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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울 속 서민 삶 물씬 삼선洞 ‘장수마을’ 있었네

삼선4구역 160여 가구 ‘옹기종기’… 대안개발과 마을기업 추진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서울 속 서민 삶 물씬 삼선洞 ‘장수마을’ 있었네

서울 속 서민 삶 물씬 삼선洞 ‘장수마을’ 있었네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전경.

겨울 문턱이라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지난해 11월 중순, 서울성곽 산책로와 맞닿은 ‘장수마을’ 끝자락에 때아닌 노점이 펼쳐져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을에서 열린 다섯 번째 ‘반짝 벼룩시장’에 동네 할머니가 기증한 여의주가 등장하자 동네 꼬마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작불에 걸어놓은 무쇠솥뚜껑에서 노릇노릇 돼지껍데기가 구워지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자 평상 주변으로 몰려든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 막걸리 잔이 돌며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장터 한편에선 마을 아이들이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골목길 구석구석을 누비며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모아놓은 ‘찰칵찰칵 우리 동네 한바퀴’라는 정감어린 전시회가 열렸다. ‘마실’ 가듯 전시회를 보러 나온 어르신들은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 “매일 보는 마을인데 사진으로 보니 느낌이 색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자칭 기술자로 나선 동네 어르신들이 길바닥을 가게 삼아 ‘공짜 만물수리점’을 개점하자 집집이 깊숙이 처박아두었던 고장 난 우산이며 무뎌진 칼 등을 들고 나와 길게 줄을 섰다.

흥겹고 왁자지껄한 동네잔치로 막을 내린 마을 벼룩시장은 주민에게 잊지 못할 기억 한 가지를 선사했다. 장수마을을 품은 삼선동이 고향이라는 한 신사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30년 만에 찾은 동네에서 벼룩시장을 만나자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활동에 보태라”며 즉석에서 10만 원의 후원금을 내놓은 것.

행정구역상 ‘서울 성북구 삼선 1가’에 위치한 장수마을은 ‘삼선4구역’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재개발 예정지다. 마을 뒤편으로 우뚝 솟은 서울성곽을 병풍처럼 두른 채 그 아래로 깎아지른 듯 가파른 구릉지를 따라 고만고만한 크기의 주택 160여 동이 처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부분 지은 지 40~50년이 족히 넘어 곧 무너질 듯 허술하고 낡은 주택이 자리한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1960~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활력과 생기도 없고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되다시피 해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1960~70년대 풍경 고스란히 간직



“장수마을은 마을 토지의 64%가 국공유지인 데다 무허가 주택이 많아 오랫동안 재개발 사업에 진척이 없었다. 그럼에도 개발지역으로 묶여 있다 보니 집수리도 안 되고 갈수록 동네가 낙후돼 주민의 삶이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5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녹색사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부터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장수마을 살리기에 뛰어든 박학룡(43) 씨는 삼선동에서만 10여 년을 살고 있다. 그는 현재 장수마을의 마을기업 1호인 ‘동네목수’ 대표로, ‘장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대안개발연구모임(이하 연구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성북마을만들기지원센터, 한국도시연구소를 비롯해 도시 대안개발에 관심 있는 몇몇 단체와 개인이 참여하고 있는 연구모임을 꾸려 본격적으로 마을 살리기에 뛰어들기 전, 박씨는 주민들과 협의해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변화를 꾀했다. 구청 소유의 마을 경로당 건물을 빌려 ‘마을학교’를 열고 상자텃밭을 지원받아 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골목 가꾸기에 나선 것.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학교는 그동안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면서도 튼튼하게 집 고치는 방법, 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골목 만드는 방법, 화분 가꾸기, 목공교실, 사진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비록 변화는 더디고 서서히 진행 중이지만 박씨를 비롯한 연구모임 사람들과 주민들이 합심해 이끌어낸 성과가 마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서울 한파주의보가 해제됐던 2월 중순, 장수마을 외곽을 둘러싼 이면도로를 건너 마을 초입에 도착하자 입구에 자리 잡은 오래된 구멍가게가 맨 먼저 이방인을 맞았다. 가게를 지나 마을로 접어들자 두 사람이 겨우 비껴갈 만한 좁고 꼬불꼬불한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길 양쪽으로 성냥갑 같은 집이 다닥다닥 늘어선 골목은 햇살 가득한 대낮임에도 그늘져 있었다.

