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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제 회계 기준, 정말 미치겠네”

2조 원 이상 기업 올 1분기부터 적용…회계사·애널리스트 공부해도 헷갈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국제 회계 기준, 정말 미치겠네”

“국제 회계 기준, 정말 미치겠네”
“주경야독이 따로 없습니다(웃음).”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 다니는 김모(33) 회계사는 업무를 보는 틈틈이 국제회계기준(이하 IFRS)을 공부한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은 탓에 시간을 내서 공부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자산 2조 원이 넘는 상장사는 올 1분기부터 의무적으로 IFRS에 따라 분기·반기·연간 재무제표를 모두 연결 기준으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계사는 “IFRS를 적용한 분기 재무제표를 만들었지만 처음 도입하는 것이라 적지 않게 고생했다”며 “회사도 강의를 마련하고 시험을 보게 하는 등 회계사들이 IFRS를 빨리 익힐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IFRS 때문에 분주한 곳은 비단 회계법인만이 아니다. 기업 재무팀도 마찬가지다. 물론 기업이 내놓은 감사보고서를 분석해 투자보고서를 작성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그리고 개인투자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은 하나같이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예상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당혹

5월 30일까지 1791개 상장사가 일제히 1분기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IFRS의 모습이 드러났다. 개별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회계 처리 방법과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해놓은 기존 한국회계기준(이하 K-GAAP)과 달리, IFRS는 큰 원칙만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K-GAAP에 비해 계산 방식과 표기 형식에 대한 세세한 요구사항이 적다. IBK투자증권 심원섭 연구위원은 “재무제표에 표시해야 하는 계정과목을 최소화함으로써 기업 자율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또한 IFRS는 연결 재무제표를 중시한다. 연결 재무제표란 지분으로 서로 얽힌 여러 기업의 경영 실적을 한데 묶은 재무제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A회사가 B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거나 정관에 이사 선임 등을 규정해 B회사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있을 경우(이런 경우 B회사를 A회사의 종속 회사라 한다)에는 A와 B의 실적을 연결해 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삼일회계법인 박영규 회계사는 “연결 재무제표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넘긴 부채나 손실까지 공개하기 때문에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 상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IFRS가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올해에만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브라질, 인도 등 세계 150여 개 나라가 IFRS를 도입했을 만큼 IFRS는 대세다. 몇 년 전부터 정부는 IFRS 도입을 예고했고, 업계에선 일찌감치 준비해왔다. 취지도 좋고 세계적 추세임에도 기업, 회계사, 애널리스트, 투자자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K-GAAP에 따르면, A회사는 자기 실적만 갖고 재무제표인 ‘개별 재무제표’를 만들면 됐다. 하지만 IFRS에 따르면, 자산 2조 원이 넘는 회사는 분기·반기·연간 재무제표 전부를 자회사 실적까지 포함한 ‘연결 재무제표’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2조 원 미만의 상장사는 내년까지 연간 재무제표만 연결 기준으로 작성하면 되고, 분기와 반기 재무제표는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만 내놓으면 된다. 그 결과, 다양한 종류의 분기 보고서가 나온다.

특히 새 기준을 적용해 올 1분기 보고서를 만들면서 지난해 1분기 보고서는 기존 K-GAAP에 따른 보고서를 올려놨다.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 간 실적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개별 기업의 작년 동기 대비 혹은 전기 대비 실적을 비교하는 것도 쉽지 않다. 투자자나 애널리스트가 혼란을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 연구원은 “비교가 실종되면서 기업 실적을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적 큰 변동 착시효과 요주의

“국제 회계 기준, 정말 미치겠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실적발표자료에 참석해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 기준으로는 크게 변화 없는 실적도 바뀐 회계 기준에 따라 큰 변동을 보이는 착시효과마저 생긴다. IFRS 도입으로 대손충당금을 경험손실률 기준으로 쌓게 된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사는 실적이 좋아진 반면, 고객의 마일리지가 부채로 잡힌 항공 업종은 실적이 감소하는 식이다.

IFRS 착시효과의 피해 업종으로 분류되는 건설사를 살펴보자. 2011년 5월 30일 IFRS에 따라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한 삼성물산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1395억 원이다. 지난해 1분기 삼성물산의 당기순이익은 2414억 원으로, 1년 새 1000억 원가량 순이익이 줄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전년도 1회성 수익을 제외하고 올 1분기 실적에 지난해처럼 K-GAAP를 적용하면 이익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관행적으로 선분양을 해온 건설업계에선 공사 진행률을 고려해 수익을 단계적으로 반영했지만, IFRS에선 완공 시점에 한꺼번에 수익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기존 회계방식에선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급 보증을 부채 비율 산정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IFRS를 도입하면서 건설사의 충당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채 비율이 갑자기 높아졌다. 이런 IFRS 착시효과를 제외한다면 실제 순이익 감소는 없다는 주장이다.

매출이나 당기순이익뿐 아니라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도 새 회계기준을 적용하면서 크게 달라졌다. 기존 개별 재무제표에선 지분율만큼 계열사 이익을 반영했지만, IFRS에선 종속 회사의 순이익을 모두 합산한다.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누는 PER를 계산할 경우, 연결 재무제표에 나온 당기순이익에서 자회사의 비지배주주 지분을 제외하고 계산해야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자칫 종전 K-GAAP에서 했던 것처럼 순이익을 그대로 반영할 경우 PER에 상당한 착오가 발생해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보의 보고’인 재무제표의 주석을 꼼꼼히 점검하는 투자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이 IFRS 조기 적용 기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무상태표와 포괄손익계산서의 평균 계정과목 수는 각각 53%, 59% 감소했지만 주석 페이지 수는 71% 증가했다. 주석에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투자증권 정종혁 연구원은 “재무제표 주석을 보면 새로운 회계기준 적용에 따른 수치 변동과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그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기준에서 마이너스였다가 새 기준에서 플러스가 된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문 만큼 IFRS에서 실적이 K-GAAP를 적용했을 때보다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대투증권 성용훈 연구원은 “과도기라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적 관련 데이터가 쌓이고 이해관계자가 바뀐 제도 내용을 숙지하면 혼란이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간동아 793호 (p32~33)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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