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3

2011.06.27

北 비대칭 군사위협 南 ‘돈 먹는 하마’ 딜레마

한국군이 수십 배 더 쓰는 ‘레버리지 효과’ 악순환 끊어야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6-27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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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비대칭 군사위협 南 ‘돈 먹는 하마’ 딜레마

    1 강원 원주시의 미군기지 캠프이글 내 대형 격납고에 정렬된 아파치 공격헬기들. 2 북한 황해도 고암포에 건설된 공기부양정 전진기지 위성사진. 미국의 위성회사 디지털글로브가 2월 초 촬영한 모습으로, 지금은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1 북한 황해도 남대천 하구의 고암포. 백령도에서 불과 50km 남짓 떨어진 이 지역에 공기부양정 전진기지를 신축 중이라는 정보가 확인된 것은 1월 초였다. 최대 1500~2000여 명, 3~4개 저격여단의 특수전 병력을 태우고 30~40분이면 백령도에 닿을 수 있는 위치. 이는 북한이 유사시 서해 5도나 연안에 기습상륙작전을 감행하려는 포석이라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지금껏 공기부양정 상륙 저지 임무를 맡아온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 헬기는 조만간 완전 철수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경공격형 500 MD 헬기를 서해 5도에 서둘러 배치하고 2조 원의 예산을 들여 신형 아파치 헬기 AH-64D 36대를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암포 기지의 공기부양정 보관시설은 공습으로부터 전투기를 보호하는 엄체호(掩體壕)와 모양 및 규모가 유사하다. 2002년 한국군이 F-15K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엄체호 40여 기 건설 예산이 500억 원 내외. 군 시설부서 관계자는 “고암포 기지를 한국군이 짓는다고 가정해도 예산은 수백억 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군이 500억 원을 들인 고암포 기지 때문에 한국군은 그 40배인 2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2 공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 스텔스 기능을 포함한 전투기 60대를 가능하면 2015년 이전에 구입하는 이 사업에는 총 9조 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들은 스텔스기 도입의 핵심 이유로 “유사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은거할 양강도와 자강도의 특각을 타격할 ‘보이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는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로 북한 수뇌부의 공포를 극대화해야 섣부른 추가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이른바 ‘적극적 억제 전략’의 연장이다. 특각의 지하벙커를 관통할 수 있는 GBU-28 등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려면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북한이 지하벙커 건설에 쓴 돈은 얼마일까.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에 들어설 미군의 한국전투사령부(KORCOM)는 근무자 1000여 명이 핵공격에도 1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게 설계했다. 김 위원장 특각에 비해 수십 배 큰 규모인 이 시설의 예상 건설비는 1조 원 내외. 20여 개로 알려진 특각 지하벙커 건설비를 모두 합해도 KORCOM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시 말해 1조 원 미만을 투입한 특각을 공격하려고 9조 원 이상을 투입해 스텔스 전투기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3 서울 광화문에서 직선거리 40km 내외에 불과한 휴전선 북측 지역의 장사정포는 수도권을 불안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군사위협이다. 총 1100문으로 추산되는 서부전선 장사정포 가운데 서울 중심부를 사거리 안에 둔 것은 170mm 자주포 100문과 240mm 방사포 250문. 북한의 170mm 자주포와 유사한 미국제 175mm 자주포의 가격은 대당 15만9000달러고, 240mm 방사포와 비슷한 미국제 다연장로켓(MLRS)은 230만 달러 내외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 전체를 미군 무기체계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6000억 원 내외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국방부는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는 대화력전(對火力戰)을 위해 2020년까지 30조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북한군의 6000억 원은 포를 배치한 갱도형 진지의 건설비 등을 계산하지 않은 금액이지만, 한국군이 계획하고 있는 30조 원도 이미 배치한 무기체계나 시설은 포함하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50배를 넘나드는 차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위협 때마다 새 무기 요청

    北 비대칭 군사위협 南 ‘돈 먹는 하마’ 딜레마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의 후보 기종으로 거론되는 F-35 스텔스 전투기.

