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담백하다고 표현하는 평양냉면이다. 강한 양념이 없다뿐이지 담백과는 거리가 있는 맛이다.
우리말의 맛 표현 단어가 많다 해도 실제 생활에서 맛 표현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음식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는 뜻이다. “그 음식 맛이 어때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맛있어요” “맛없어요” 정도에서 끝난다. 음식이 맛있으면 왜 맛있는지, 맛없으면 왜 맛없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왜 맛있어요?” 하고 물으면 “화끈하게 매워요” “달콤해요” 라고 답하는 정도다.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능력이 떨어지니 한 단어로 여러 맛을 두루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담백하다’다. 한자로 담백(淡白)은 ‘맑을 담’에 ‘흰 백’을 쓴다. 국어사전에서의 뜻은 대충 이렇다.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한자대로 풀어보자면 “깨끗하고 맑은 맛” 정도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 담백하다는 말을 거의 모든 음식에 사용한다. 고춧가루와 마늘 등이 잔뜩 들어간 해물찜이나 매운탕을 먹으면서도, 기름내 풀풀 나는 튀김을 먹으면서도 “담백해요”라고 한다.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담백해요”다. ‘담백하다’는 표현에 ‘맛있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담백 오남용은 미식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맛은 담백함에 있다는 말을 퍼뜨린 탓이 크다고 본다. 한국음식은 짜고 맵고 달고 시고 고소하다. 이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반찬 구성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담백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러니까 다소 양념을 적게 해 싱거운 음식은 주로 단품 요리다. 이 요리를 소개하면서 담백하다는 말을 흔히 썼고, 이 말이 번지면서 요리라 할 만한 음식은 담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보다 여기게 된 것이다.
문제는 ‘담백하다’는 말을 남용하면 음식의 맛을 섬세하게 느끼려는 의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백한 음식의 대표격으로 다들 이야기하는 평양냉면을 예로 들어보자. 평양냉면 한 그릇에는 수많은 맛 요소가 있다. 그러니 담백하다는 말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그 낱낱의 맛은 즐김의 대상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심심한 냉면 국물에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고기의 은근한 감칠맛에 찝찌름한 간장의 맛이 있으며, 면에는 입천장 저 안쪽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메밀 향이 있다. 또 달콤한 배와 시큼한 김치가 메밀의 구수함, 고기 국물의 감칠맛, 간장의 찝찌름함과 어울려 입안에서 요동을 친다. 그러니 이를 어찌 담백하다 할 수 있는지…. 그 담백의 용례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음식 맛을 표현할 때 담백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 그 음식의 숨어 있는 맛이 하나하나 입안에서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