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9

2014.08.04

외모 목소리 테크닉 3박자 갖춘 혜성

‘세인트 빈센트’ 내한공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8-01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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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 목소리 테크닉 3박자 갖춘 혜성

    2014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로큰롤 명예의 전당’ 너바나 헌액기념 공연 당시 무대에 선 세인트 빈센트.

    여성 뮤지션의 퍼포먼스에서 아름다움 혹은 멋스러움을 느끼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육체를 강조하는 움직임, 아니면 곱고도 힘찬 목소리. 비욘세, 리애나 같은 당대 여성 팝스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춰 시대를 풍미한다. 여기 그에 더해 하나를 더 갖춘 여성 뮤지션이 있다. 세인트 빈센트다.

    어릴 때 축구선수로 활동해 탄탄한 근육을 갖췄으며, 기타리스트 턱 앤드리스의 조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음악적 유전자도 충만하다. 본명이 애니 클라크인 그는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나 버클리음대를 중퇴하고 폴리포닉 스프리, 수프잔 스티븐스 같은 인디 스타들과 함께 활동하며 음악 경력을 쌓았다. 2007년 세인트 빈센트란 이름으로 데뷔작 ‘Marry Me’를 발표한 이래 올해 ‘St. Vincent’까지 총 4장의 음반을 만들었다. 재즈와 팝,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들고 전통을 버무려 첨단을 만들어내는 음악적 역량에 평단은 찬사를 보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세인트 빈센트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빌보드에서 1위를 해도 한국에서 음반 300장(0 하나가 빠진 게 아니다!) 팔기도 힘들 만큼 팝시장이 고사한 상황이다 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즉 한국에서 세인트 빈센트 공연을 볼 가능성은 페스티벌에라도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톰 크루즈도 아닌데, 그 ‘미션 임파서블’ 같은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7월 24일 세인트 빈센트가 서울 홍대 앞 예스24 무브홀에서 단독으로 내한공연을 가진 것이다. 평일 저녁임에도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채웠다. 조원선, 장기하와 얼굴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크라잉넛 등 평소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가수들이 대거 객석에 자리했다.

    공연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밀도는 더 높았다. 그가 무대에 오른 건 8시 10분 정도. 설렘으로 가득 찼던 객석에 불이 꺼지고 환호성이 울렸다. 드럼과 베이스, 신디사이저 겸 보조 기타로 이뤄진 3인조 밴드를 이끌고 세인트 빈센트가 등장했다. 첫 곡 ‘Rattlesnake’와 함께 올해 글래스턴베리에서 보여준 절도 있는 마임으로 공연을 시작한 그는 ‘Birth In Reverse’를 부르기 전 기타를 맸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기타는 그와 한 몸이 돼 압도적인 테크닉과 사운드를 들려줬다.



    세상에는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많지만, 세인트 빈센트처럼 기타 테크닉을 음악 일부로 만드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록의 역사에는 기타를 든 여성 로커도 많았다. 하지만 세인트 빈센트처럼 패셔너블하고 화려한 연주자는 없었다. ‘듣는’ 음악뿐 아니라 ‘보는’ 공연이라는 측면에서도 세인트 빈센트 무대는 충분히 완전체였다.

    앙코르 무대에서 세인트 빈센트는 갑자기 무대 옆 난간에 맨손으로 올랐다. 그것도 한 손에 기타를 든 채. 난간에 매달려 기타를 치는 그 모습은 흡사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세상을 향해 광선을 뿜어내며 관객을 감동케 하는 영웅처럼, 세인트 빈센트는 성별과 장르와 취향을 초월해 ‘록이란, 공연이란, 음악이란, 멋이란, 진심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확신했다. 그는 분명히 지금보다 거물이 될 거라고. 미래의 전설로 가는 여정 초기에 동참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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