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리얼리즘 작가 한영욱과 그의 그림 ‘face’, oil on Aluminum.
홍콩국제아트페어는 전 세계 700개 화랑이 참가 신청을 하고, 유수 컬렉터가 모여드는 거대한 미술시장이다. 한국에서는 9개 화랑이 참가했다. 그중 박여숙화랑 소속 작가인 강씨는 주최 측에서 먼저 솔로전을 의뢰할 정도로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은 화가다. 커다란 인물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을 본 관람객은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가 부스를 방문하자 사인 공세를 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정우성, 이정재, 이상봉의 얼굴을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한 그의 그림을 보면, 신라시대 화가인 솔거가 황룡사 벽에 소나무 그림을 그리자 새들이 벽을 향해 날아들었다는 전설이 거짓말로 들리지 않는다. 현대판 솔거전설이다. 또한 그의 ‘모던보이’ 연작은 독일,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에서 전 작품이 매진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한국 미술시장의 새로운 트렌드
2000년대 초반 한국 미술시장은 1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활황기에 접어들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외국 하이퍼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 열풍이 불었다. 하이퍼리얼리즘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우리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을 ‘그림’ 같다고 말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그런 그림 같은 현실을 뒤집어 오히려 그림이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미술 사조다. 그리고 그때 극사실적 화풍이 한국 미술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원래 외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은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얼굴, 트럭, 자동차, 네온사인, 건물 등을 표현한다. 진짜 사람을 박제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조각가 듀안 핸슨(Duane Hanson), 거대한 초상화를 그리는 척 클로스(Chuck Close), 나른한 거리 풍경을 그리는 리처드 에스테스(Richard Estes) 등이 유명한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다.
그렇다면 한국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은 어떨까. 주목받는 한국 작가로는 한지와 먹을 이용한 동양화에 서양의 회화적 기법을 가미하는 산수화가 최영걸, 알루미늄판 위에 니들을 사용한 스크래치 기법으로 콧방울 옆의 얕게 팬 살갗까지 묘사하는 인물화가 한영욱, 숲이 햇살로 넘실대는 꿈결 같은 풍경을 그리는 도성욱, 사과가 수북히 쌓인 그림을 그리는 윤병락 등이 있다. 그들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마치 사진 같은 환영 효과를 주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붓의 움직임과 원근감, 회화 질감까지 느껴진다.
하이퍼리얼리즘이 트렌드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주목받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최영걸은 동양 추상화가 대세였던 시기에 사실주의 그림만을 고집해 한국 화단에서 ‘격이 없다’ ‘촌스럽다’는 평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6년 연속 작품을 내놓고 최고가 5700만 원을 기록해 한국 화단에 선풍을 일으킨 스타 작가다.
한영욱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환영받는 작가다. 처음 박영덕화랑의 전속작가가 된 계기도 그의 그림이 시카고아트페어 VIP경매에서 3대 컬렉터 중 한 명에게 팔렸기 때문이다. 그는 가로세로 약 160 x 130cm, 100호가 넘는 대형 알루미늄판을 긁어 얼굴상을 그린다. 그리고 그 인물의 눈빛은 빛의 반사에 따라 강렬하게 관람자 뒤를 쫓는다. ‘집 안에 걸 수 있는’ 예쁜 그림, 정물화나 풍경화를 선호하는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잘 팔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한씨는 지금 위치에 올라서기까지의 이야기가 “인간극장을 찍어도 모자랄 정도”라고 말한다. 2003년 겨울, 그는 대형 마트에서 몇천 원짜리 액자를 사 분당 서현역 앞에 늘어놓고 행상을 했다. 그는 “다음 날 역에 그림 팔러 나갈 기름값도 없었다”며 당시 아픔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4년 만에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전업작가가 됐다.
이런 애환이 있어서일까, 한국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는 개인적 특성이 뚜렷한 그림을 그린다. 본래 하이퍼리얼리즘은 철저히 감성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현실을 복원하지만,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뚜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은 작가의 굴곡진 삶에서 나왔다.
도성욱 작가의 ‘condition-light’, oil on canvas.
그림 같은 현실을 꿈꾸는 그들
도씨의 ‘숲’은 한국인의 정서를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숲속 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빛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내재된 기억으로 빛의 오라를 그린다고 했다. 반면 도씨의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은 곳이 있는데, 바로 두바이에서 열린 아트페어다. 그곳 사람들은 숲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하이퍼리얼리즘은 작품에 작가 자신의 감성과 이야기를 넣기 때문에 하이퍼리얼리즘에서 형식만 빌려왔을 뿐 냉혹하게 현실을 재현하는 정신을 잇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몸이 축날 정도로 그림을 그린다. 도씨는 5년 동안 벽 보고 그림만 그렸다며 잠도 못 자고 눈곱 떼기 전에 그림부터 쳐다보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3년간 그의 아내는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았다. “이사하는 날 집사람이 그랬어요. 당신, 3년 동안 여기 살면서 딱 27일 들어왔다고.”
최영걸 씨도 3개월 동안 200호짜리 그림을 그리다 마지막 단계에서 한 번의 채색 실수로 그림을 버린 적이 있다. 수묵화는 수정이 어려워 한순간의 붓놀림이 작품 전체를 망칠 수 있다. 그림을 한번 잡고 18시간을 내리 그린 적도 있다는 한영욱 씨는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그림 아니면 아무 짓도 안 하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홍대로 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계단에서라도 그림을 그리겠다며 차에 잡동사니를 싣고 떠나 1년간 아는 후배의 작업실에 얹혀 살았다. 그 후배가 막노동을 해 겨우겨우 작업실비를 낸 사실은 몇 년 뒤에야 남들 입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한씨의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흐르는 듯한 글씨체로 잊지 말아야 할 문장들이 쓰여 있다. “같은 시를 읽어도 누가 낭독하느냐에 따라 감동에 차이가 나듯, 그림도 그러하다. 같은 소재를 똑같이 그려도 가슴속에 감동을 가지고 그리는 것과의 차이다.” “정면으로 모든 느낌을 피하지 않을 것.” “點適穿石.” “벽돌을 한 장씩 쌓아올리듯 그렇게 로마를 세워라.” 그리고 세계적인 컬렉터들의 이름인 프랑수아 피노, 엘리 브로드, 찰스 사치, 스티브 코헨.
연약한 정신을 받쳐주는 뿌리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한국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만큼 세계적 컬렉터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가고시안 갤러리에 초청되고 싶다는 그들의 꿈이 조만간 현실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 순간이 바로 그들의 ‘그림 같은 현실’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