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이 어디쯤 가고 있었는지, 당시 한국인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한두 문장으로 써야 하는 미래 저널리스트나 역사가는 분명 ‘스펙’ ‘멘토’ ‘스토리’ ‘소통’ ‘SNS’ 등 거의 상관관계도 없고 의미도 명확지 않은 단어들을 적당히 조합하게 될 것이다. 희망과 절망, 애정과 분노 같은 미묘한 감정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심지어 삶과 죽음이라는 복잡한 현실이 이 몇 개의 용어로 간단히 처리되는 현재가 아니던가.
필자들은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839호 ‘주간동아’는 이러한 한국과 한국인의 현재 모습을 선취하고 있었다. 안철수 멘토로 유명한 법륜스님의 강연 현장중계는 ‘격정 토로’ ‘직격 토로’라는 다소 과장된 제목이 ‘희망’을 부추기긴 했지만, 똑같은 인간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나 희망이 절망을 부르는 것은 필연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좋은 기사였다. ‘해커스, 토익문제 도둑질’과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은 멘토를 갈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콘텐츠’보다 ‘스펙’을 사랑하도록 만든 국가와 사회에 대한 항변이자 ‘분노’였다. 이에 어설픈 정부기관에 대한 비아냥거림인 ‘국세청의 망신살’이 더해지면서 ‘부실 한국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게다가 ‘SNS’의 삶과 죽음이 인간의 그것과 궤를 달리할 때 ‘중생의 번뇌’는 저승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나 죽으면 내 글도 묻어주오’까지 더해지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소통’ 스토리가 마무리됐다.
북한과의 ‘소통’을 주장한 ‘곽태환 인터뷰’는 명료한 질문과 답변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갖는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커버스토리의 ‘격정 토로’가 과연 ‘격정적’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던 것처럼, 원로교수의 ‘신(新)통일방안’이 과연 ‘새로운’ 것인지 고개가 약간 모로 기울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건 ‘홍보’가 ‘파격행보’를 앞섰다는 느낌을 갖게 한 ‘SK의 기업가정신’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들은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839호 ‘주간동아’는 이러한 한국과 한국인의 현재 모습을 선취하고 있었다. 안철수 멘토로 유명한 법륜스님의 강연 현장중계는 ‘격정 토로’ ‘직격 토로’라는 다소 과장된 제목이 ‘희망’을 부추기긴 했지만, 똑같은 인간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나 희망이 절망을 부르는 것은 필연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좋은 기사였다. ‘해커스, 토익문제 도둑질’과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은 멘토를 갈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콘텐츠’보다 ‘스펙’을 사랑하도록 만든 국가와 사회에 대한 항변이자 ‘분노’였다. 이에 어설픈 정부기관에 대한 비아냥거림인 ‘국세청의 망신살’이 더해지면서 ‘부실 한국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게다가 ‘SNS’의 삶과 죽음이 인간의 그것과 궤를 달리할 때 ‘중생의 번뇌’는 저승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나 죽으면 내 글도 묻어주오’까지 더해지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소통’ 스토리가 마무리됐다.
북한과의 ‘소통’을 주장한 ‘곽태환 인터뷰’는 명료한 질문과 답변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갖는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커버스토리의 ‘격정 토로’가 과연 ‘격정적’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던 것처럼, 원로교수의 ‘신(新)통일방안’이 과연 ‘새로운’ 것인지 고개가 약간 모로 기울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건 ‘홍보’가 ‘파격행보’를 앞섰다는 느낌을 갖게 한 ‘SK의 기업가정신’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