 주권을 ‘분양’받아 탄생한 캐나다가 그린랜드 서쪽 북극권의 모든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북서통로는 준엄한 얼음길이다. 이 금단의 뱃길에 1903년 노르웨이 사람 아문젠이 도전했다. 그는 북서통로의 동쪽 끝에서 배로 출발해 3년의 각고 끝에 태평양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가 최초의 북서통로 완주자다.
그러나 인간의 접근을 완강히 막아온 북서통로의 사정이 근년에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다. 북극권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 머지않아 경제성 있는 항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예고까지 나왔다.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극권의 만년얼음 면적이 1078년 이후 10년에 3%꼴로 줄고 있다고 캐나다 기상청 얼음측정팀장 존 포킹검씨가 2년 전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1999년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북극의 만년얼음층 두께가 1958년에 비해 40%나 얇아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군 당국이 잠수함을 이용해 측정한 수치를 인용했다.
북극권 얼음이 녹는 것이 인류의 무절제한 연료 사용 탓인지, 아니면 영겁의 세월이 빚어내는 불가해한 현상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추세로 갈 경우 10∼20년 뒤에는 북서통로의 상업적 항해가 연중 내내 아니면 최소한 여름철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포킹검씨는 내다봤다. 꿈같은 이야기다. 아시아와 유럽 간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현재의 항로는 대략 1만2600해리인 데 비해 북서통로를 이용하면 그 거리가 7900해리로 3분의 1 이상 단축된다. 세계의 교역 패턴을, 그리고 경제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북서통로를 영토 안에 품고 있는 캐나다로서는 경제의 새 프런티어가 열릴 것을 기대하며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혀 생각하면 이 정도로 북극권의 얼음이 녹는 현상은 경제적 의미를 따질 가치가 없는 인류의 대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재앙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북서통로를 활용하는 방안이 열린다 해도 캐나다가 즐거워할 일은 별로 없다. 파나마 운하처럼 그 이용 선박에 통행료를 물릴 수 있다면 횡재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지금부터 주권 수호 의지 과시해야
북극권 섬들 사이의 바다는 좁은 해협인데다 연중 거의 얼어붙어 있으니 섬의 연장이고, 따라서 그 항해 선박은 캐나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캐나다의 공식 입장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북극권 뱃길은 어느 한 나라의 독점적 관할 아래 놓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 원칙에 입각한 선례를 만들어두려는 듯 이미 30여년 전부터 여러 차례 자국의 쇄빙선(碎氷船), 유조선 등을 캐나다의 양해 없이 북서통로에 투입해 오고 있다. 미국의 잠수함들은 요즘도 자주 북극권 얼음 밑으로 통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배도 근년에 가끔 북서통로를 지나간다.
통행료를 못 받을 상황에서 북서통로가 개방된다면 캐나다로서는 궂은일만 떠맡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이 루트를 이용해 밀입국 또는 마약 거래 등을 하려는 시도를 감시해야 할 뿐 아니라, 만약 큰 배가 좌초해 기름이라도 누출시키면 그 뒤치다꺼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또 북서통로 개방을 계기로 주변 무인도들에 대한 영유권마저 도전받을 우려가 있다.
좋든 싫든 북극권이 동면에서 깨어날 것을 상정해 그곳에 군의 주둔을 늘려 캐나다의 주권 수호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나라 ‘유비무환(有備無患)론자’들의 목소리다. 또 앞으로 물이 석유 못지않은 비싼 자원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이 북극권의 만년얼음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잦아질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캐나다 군은 8월 초 ‘북극고래 유격대 작전’(Exercise Narwhal Rager)이란 이름으로 북서통로에서의 기동훈련에 들어갔다. 군 당국자들은 가뜩이나 군의 몸집이 작은 데다 유엔평화유지군과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의 요인까지 겹쳐 이번 북극고래 유격대 작전의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동서 냉전의 긴장이 정점이었던 1960년대 캐나다 군은 11만명에 이르렀으나 그 뒤로 지금까지 줄곧 감축됐다. 역대 연방정부는 재정적자 해소의 단골 처방으로 군 규모를 줄여왔다. 당장 쳐들어올 적이 없는 상황이니 국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웬만한 소신이 아니면 입을 닫아버렸고, 국민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면서도 캐나다는 세계의 분쟁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빠짐없이 보내, 개근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다. 이런 캐나다에 국내 방위를 위해 군의 ‘근육’을 과시해야 할 현안이 생겼다. 바로 북극권에 대한 주권 수호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의 탐험가들이 서쪽으로 항해해서 아시아에 이르려다가 발견한 땅이 신대륙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대륙이란 꿈의 땅 아시아에 이르는 뱃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당시는 중국의 문화가 서양을 앞질러 있었고 금과 비단, 향료가 넘치는 땅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동경은 열렬했다.
