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3

2011.06.27

“헐 1000원, 지금 장난하나”

통신 기본료 찔끔 인하 모두가 불만 … 정치 입김에 통신업계는 진흙탕 싸움 계속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입력2011-06-27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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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1000원, 지금 장난하나”

    참여연대가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통신업체들의 이동통신요금 20% 인하 공약을 이행하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6월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전체 회의.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통신요금을 20% 인하하겠다고 한 만큼, 요즘 ‘반값’이 유행이니 그 절반인 10%라도 인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국민은 통신 기본료 1000원 인하를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여야가 이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여야의 집중 포화를 받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은 “(통신요금 인하안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요금 인하 문제는 계속 검토할 것이며 앞으로 시장 상황을 좀 더 경쟁적으로 조성해 유효한 가격 경쟁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최 위원장이 국회 문방위 전체 회의에서 진땀을 뺀 이유는 6월 2일 방통위가 발표한 통신요금 인하안 때문이다. 그동안 방통위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안정대책의 하나로 통신요금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 대책을 논의해왔다. 세간의 관심은 방통위가 과연 통신 기본료 인하를 이끌어낼지, 인하한다면 얼마나 내릴지에 쏠렸다. 소비자에게는 그 어떤 간접적인 대책보다 통신요금이 당장 얼마나 깎일지가 피부에 와 닿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9월부터 할인된 기본료 부과

    결과적으로 방통위는 정부로부터 요금을 인가받아야 하는 사업자인 SK텔레콤과 협의해 모든 가입자를 대상으로 통신 기본료를 1000원씩 깎아주고, 단문메시지(SMS) 50건을 공짜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9월부터 SK텔레콤 고객 2500만 명은 1000원이 할인된 기본료를 내게 된다.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도 포함돼 있다. 앞으로는 굳이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가지 않아도 제조사 유통매장이나 하이마트 같은 양판점에서 단말기를 살 수 있다. 이르면 연말부터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재판매(MVNO) 활성화 정책도 들어 있다. MVNO는 기존 3개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도매가격으로 빌려 휴대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도매가격은 3개 이동통신사가 소비자에게 받는 요금보다 30∼40% 싸게 책정되기 때문에 MVNO 가입자의 통신요금은 싸진다. SK텔레콤은 7월 1일부터 MVNO인 ‘아이즈비전’을 통해 선불요금제 아이즈를 내놓는다.

    SK텔레콤은 △기본료 인하로 연 3120억 원 △SMS 무료 제공으로 1770억 원 △맞춤형 스마트폰 요금제로 2080억 원 △선불요금제 할인으로 160억 원 △초고속인터넷 할인으로 350억 원 등 총 748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거꾸로 이 금액이 가입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를 고객 수(약 2600만 명)로 나누면 1인당 연간 약 2만8600원, 4인 가족 기준 11만4000원 정도의 통신요금이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방통위는 SK텔레콤에 이어 후발업체인 KT와 LG유플러스도 조만간 요금 인하 등 가입자 혜택을 확대하는 데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동통신사 1위인 SK텔레콤은 정부로부터 요금제를 인가받아야 하지만, KT 등은 신고만 하면 된다.

    대충 깎고 넘어가면 그만?

    “헐 1000원, 지금 장난하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통신요금 인하안이 미흡하다”며 추가 방안을 고민할 것을 시사했다.

    이처럼 통신요금 인하 정책안에는 기본료 인하, 유통구조 개선, 이동통신 경쟁 활성화 등 여러 가지가 들어 있다. 그런데도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먼저 SK텔레콤의 휴대전화 통신 기본료 1000원 인하. 방통위는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고 기업도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면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감안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체감할 수 없다며 ‘생색내기’라고 반박한다. 통신요금 TF팀이 만들어지고, 정치권에서 ‘큰 소리’도 났는데, 석 달을 기다린 결과가 겨우 1000원 깎아주기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동통신사는 그들대로 “데이터 트래픽 시대에 대비해 4세대(4G) 통신망에 투자해야 하는데 어디서 허리띠를 졸라매느냐”며 입이 나왔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방통위 양문석 상임위원은 통신요금 인하 발표 하루 전인 6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달랑 기본료 1000원 인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회적 전시 행정과 한나라당 정략의 결과로 달랑 기본료 1000원 인하 결정이 나면,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아니라 손해로 귀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장 기본료를 깎아주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1000원이 아니라 2000원이어야 했을까. 아니면 적어도 반의 반값이라도 됐어야 했을까. 사실 어떤 대안을 선택하든 통신요금 TF팀은 욕을 먹게 돼 있다. 처음 시작부터 ‘표’를 의식한 정부 여당과 정치권의 목소리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통신요금이 증가하자 정부 여당은 뭔가 획기적인 마술이라도 부릴 듯 스스로 소문을 냈다. 즉, 방통위에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전문가까지 모여 금방이라도 통신요금을 내릴 것처럼 소비자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불러서 강제로 “반값으로 하라”고 압박할 수는 없었다. 자유시장 경제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제품에 대한 가격 결정과 마케팅은 기업의 고유 권한이다. 정부가 압박한다고 한들 계산 빠른 기업이 그 말을 다 들을 리도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업이 공정치 못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얹어 팔아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진 않은지, MVNO 사업자의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있진 않은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눈에 띄진 않지만 꾸준히 해야 할 정부기관 모두의 의무다.

    손에 쥔 카드도 없는 상태에서 소문만 크게 나버렸다. 잔칫상에 뭐라도 내놓지 않으면 큰일 날 지경에 이르렀다. 5월에 ‘잔칫상 메뉴’를 의논하러 한나라당과 당정협의회를 하려 했지만, 당연히 당은 ‘버럭’ 하고 퇴짜를 놓았다. 어떻게든 기본료를 인하하라고, 눈에 띄는 단기적인 대안을 넣으라고 방통위를 압박한 것. 결국 방통위는 요금인가사업자인 SK텔레콤을 불러들여 구슬리고 얼러 1000원을 깎은 뒤 요금인하 정책안을 내놓았다. 과학적인 계산법도 없이 ‘이 정도면 안 되겠니’라며 얻어낸 1000원이다.

    그 결과 석 달 동안 밤새 고민해 내놓은 다른 정책들은 1000원에 묻혀버렸다. 보름 후인 6월 15일 SK텔레콤은 경쟁사가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해 시장 질서를 저해한다며 언론에 ‘고자질’했고, 이에 KT와 LG유플러스는 “누가 누구를 나무라느냐”며 반발했다. 지난해 이맘때도 3개 이통통신사는 서로 불법영업, 불공정영업행위를 신고하며 진흙땅 싸움을 벌였다.

    변한 것이 없다. 휴대전화 대리점에 갈 때마다 ‘제 값보다 더 준 게 아닐까,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불편한 유통구조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매년 반복되는 통신요금 인하 뭇매 속에 ‘대충 얼마 깎고 넘어가자’며 내성이 생긴 탓 아닐까. 내년 선거철이 되면 통신비 절감 공약이 나올 테고, 내후년에는 또 ‘1000원 깎아주고 말자’식이 되지 않을까.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유통구조 개선 같은 장기적인 숙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동통신사를 비판하고 감시하되, 잘하면 칭찬도 해주면서 꾸준한 노력을 주문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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