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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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시처럼 아름다운 우울 노래

이장혁 3집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10-06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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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만에 시처럼 아름다운 우울 노래
    1998년. 외환위기의 화산재가 세상을 덮었다. 종신고용의 신화가 끝났다. 번영의 꿈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성취가 아닌 극복이 과제가 됐다. 국가부도라는 거대한 단어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일상을 지배했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정리해고 물결에 휩쓸린 가장들의 어깨를 다독여주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격려와 희망의 농도가 아무리 짙어도, 우울한 세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즈음 홍대 앞에선 시대의 우울과 허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음악들이 나왔다. 외환위기라는 현실과는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날아와 홍대 앞에 이식된 그런지(Grunge)에 시적 재능이 있는 이들이 쓴 가사는 모두 달콤한 꿈에 취해 있던 90년대 중반 이미 공연장에 나타났다. 98년 인디 레이블이 하나 둘씩 등장하면서 공연과 함께 흩어지던 음악들이 음반이 돼 세상에 나왔을 뿐이니까.

    이장혁은 그 대표적인 뮤지션이었다. 아무밴드로 활동하던 시절 대표곡인 ‘사막의 왕’은 질주나 반항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절망하고 좌절하는 청춘 그 자체의 노래였다.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은 이 앨범을 끝으로 아무밴드는 해체됐다. 한동안 이장혁을 볼 수 없었다.

    세상이 다시 꿈을 꾸던 2004년, 그는 자신의 첫 솔로앨범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조용한 복귀였다. 밴드 시절보다 더욱 처연하고 아름다운 우울로 가득 찬 음악이었다. ‘난 아직 고갤 흔들며 형들이 찾으려 했던 그 무언가를 찾아 낯선 길로 나섰어/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의 수상한 질서 (중략) 밖으로 밖으로 눈부신 태양이 뜨고/ 안으로 안으로 날 비추던 그 햇살/ 밖으론 밖으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안으론 안으론 하지만 난 울고 있었어.’

    앨범의 첫 트랙이자 대표곡인 ‘스무살’의 가사다. 분노조차 남지 않은 허망함, 보통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 행복의 절정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불안함 같은 정서가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이 음악은 아무 거울에도 비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거울이었다. 역시 상업적으론 큰 의미가 없었지만, 당시 발표된 음반 가운데 지금까지도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앨범은 이장혁의 1집뿐이다. 여전히 짠하다.



    2008년 발표한 2집은 허무를 넘어선 체념의 정서가 가득했다. 다시, 꿈이 끝난 시대였다. 그들에게 이장혁은 노래했다. ‘그대여 아파 말아요 세상은 항상 그랬죠/ 뒤돌아볼 것 없어요 어차피 없어질 풍경’(‘백치들’). 전기 기타가 아닌,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얹히는 읊조림이 그리는 세상은 황무지의 쓸쓸한 풀 같았다.

    이장혁의 새 앨범(사진)이 나왔다. 6년 만이다. 그 세월 동안 한 곡 두 곡씩 만들고 공연을 통해 불렀던 노래들이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던 밴드 사운드로 세상에 나왔다. 첫 곡 ‘칼집’부터 ‘낮달’까지 총 12곡, 어느 곡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가사는 귀를 거쳐 심장에 새겨지고, 멜로디는 더욱 섬세해졌다. 본질적 고독을 품에 안은 목소리는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 밝음이 거세된 정서를 비춘다. ‘에스키모’ ‘불면’ ‘빈집’ ‘레테’로 이어지는 초반 흐름은 한 권의 시집을 귀로 읽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여전히 우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음악이지만, 구질구질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극복과 회피 대상이 아닌, 소년부터 노인까지 담고 사는, 쉽사리 내뱉을 수 없는 대상으로서의 우울을 건조하고 따스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라는 명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 안을 때 이런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의 음악 동료들과 함께 한 편곡은 그의 음악을 소묘에서 유화로 변화하게 했다. 이 고독의 연대는 그래서 힘차게 걷는다. 험한 길을 더듬듯. 감춰둔 울음을 몰래 울면서. 이장혁의 음악은 그렇게 이 가을에 동기화된다. 단풍과 낙엽 사이 어디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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