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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그 맛이 그 맛이면 대접받기 어려워

된장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그 맛이 그 맛이면 대접받기 어려워

그 맛이 그 맛이면 대접받기 어려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전통 된장이 맛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장 된장을 사서 먹는다.

전국에 전통 된장 제조업체가 2000여 곳 있다고 한다. 대부분 농촌 마을로, 콩 생산자가 직접 담그기도 하고 부녀회 같은 단체가 나서서 이 일을 하기도 한다. 귀농한 사람 중에도 된장 제조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 다들 어렵다고 말하는데도 전통 된장 사업을 새롭게 벌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된장 담그는 일이 쉽기 때문이다.

된장은 손맛이니 전통이니 하지만, 실제 된장 담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하던 일이다. 또 메주 쑬 때 번거롭기는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일단 된장을 담가놓으면 상해서 버리는 일도 거의 없다. 소문만 잘 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전통 된장을 담그는 사람들은 다들 손맛에 대해 자신감이 넘친다. 누구 하나 “대한민국 제일”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먹어본 그들의 된장은 그 맛이 비슷비슷하다. 명인 칭호를 듣는 이의 된장이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 여인네의 된장이나 그게 그거다. 한국인 아무나 붙잡고 “무슨 된장이 제일 맛있나요?” 하고 물어보라. 가장 많은 답은 “우리 어머니 된장” “우리 할머니 된장”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전통 된장 맛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전통 된장이 공장 된장에 밀려 고전하는 건 소비자가 그 맛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맛을 잘 알기에 찾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전통 된장 맛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통 된장 맛의 문제는 솜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인은 한국 자연에 있다.

전통 된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여기에 소금과 물을 더해 숙성시킨다. 겨울에 담근 이 전통 된장이 맛을 내려면 최소한 여름을 넘겨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여름은 매우 덥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한국의 여름 날씨가 열대지방 수준이다. 이런 기온에서는 된장이 과숙성을 한다. 과숙성 된장은 쉰내가 나고 잡맛이 올라온다. 이를 피하려면 소금을 많이 넣어야 한다. 따라서 전통 된장은 ‘짜거나 잡내 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소비자가 전통 된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두 가지다.



전통 된장의 재료로 꼭 콩만 쓰는 것은 아니다. 콩 외에 보리, 밀, 쌀 등으로 담그는 된장도 있다. 이를 부르는 이름이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데 흔히 등겨장, 담뿍장, 즙장, 막장, 보리장, 밀장이라고 부른다. 한반도 남부지역과 동해안에서 흔히 만들어 먹던 장이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선 메주가 잘 뜨지 않으므로 보리 등의 곡물을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된장은 단맛이 난다. 보리, 밀, 쌀 등의 전분이 당으로 변해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전분 덕에 3개월 정도면 숙성이 완료돼 깊은 맛을 낸다. 그러니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돼 짜지 않다. 숙성 기간이 짧으니 여름 무더위를 피해 소량씩 여러 번 생산해 과숙성을 방지할 수 있다. 단기 숙성하면 메주 뜨는 냄새나 곰팡이 냄새도 없다.

한국에서는 전통이라 하면 ‘하나’만 있는 것으로 여긴다. 전통 김치는 배추김치이고 전통 고추장은 찹쌀고추장이며 전통 된장은 콩메주된장이라는 식이다. 이런 관념이 생긴 것은 근래 들어서다. 몇몇 요리연구가가 대중매체를 이용해 이런 관념을 퍼뜨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양한 된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피자를 전 세계에 대중화한 것은 미국의 프랜차이즈 업체다. 그들이 만드는 피자는 두툼한 빵과 그 위에 올리는 토핑이 비슷비슷하다. 비유하자면, 업체와 관련 없이 그 맛이 비슷한 한국 된장과 같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 다른 피자를 낸다. 미국 피자는 외식업의 일부지만 이탈리아 피자는 문화로 대접받는 이유가 이 차이 때문이다. 전국에서 똑같은 전통 된장을 낸다면 된장은 문화로서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2.06.04 840호 (p66~66)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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