서울 속 서민 삶 물씬 삼선洞 ‘장수마을’ 있었네

경로당을 겸한 마을학교(왼쪽)와 장수마을의 벽화.

동네 분위기를 바꿔놓은 벽화

박씨는 “마을 뒤편 성곽 때문에 동네 전체가 북동향으로 자리 잡다 보니 햇볕이 잘 안 들고 해가 짧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을 중턱 언덕배기에 불쑥 솟은 한 할머니 집은 동네에서 ‘빨래 너는 집’으로 불린다. 해를 좇아 동네사람들이 아침이면 할머니 집 옥상으로 젖은 빨래를 들고 와 널기 때문이다. 단열조차 안 되는 낡고 허술한 집이 많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주택의 80%가 석유보일러를 쓰다 보니 한겨울이면 비싼 기름값 아끼느라 집을 두고 밖으로 도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낮이면 그늘진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며 ‘해바라기’를 한다.

그늘지고 우중충한 동네 분위기를 밝고 정감 있게 만드는 것은 골목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벽화였다. 이제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허통령 군이 사는 집의 벽화는 피노키오가 주인공이다.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나랑 같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놓고서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볼멘소리를 한 끝에 허군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대학생들이 마무리 손질을 한 피노키오 그림에는 여느 집 벽화와 다르게 ‘with 통령’이라는 사인이 선명히 박혀 있다. 2개월여에 걸쳐 장수마을의 나지막한 담벼락과 집들을 알록달록 화사하게 탈바꿈시킨 것은 한성대 벽화봉사단이다.

7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장수마을은 65세 이상 노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55%에 달하며 80~90세 주민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산 토박이가 많다. 마을 만들기가 시작되면서 ‘장수마을’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런 마을 속사정과 ‘장수길’이라는 원래 동네길 이름이 합쳐진 결과다. 일흔 살이 넘은 동네 어르신들이 기억을 더듬어 연구모임에 풀어놓은 회고담을 들으면 그들의 신산한 삶과 함께해온 수십 년의 마을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옛날에는 물이 없어서 마을 우물에서 배급을 줬어. 구멍가게 쪽에 우물이 하나 있었거든. 자물쇠로 우물 뚜껑을 잠가놓고 아침에 한 차례씩만 배급을 주던 할아버지가 이북 사람이었는데 물이 귀하니까 마을 사람들 똑같이 나눠 먹이려고 그랬지.”

“40~50년 전에는 딸딸이네 집, 그 귀퉁이에 상수도가 하나 생겨서 동네사람들이 다 같이 먹었어. 져다 먹고, 사다 먹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 시누이는 한 달에 열 지게, 3만 원 주고 물을 사다 먹었어. 그때는 큰돈이었지.”

“변소가 어떻게 생겼느냐면 도라무통(드럼통) 있지? 그거 하나 사다가 묻고 천막으로 대충 벽을 만들어놓는 거야. 그거 차면 한 지게에 30원씩 쳐서 버렸어, 옛날에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마을의 아침을 깨우던 물지게, 똥지게 장수의 외침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훈훈한 인심과 정은 그대로다. 휴일이면 집집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내 집, 네 집 구분 없이 서로 문턱을 넘나들며 한 가족처럼 지낸다. 끼니도 잊고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뉘집 아이’인지 가리지 않고 불러들여 밥을 먹이는 등 마을 어른들 너나없이 동네 아이들을 친손주처럼 보살핀다. 장수마을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울 도심에 이런 동네가 있나”라며 신기함과 반가움을 표시한다.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나”

