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1ℓ당 2000원을 넘어서자 정부는 적정 소비자가격을 제시하며 정유업체를 강하게 압박했다.
겨우 콩국수 한 그릇 값…1만 원의 몰락
과거 1만 원의 위세는 대단했다. 젊은 남성이 미팅에서 만난 여성과 레스토랑에서 배불리 먹은 후, 호기 넘치게 꺼냈던 돈이 1만 원이다. 여성이 맞선 보러 나갈 때 어머니가 손에 1만 원을 쥐어주면서 “미장원에라도 들렀다 가! 덥고 힘들 테니 택시 타고 가”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던 1만 원이 이제 겨우 점심 한 끼 값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듯 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먹을거리, 교통, 주거에 드는 비용은 서민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다. 서울 지역 기름값은 ℓ당 평균 2000원을 넘어섰고, 앞으로 더 오를 추세다. 전셋값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적으로 7.35% 올랐다. 수도권의 경우 10%에 이른다. 정부가 특별 관리한다는 52개 주요 생필품, 즉 ‘MB 물가품목’은 6월에도 9개를 제외하고 대부분 올랐다고 한다. 전기요금은 8월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먹을거리 가격 인상이다. 점심값 폭등으로 대표되는 먹을거리 가격 인상으로 국민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국민은 과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하다. 정해진 월급에 지출만 늘고 있다면, 당연히 미래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집을 줄여 더 싼 지역으로 가야 하나, 이제부터라도 자동차 사용을 줄여야 하나. 아내에게 은근슬쩍 부업을 강요하거나, 아이들 학원을 줄이라고 압박할 생각을 하니 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런 난국에 그깟 체면 손상이 뭐 대수랴. 이대로 가다가는 당장 5년 후 가정의 삶이 얼마나 궁핍할지 눈에 빤히 보인다. 경제적 두려움이 건강, 안전,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뻗치니 그야말로 매사 좌불안석이다. 이런 부정적 생각이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들면, 강박장애 내지는 범(汎)불안장애 같은 정신과적 질병에 걸리게 된다.
다음은 상실감이다. 상실(loss)이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삶의 질이 줄어드는 것 역시 잃어버림이다. 좋아하는 점심 메뉴를 비싸서 더는 자주 먹지 못한다면 상실감은 극에 달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 느끼는 상실감이야 가족이나 친구에게 마음껏 위로받을 수 있겠지만, 점심식사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상실감은 어디 가서 떳떳하게 위로받을 수 있으랴.
그나마 나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는 보편적 문제라는 사실이 위안거리다. 나에게만 예외적으로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보편성(universality)의 강조’는 정신치료 기법 중 하나다. 하지만 아무리 보편성을 강조한들 상실감이 커지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게 만드는 가장 큰 심리사회적 요인이 바로 상실이기 때문이다.
상실감에 질시와 미움의 감정까지
먹을거리 가격이 폭등하면서 벌써부터 추석 물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보편성이 존재한다면, 특수성도 있다. 대한민국 상위 1%는 고물가에 아랑곳없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슬프고도 안타까운 현상은 질시와 미움의 기류다. 조금 전 돈 아끼려고 라면에 공깃밥 말아 먹고 왔는데, 고급 음식점에서 이쑤시개 물고 나오면서 외제차 문을 여는 내 또래 사람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간다.
이제는 그가 미워진다기보다 우리 사회가 미워진다. 에라,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셈치고 잊어버리자. 퇴근 후에 친구 불러서 소주 마시고 술값은 반반씩 내야겠다. 질시와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힌 불쌍한 나를 구하기 위한 자가 치료 방법으로 술 한잔 마시고, 정부 정책을 안줏거리 삼아 실컷 욕하자. 그러면 마음이 좀 풀릴지 모르겠다. 내가 알코올중독 환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자.
영양실조라고 하면, 당장 굶주린 북한 주민의 앙상한 체구가 떠오른다. 북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먹을거리 가격 인상은 특정 영양소의 결핍을 가져와 육체건강과 정신건강을 해친다. 예를 들어 쇠고기 가격이 올라 육류, 콩 및 곡류, 빵 등에 풍부하게 함유된 비타민 B1의 섭취가 부족해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비타민 B1은 두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성분이다. 당질 대사에 깊이 관여하며, 세포 활동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부족해지면 기억력 저하, 주의집중력 결핍, 불면증, 전신 무기력, 각기병, 신경염, 심장기능 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과일값이 올라 과일과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 C 섭취가 부족해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타민 C는 항(抗)스트레스 비타민으로,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스트레스에 대항해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집중력, 기억력,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원료인 티로신 대사도 지원한다. 체내에 비타민 C가 부족하면 업무 수행 중에 부딪히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능력이 저하할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온라인판 신문을 통해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국인들, 정신과 치료는 피한다’라는 보도를 내 눈길을 끌었다. 스마트폰이나 성형수술 등 서구에서 발달한 문화는 쉽게 받아들이면서 서구에서 일반화한 정신치료는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인은 정신적 문제를 언급하는 데 일종의 금기가 있어 참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작금의 고물가로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위험수위에 오른 점을 고려하면, 참는 것이 비단 능사는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