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수장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았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취임한 지 반년이 지났건만, 가는 길목마다 각종 변수에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다. “관(官)은 치(治)하려고 존재한다”는 말로 관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그가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거침없는 언변을 앞세운 카리스마마저 과욕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개혁, 그리고 가계부채와 우리금융 민영화 등 하반기로 이어지는 난제는 김 위원장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별명이 무색한 ‘대책반장’
‘대책반장’ 김 위원장은 2008년 2월 재정경제부 차관을 끝으로 28년 관료생활을 마무리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3년여 만에 금융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의 귀환은 시장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동안 보여준 빠른 판단과 결단, 특유의 추진력 때문이었다. 금융계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라면 금융시장에 산적한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관료지만 이례적으로 붙은 ‘SD’라는 별칭도 그의 영향력을 증명한다. 실제 그는 위기 상황에서 늘 구원투수로 등장해 급한 불을 껐다. 1993년 금융실명제, 95년 부동산실명제, 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에서도 악역을 자처하며 수습을 주도했다. 위기 때마다 해결책을 내놓았고, 강한 추진력을 앞세워 존재감을 과시했다. 3년이라는 공백에도 그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그는 속전속결을 장담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매듭짓지 못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및 사회적으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그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사실 올해 초 취임과 동시에 마주한 저축은행 부실사태부터 꼬임의 연속이었다. 김 위원장은 1월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2월에는 부산저축은행 계열 등 총 7개 저축은행에 영업정지를 단행했다. 저축은행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조기 진화 카드를 꺼내든 것.
그러나 영업정지로 피해를 본 예금자들의 반발이 컸고, 저축은행 부실은 예상보다 컸다. 영업정지 이후 부당 인출 문제가 터져 나왔으며, 부실 대출 의혹과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도 드러났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비리는 이를 묵인하고 비호한 금융당국으로 화살이 돌아갔다. 로비의 선은 금감원 간부급에까지 닿아 있었고, 금감원을 지휘 및 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검찰이 ‘김석동 라인’으로 분류하는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구속한 것은 김 위원장에게도 큰 타격이자 충격이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외환은행 매각도 김 위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산은금융이 인수전에 참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산은금융 강만수 회장이 메가뱅크를 내세우며 우리금융 인수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강 회장의 한참 후배인 김 위원장은 “막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인 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것은 민영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들기를 바랐던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버틴 탓에 우리금융 인수전은 끝내 유효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지주사에 인수 기회를 주려면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야 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고, 시행령 개정은 무산됐다. “사모펀드의 참여로 우리금융 인수전이 유효경쟁이 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말은 다행히 현실화했지만, 이들이 자격과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금융 수장의 영향력 한계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는 불확실한 태도로 책임을 미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취임 후 “빠른 시간 안에 입장을 표명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작 결단이 필요할 때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며 물러섰다. 결과적으로 인수를 희망한 하나금융은 계약 연장을 서둘러야 했고, 최근엔 대주주 론스타가 5000억 원의 배당금을 챙겨가는 것도 막지 못했다. 금융당국이 불명확한 견해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김 위원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온 가계부채 해결도 쉽지 않다. 그는 “시장에서 지나치게 강하다고 할 정도의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대책은 강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금융당국의 판단을 의문시하는 전문가가 많은 상황에서 7월에 발표할 세부안이 얼마나 현실성과 구체성을 갖췄을지 관심을 모은다.
말은 많았지만 막상 해결한 것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김 위원장의 자리는 좁아졌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 내부에선 “외환위기 등 과거 큰 경제 이슈가 있을 때만큼 금융위원장의 말에 힘을 실을 수 없다”면서 “시장은 힘을 키운 금융지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산은금융 강만수 회장,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 KB금융 어윤대 회장,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 등 이른바 ‘4대 천왕’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이미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는 설명이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먼저 나서서 시장과 환경의 분위기 및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한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시장은) 금융산업의 발전이나 미래보다 눈앞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도 그런 시장을 탓할 것만 아니라, 금융현안을 해결해나가는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이 맞은 리더십의 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금융당국의 정책 집행력이 떨어진 것은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추측마저 나온다. 김 위원장이 현 정권 인물이 아닌 데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정치권이 앞다퉈 금융당국 때리기에 나서는 만큼 책임질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유야 어찌 됐든 금융위원장의 리더십이 훼손되면 금융위의 추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하반기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대책 마련은 시중 은행을 중심으로 한 1·2금융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무기력한 금융위의 위상을 확인한 금융권이 예전만큼 금융당국에 호응할지는 의문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변수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금융 수장의 영향력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고, 당정 불협화음이 커지면 금융당국도 힘을 받지 못할 소지가 크다.