장수마을은 주변에 서울성곽과 삼군부총무당 등 문화재뿐 아니라, 낙산공원과 삼선공원을 끼고 있어 숲이 많고 공기가 맑다.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밀어버리고 천편일률적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는 삭막한 도시개발 광풍을 피한 덕에 근대 도시 서민의 체취가 묻어나는 마을 형성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아직 시골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을 둘러보고 큰길로 나오자 70대 노인이 박씨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 벽화 좀 봐. 여자아이 다리가 한쪽밖에 없잖아. 왜 저렇게 그려놓았어? 보기 싫게.” 경로당이자 마을학교 건물의 외벽에 그려진 ‘감 따는 할아버지와 손녀’ 그림을 두고 쏟아낸 불만이었다. 박씨는 “매일 마을 주변을 산책하시는 분이다.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 이후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기 마을에 대한 애착과 애정을 드러내는 주민이 많다. 우리에겐 저런 분들이 힘이 된다”며 웃었다.

마을이 활기를 띠면서 최근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10여 년 전 문을 닫은 마을 중앙의 가구공장이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라는 것. 박씨에 따르면, 가구공장으로 쓰던 집은 마을에서 가장 크고 좋은 편에 속한다. 이곳에서 밥상과 책상 등의 가구를 만들던 할아버지가 작고하면서 공장이 문을 닫았다. “아들이 공장을 물려받았지만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언제 철거될지 몰라 공장을 접었다”는 박씨는 “장수마을 만들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장수마을 마을기업 1호 ‘동네목수’

지난해 4월부터 빈집 수리… 주거문화 개선 다양한 활동


서울 속 서민 삶 물씬 삼선洞 ‘장수마을’ 있었네

빈집 수리를 하고 있는 ‘동네목수’ 직원.

지난해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마을기업 1호 ‘동네목수’는 요즘 한창 빈집 리모델링으로 바쁘다. 성곽 산책로와 맞닿은 마을 꼭대기 빈집을 수리해 카페와 쉼터, 놀이방으로 꾸미고 화장실을 새로 들여놓는 작업으로 분주한 것. 곧 마무리 공사를 끝내고 3월에 문을 열 카페는 장수마을의 ‘마을기업 2호’가 될 예정이다.

집수리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동네목수는 ‘집수리가 시급히 필요한 위험하며 불편한 노후 주택이 많고, 주민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동네목수 대표 박학룡 씨는 “건축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 마을 특성상 개인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마을기업 공모에 응모했고, 당선돼서 5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게 마을기업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동네목수는 현재 월급을 받는 정직원이 2명인데 3월이면 2명이 더 합류한다. 그 외 월 100만 원의 수입을 올릴 정도로 꾸준히 회사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7~8명이고, 일감 종류와 양에 따라 그때그때 합류하는 사람이 30여 명이다. 아직 창업 초창기다 보니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 않아 정직원 수가 적고, 월급 대신 일당으로 받는 사람이 많지만 일감은 일정한 편이다.

지난해 4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동네목수는 그동안 빈집 2가구의 소유주를 설득해 집수리를 마치고 임대주택으로 세를 놓았다. 올해 안에 또 다른 빈집 4곳을 수리해 게스트하우스와 공방으로 꾸밀 예정이다. 박씨는 “아직도 마을에 10여 채의 빈집이 있다. 워낙 집들이 노후해 그대로 두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빈집은 그 자체로 슬럼화 요인이 된다. 그걸 우리가 수리해 세를 놓으면 집주인이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집 관리가 되고 소득도 올릴 수 있다. 저렴한 임대주택을 원하는 사람은 부담 없이 살 곳을 마련할 수 있고, 우리 회사가 수리를 맡으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1석4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동네목수는 집수리뿐 아니라 맞춤가구 제작, 중고가구 수리 등 건축 및 목공 일에서부터 취약 계층을 위한 집수리 지원, 주거복지 상담 등 주거문화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박씨는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와 성북구청이 지원하고, 노후 주택 개량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진행한다. 도시형 마을기업은 드물기 때문에 장수마을의 마을기업 성공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826호 (p44~46)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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