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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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뭉클한 감동 다 이유가 있다

위대한 침묵 51초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1-07-25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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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한마디에 뭉클한 감동 다 이유가 있다

    장경수 지음/ 지식의숲/ 260쪽/ 1만3000원

    “오바마 연설은 대중 앞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즉 로고스 방식을 선호한다. 그런데 감성적 설득의 파토스가 돋보인 한 번의 연설로 미국 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오바마는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추모 연설에서 무려 51초간 침묵했다. 그 어떤 말보다 오바마의 침묵은 강했다.”

    듣는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을 주는 말에는 격이 있고 품위가 있다. 국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일수록 말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修辭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30여 년간 방송기자를 지낸 이 책의 저자도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 수사기법을 인물과 연설을 사례로 들며 분석한다. 또 전통적 수사학에서는 다루지 않은 ‘관계성 수사학’과 ‘내면의 수사학’을 추가한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설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상대의 의무감 내지는 규범의식에 호소하는 에토스를 가장 잘 활용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잔인한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있는 앨라배마에서도, 주지사의 입술에서 ‘주권우위설’과 ‘연방법 실시 거부’라는 단어가 흐르는 그 앨라배마에서도 어린 흑인 소년 소녀가 백인 소년 소녀와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말을 잘해서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인종차별 철폐 행진의 선두에 선 행동가였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온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진정한 영웅으로 남았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미지 메이킹 달인이다. 군복에 흑백 터번을 두르고 허리에 권총을 찬 모습은 아직도 세계인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 아라파트는 중동 평화협정 체결 직후인 1974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사자후를 토해냈다.



    “나는 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다른 한 손에는 자유를 위한 전사의 무기를 들고 여기에 왔습니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를 던져 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는 올리브 가지가 평화와 화해의 상징임을 메타포로 사용했다. 즉, 힘겹게 선택한 평화의 길을 계속갈 수 있도록 로고스 방식으로 호소한 것이다.

    사회가 다양화하고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수사학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관계성 수사학’의 교본이다. 룰라는 친화력을 앞세워 국민 속으로 찾아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면서 해결점을 모색한 협상가다. 국민과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관계성의 리더십’으로, 퇴임 무렵에도 87%라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허름한 점퍼를 입고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는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내면의 수사학’으로 중국인에게 강한 신뢰를 얻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를 위한 쇼맨십이라는 의혹도 받지만 그의 진실한 행동에는 이견이 없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눈물의 위로는 말 이상의 설득 효과를 얻는다.

    삼수 끝에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권을 따낸 것도 알고 보면 프레젠테이션의 힘이다.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날아가 평창 유치에 힘을 보탠 이명박 대통령의 수사학은 도대체 어떤 유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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