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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빵공장 회장 변신 유종근 전 지사 “행정이나 기업경영 ‘을’ 마음 가져야 성공”

공장 인허가 때 몸 낮추고 ‘도와달라’요청 이젠 일자리 창출에 최선의 노력 기울일 것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제빵공장 회장 변신 유종근 전 지사 “행정이나 기업경영 ‘을’ 마음 가져야 성공”

제빵공장 회장 변신 유종근 전 지사 “행정이나 기업경영 ‘을’ 마음 가져야 성공”
1973~94년 미국 럿거스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치에 입문한 뒤 1995~2002년 두 번에 걸쳐 전북도지사를 지낸 유종근 전 지사. 그는 현재 경기 파주시의 조그만 제빵공장 회장으로 인생 3막을 산다. 그를 6월 21일 파주 공장에서 만났다.

이날 오후, 경기 파주시 검산동의 도넛 생산업체 온누리F·D 공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장에 뚜레쥬르와 투썸플레이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CJ푸드빌에서 실사단이 나와 있었다. ‘실사를 통과하면 대량 납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임직원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 업체의 유종근 대표이사 회장은 “어찌나 꼼꼼하게 점검하는지,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만한 것도 꼼꼼하게 다 지적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 도지사를 지낸 분이 제빵공장 회장으로 변신한 점이 이채롭다.

“제빵공장은 친척 동생이 하던 사업이다. 공장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도와달라고 해서 합류했다. 나는 관리 쪽에서 큰 결정을 내리고 영업을 돕는다. 세부 관리와 영업은 동생이 맡아서 한다.”

유 회장과 6촌 관계인 유종연 사장은 던킨도너츠 프랜차이즈를 국내에 선보인 도넛 업계 선두주자다. 배스킨라빈스가 던킨 본사를 인수한 이후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자 유 사장은 ‘Rich’S DONUTS’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도넛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거래처 부도 여파로 실패를 맛봤고, 이후 재기에 성공했다. 유 회장은 서울 합정동 공장을 파주로 확장 이전한 지난해부터 본격 합류했다.



▼ 인허가권을 행사하던 도지사가 제빵공장 회장이 돼 공장 증설 문제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을 땐 시쳇말로 ‘갑’이 하루아침에 ‘을’로 바뀐 셈인데.

“(2008년) 대주그룹 회장으로 있을 때도 금융기관이나 정부기관에 가면 늘 ‘을’이었다. 기업 회장이 회사에서는 윗사람일지 몰라도, 회사 문을 나서면 ‘을’이 된다. 누구에게나 겸손해야 하고 철저하게 ‘을’ 구실을 해야 한다.”

제빵공장 회장 변신 유종근 전 지사 “행정이나 기업경영 ‘을’ 마음 가져야 성공”

1 유종근 전 지사는 9살 난 늦둥이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자신이 직접 가르친다고 했다. 2 제빵공장 회장으로 ‘인생 3막’을 사는 유종근 전 전북지사.

“총선 출마? 내 곁 지킨 박영석 씨 도울 것”

유 회장은 “행정이나 기업 경영의 원리는 조직원이 신나게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을’로 성공하는 비결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지사로 일할 때 공무원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며 “‘을’로서 공장 인허가를 받을 때도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서 기쁘게 도와줄 수 있도록 나를 낮추고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우리 공장은 위생적이고 소음도 없으며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민은 공장이 들어온다니까 거부감을 드러냈죠. 공장 인허가 요청 시점이 지방선거를 앞둔 때라 주민이 반대하니까 공무원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담당 국장을 소개받았습니다. 국장에게 나를 낮추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죠. 법적 요건을 다 갖췄어도 관청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럼 현실적으로 될 일도 안 됩니다. 그래서 해당 공무원에게 ‘파주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호소했죠. (공장 신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일도 공무원이 앞장서 중재해준 덕에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행정은 실무자가 현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임해야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등 떠밀려 억지로 해서는 안 되죠.”

유 회장은 올해 3월부터 대전 우송대학교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원에서 영어 강의도 맡았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하던 자신의 경험을 강의에 녹여낸다고 했다.

“학생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라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한 사람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한국 경제에 얽힌 생생한 사례를 얘기해주면 이해하기 쉽다며 좋아합니다.”

현재 유 회장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는 내년 총선 출마 예상 후보로 그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다. 도지사를 지내고 대선에도 도전했던 사람으로서 정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떠봤다. 역시나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공적 영역에서 일할 기회가 다시 주어질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민간 분야에서 10명, 20명 일자리를 만드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더 잘해서 100명, 200명으로 늘려 나갈 생각입니다.”

유 회장은 그 대신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변치 않고 자기 곁을 지켜준 박영석 전 비서실장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영석 같은 비서실장을 뒀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내가 그를 대주그룹 회장에게 추천했어요. 처음에는 임원의 견제가 심해 6개월 동안 밥도 혼자 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묵묵히 다른 사람이 못 풀어내는 문제까지 해결해내자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전무와 부사장을 지낸 뒤 사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한 가지를 잘하면 열 가지도 잘하는 법입니다. 그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면 직접 선거운동을 도울 생각입니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그는 영락없는 제빵공장 회장이었다. 도넛을 만드는 공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그에게서 ‘도넛 달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주간동아 793호 (p36~3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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