그러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기회는 아직 열려 있다. 김 위원장은 외부 평가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원래 계획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다. 하반기에 있을 저축은행 구조조정에서 얼마나 결단력 있게 일을 정리하고 부실을 처리할지, 가계부채와 관련해 어떻게 은행권의 협조를 얻고 독려할지가 관건이다. ‘대책반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김 위원장이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별명이 무색한 ‘대책반장’
‘대책반장’ 김 위원장은 2008년 2월 재정경제부 차관을 끝으로 28년 관료생활을 마무리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3년여 만에 금융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의 귀환은 시장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동안 보여준 빠른 판단과 결단, 특유의 추진력 때문이었다. 금융계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라면 금융시장에 산적한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관료지만 이례적으로 붙은 ‘SD’라는 별칭도 그의 영향력을 증명한다. 실제 그는 위기 상황에서 늘 구원투수로 등장해 급한 불을 껐다. 1993년 금융실명제, 95년 부동산실명제, 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에서도 악역을 자처하며 수습을 주도했다. 위기 때마다 해결책을 내놓았고, 강한 추진력을 앞세워 존재감을 과시했다. 3년이라는 공백에도 그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그는 속전속결을 장담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매듭짓지 못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및 사회적으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그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사실 올해 초 취임과 동시에 마주한 저축은행 부실사태부터 꼬임의 연속이었다. 김 위원장은 1월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2월에는 부산저축은행 계열 등 총 7개 저축은행에 영업정지를 단행했다. 저축은행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조기 진화 카드를 꺼내든 것.
그러나 영업정지로 피해를 본 예금자들의 반발이 컸고, 저축은행 부실은 예상보다 컸다. 영업정지 이후 부당 인출 문제가 터져 나왔으며, 부실 대출 의혹과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도 드러났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비리는 이를 묵인하고 비호한 금융당국으로 화살이 돌아갔다. 로비의 선은 금감원 간부급에까지 닿아 있었고, 금감원을 지휘 및 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검찰이 ‘김석동 라인’으로 분류하는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구속한 것은 김 위원장에게도 큰 타격이자 충격이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외환은행 매각도 김 위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산은금융이 인수전에 참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산은금융 강만수 회장이 메가뱅크를 내세우며 우리금융 인수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강 회장의 한참 후배인 김 위원장은 “막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인 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것은 민영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들기를 바랐던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버틴 탓에 우리금융 인수전은 끝내 유효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지주사에 인수 기회를 주려면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야 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고, 시행령 개정은 무산됐다. “사모펀드의 참여로 우리금융 인수전이 유효경쟁이 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말은 다행히 현실화했지만, 이들이 자격과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금융 수장의 영향력 한계
3월 15일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4층 강당에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김 위원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온 가계부채 해결도 쉽지 않다. 그는 “시장에서 지나치게 강하다고 할 정도의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대책은 강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금융당국의 판단을 의문시하는 전문가가 많은 상황에서 7월에 발표할 세부안이 얼마나 현실성과 구체성을 갖췄을지 관심을 모은다.
말은 많았지만 막상 해결한 것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김 위원장의 자리는 좁아졌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 내부에선 “외환위기 등 과거 큰 경제 이슈가 있을 때만큼 금융위원장의 말에 힘을 실을 수 없다”면서 “시장은 힘을 키운 금융지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산은금융 강만수 회장,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 KB금융 어윤대 회장,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 등 이른바 ‘4대 천왕’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이미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는 설명이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먼저 나서서 시장과 환경의 분위기 및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한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시장은) 금융산업의 발전이나 미래보다 눈앞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도 그런 시장을 탓할 것만 아니라, 금융현안을 해결해나가는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이 맞은 리더십의 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금융당국의 정책 집행력이 떨어진 것은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추측마저 나온다. 김 위원장이 현 정권 인물이 아닌 데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정치권이 앞다퉈 금융당국 때리기에 나서는 만큼 책임질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유야 어찌 됐든 금융위원장의 리더십이 훼손되면 금융위의 추진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하반기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대책 마련은 시중 은행을 중심으로 한 1·2금융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무기력한 금융위의 위상을 확인한 금융권이 예전만큼 금융당국에 호응할지는 의문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변수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금융 수장의 영향력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고, 당정 불협화음이 커지면 금융당국도 힘을 받지 못할 소지가 크다.
그러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기회는 아직 열려 있다. 김 위원장은 외부 평가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원래 계획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다. 하반기에 있을 저축은행 구조조정에서 얼마나 결단력 있게 일을 정리하고 부실을 처리할지, 가계부채와 관련해 어떻게 은행권의 협조를 얻고 독려할지가 관건이다. ‘대책반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김 위원장이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