10~20년 후 상업적 항해 가능 예고
유럽 사람들은 신대륙이 북미에서 중미를 거쳐 남미까지 한 덩어리로 이어지지 않고 그 중간 어딘가에 아시아로 빠져 나가는 통로가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로 그런 통로가 없어 근세에 인위적으로 만든 뱃길이 파나마 운하다. 질러가는 뱃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유럽인들, 그중에서 특히 영국인들은 신대륙의 북쪽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신대륙의 남쪽(남미 대륙의 끝)을 돌아 태평양으로 빠지는 항로는 1521년 마젤란에 의해 개척됐으나 유럽에서 가기엔 여전히 멀었고, 스페인의 강력한 무적함대가 견제하는 길목이어서 다른 나라가 이용할 엄두를 못 냈다.
유럽 사람들은 신대륙의 북쪽을 우회해 아시아에 이르는 미지의 뱃길을 ‘북서통로’(Northwest Passage)라 불렀다. 북서통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그러나 매번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결론은 이렇다. 대서양에서 캐나다 북쪽의 북극권 섬들을 돌아 나가면 태평양에 이를 수 있지만 그 바다는 연중 대부분 얼어 있는 상태고, 설사 잠시 녹는다 해도 떠다니는 얼음덩이 때문에 항해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북서통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초 북서통로가 현실성 없는 뱃길임이 확인됐지만 영국은 거의 무인도인 북극권 섬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위해 탐사를 계속했다. 이 노력의 결과로 영국의 주권을 ‘분양’받아 탄생한 캐나다가 그린랜드 서쪽 북극권의 모든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북서통로는 준엄한 얼음길이다. 이 금단의 뱃길에 1903년 노르웨이 사람 아문젠이 도전했다. 그는 북서통로의 동쪽 끝에서 배로 출발해 3년의 각고 끝에 태평양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가 최초의 북서통로 완주자다.
그러나 인간의 접근을 완강히 막아온 북서통로의 사정이 근년에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다. 북극권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 머지않아 경제성 있는 항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예고까지 나왔다.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극권의 만년얼음 면적이 1078년 이후 10년에 3%꼴로 줄고 있다고 캐나다 기상청 얼음측정팀장 존 포킹검씨가 2년 전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1999년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북극의 만년얼음층 두께가 1958년에 비해 40%나 얇아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군 당국이 잠수함을 이용해 측정한 수치를 인용했다.
북극권 얼음이 녹는 것이 인류의 무절제한 연료 사용 탓인지, 아니면 영겁의 세월이 빚어내는 불가해한 현상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추세로 갈 경우 10∼20년 뒤에는 북서통로의 상업적 항해가 연중 내내 아니면 최소한 여름철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포킹검씨는 내다봤다. 꿈같은 이야기다. 아시아와 유럽 간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현재의 항로는 대략 1만2600해리인 데 비해 북서통로를 이용하면 그 거리가 7900해리로 3분의 1 이상 단축된다. 세계의 교역 패턴을, 그리고 경제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북서통로를 영토 안에 품고 있는 캐나다로서는 경제의 새 프런티어가 열릴 것을 기대하며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혀 생각하면 이 정도로 북극권의 얼음이 녹는 현상은 경제적 의미를 따질 가치가 없는 인류의 대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재앙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북서통로를 활용하는 방안이 열린다 해도 캐나다가 즐거워할 일은 별로 없다. 파나마 운하처럼 그 이용 선박에 통행료를 물릴 수 있다면 횡재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지금부터 주권 수호 의지 과시해야
북극권 섬들 사이의 바다는 좁은 해협인데다 연중 거의 얼어붙어 있으니 섬의 연장이고, 따라서 그 항해 선박은 캐나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캐나다의 공식 입장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북극권 뱃길은 어느 한 나라의 독점적 관할 아래 놓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 원칙에 입각한 선례를 만들어두려는 듯 이미 30여년 전부터 여러 차례 자국의 쇄빙선(碎氷船), 유조선 등을 캐나다의 양해 없이 북서통로에 투입해 오고 있다. 미국의 잠수함들은 요즘도 자주 북극권 얼음 밑으로 통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배도 근년에 가끔 북서통로를 지나간다.
통행료를 못 받을 상황에서 북서통로가 개방된다면 캐나다로서는 궂은일만 떠맡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이 루트를 이용해 밀입국 또는 마약 거래 등을 하려는 시도를 감시해야 할 뿐 아니라, 만약 큰 배가 좌초해 기름이라도 누출시키면 그 뒤치다꺼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또 북서통로 개방을 계기로 주변 무인도들에 대한 영유권마저 도전받을 우려가 있다.
좋든 싫든 북극권이 동면에서 깨어날 것을 상정해 그곳에 군의 주둔을 늘려 캐나다의 주권 수호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 이 나라 ‘유비무환(有備無患)론자’들의 목소리다. 또 앞으로 물이 석유 못지않은 비싼 자원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이 북극권의 만년얼음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잦아질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캐나다 군은 8월 초 ‘북극고래 유격대 작전’(Exercise Narwhal Rager)이란 이름으로 북서통로에서의 기동훈련에 들어갔다. 군 당국자들은 가뜩이나 군의 몸집이 작은 데다 유엔평화유지군과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의 요인까지 겹쳐 이번 북극고래 유격대 작전의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었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