    ‘비대칭 군비경쟁(Asymmetric Arms Race)의 시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한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재래식 무기체계 대신 장사정포와 미사일, 핵, 특수전 병력 같은 비대칭 무기체계의 전진배치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한 남한에 맞서려면 ‘좀 더 저렴한 대안’이 불가피했다는 것. 한반도 유사시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이들 대량살상무기와 비대칭 전력이라는 게 2000년대 이후 군 당국과 전문가의 공통된 결론이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한반도에서 6·25전쟁 같은 재래식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게 줄었으므로 이제는 국지도발이나 대량살상무기 위협, 후방침투 등을 방어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최근 각 군이 제기하는 대형 전력증강사업이 한결같이 비대칭 위협을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 역시 이러한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위협을 확인할 때마다 이를 무력화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무기체계 도입을 요청하는 식이다.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 사이에서는 “군이 이를 계기 삼아 그간 후순위로 밀렸던 숙원사업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육군의 아파치 헬기 사업이나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 사업을 모두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전력증강사업의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이 투입하는 비용보다 작게는 10여 배,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한다.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유사한 시설이나 무기체계를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은 남한의 10분 1에 불과하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 아주 적은 군사비를 투입하고도 남한은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비대칭 전력의 레버리지(leverage) 효과’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비용 차이가 남북 간 경제 규모나 군사비 차이를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2009년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한국 원화 기준 28조6000억 원으로 남한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군사비의 경우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는 2009년 5억7000만 달러지만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87억7000만 달러에 해당한다는 것이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추산. 한국의 2011년 국방비는 31조4000여억 원으로 그 3배가 넘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레버리지 효과를 감안하면,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추가로 등장할 때마다 각각에 대응하는 새로운 무기체계를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현재의 방식은 이러한 현격한 경제 규모 차이로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한국군이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기묘한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기존 무기체계의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용 부담이 발생할 정도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에 동원한 북한군 122mm 방사포는 전면전에 대비해 서부전선에 배치했던 것을 잠시 이동한 것이었지만, 이 때문에 국회는 6000억 원 이상의 추가 지출을 결의한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방어형 군사력 건설이 공격형에 비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군이 새로운 비대칭 위협이 확인될 때마다 대형 전력증강 사업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데 열중해 한 가지 무기체계를 다목적으로 활용하거나 여러 무기체계를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등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하지 못한 탓도 크다. 무조건 일대일로 대응하려는 식이다 보니 북한의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끌려 다니는 것이다.”

    기존 자산 활용 극대화 필요

    작계(OPLAN) 5030. 2000년대 초반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태평양사령부가 수립한 것으로 알려진 개념계획이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정찰기를 북한 영공에 근접 비행시켜 북한 전투기의 잦은 출격을 유도함으로써 연료 소진을 유도하거나, 기습적인 군사훈련 실시로 북한이 식량 등 전시 대비 비축 자원을 사용하도록 만든다는 게 골자로 알려졌다. 이는 1980년대 미국이 촉발한 강도 높은 군비 경쟁이 소련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경험적 인식에서 도출한 것으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는 동안 정부 핵심 당국자들은 군사적 긴장이 북측 경제 상황을 악화해 체제 불안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은 정확히 그 반대에 해당한다. 군사적 긴장으로 북한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국 경제가 부담을 느끼는 결과가 연출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명박 정부야말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 확보 차원에서 군사비 투자를 줄이려 고심했던 정부라는 사실. 한 북한 군사 전문 연구자의 말이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편지를 청와대에 보내 파장이 일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 경색이 이어지고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이러한 기류는 사그라졌고, 그 와중에 군 당국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은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군비 경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직시하고 나면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할 방법 역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악순환의 연쇄고리를 끊을 좀 더 ‘스마트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추가로 확인될 때마다 공격자산을 구입해 전체 전력지수를 높이려는 관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감시정찰자산 확충과 효율적인 C4I체계(지휘통제자동화체계) 구축으로 기존 자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새 패러다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연평도 포격 대응 과정만 봐도 당시 연평부대가 북한군 방사포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한 이유는 K-9 자주포 등 타격자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인정찰기 등 감시체계와의 연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신동아’ 1월호 ‘북한 장사정포 서울 공격 시뮬레이션’ 상자기사 참조). 야전과 이론을 두루 경험한 한 공군 지휘관은 이를 가리켜 “이제는 주먹이 문제가 아니라 눈과 신경망이 관건인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군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의지와 사고의 전환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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