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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원전 수출 환호성 1년 만에 ‘장탄식’

요르단, 터키 수주전서 연거푸 쓴잔 … 금융경쟁력 확보 등 수요 맞춤형 전략 절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원전 수출 환호성 1년 만에 ‘장탄식’

원전 수출 환호성 1년 만에 ‘장탄식’

한전 컨소시엄의 UAE 원전 건설 수주는 한국의 플랜트 수출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경북 경주시에 자리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3, 4호기 건설 당시 모습.

“해냈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해냈습니다.”

2009년 12월 27일 오후 7시 한국전력(이하 한전) 본사 지하 2층 벙커.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400억 달러(약 47조 원) 규모의 원자력 발전을 수주했다는 낭보가 타전되자, 지하 벙커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국내외 11개사 원자력 전문가 80여 명은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정부는 이날을 ‘원자력의 날’로 지정하고, 2030년까지 80기 원전을 수주해 전 세계 발주 예상량 가운데 5분의 1을 차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당장이라도 한국은 프랑스, 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원전 수출 강국으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년 뒤인 2010년 12월 27일 ‘제1회 원자력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더는 1년 전과 같은 환호는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숙연함과 결의가 가득했다. 지난 1년간 받아든 성적표 때문이다. UAE 원전 수주 이후 한국의 원전 수주 실적은 ‘0’. 한국은 두 차례 수주전에서 연거푸 고배를 맛봤다. 2010년 1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요르단의 연구·교육용 원자로 건설사업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면서 UAE에 이어 요르단에도 원전을 수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면서 2010년 5월 요르단 원전 수주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프랑스 아레바 연합군에 넘어갔다.

자금 조달 치명적 약점 노출

200억 달러 규모의 터키 시노프(Sinop) 원전 수주 실패는 더 뼈아팠다. 한국은 그동안 터키와의 우호협력 관계를 이용해 양국 원자력 협력문서에 먼저 서명하고 2010년 6월에는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정부는 사실상 수주를 한 것으로 여겼고,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때 계약서명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러나 일본의 무서운 막판 추격으로 터키 원전은 일본으로 넘어간 분위기다. 2010년 12월 22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한국과 터키의 원전 수출 협상은 2010년 11월 이미 중단됐다”며 “일본의 역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은 향후 3개월 내에 터키와 일본 정부가 원전 수주 협상을 마무리지을 계획이라며, 자국의 수주를 정해진 일로 받아들였다.



두 차례 수주 실패에서 한국 원전의 치명적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로 금융자금 조달 능력의 취약성이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한국은 원전 수출을 위해 거국적으로 나섰지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UAE 원전 수주는 막대한 오일달러를 앞세운 발주자 측이 개발비용을 상당 부분 부담했지만, 터키 원전을 비롯해 앞으로 발주될 대부분의 원전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4기를 짓는 터키 원전의 경우, 총 200억 달러의 비용을 30대 70으로 나눠 30%는 발주국과 수주국 양국이 지분투자를 하고, 나머지는 금융회사에 PF로 빌린 다음 나중에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전기요금이 곧 원전 건설비가 되는 탓에 먼저 수주를 한 컨소시엄 쪽이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자금을 조달해 원전을 만들어야 한다. 풍부한 국내 자금을 활용하는 일본에 비해 덩치가 작은 국내 시중은행들이 원전 금융자금 조달 창구 기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영국의 금융전문지 ‘더 뱅커(The Banker)’에 따르면 세계 1000대 은행 가운데 국내 은행 중 순위가 가장 높은 KB국민은행(69위)의 기본자본은 143억3000만 달러로 1위인 뱅크오브아메리카(1604억 달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수위를 차지한 중국공상은행(911억 달러)에 비해서도 6분의 1 수준이다. 한국수출입은행 원자력사업팀 관계자는 “국내 상업은행이 10년 남짓한 긴 기간에 거액의 자금을 제공하기는 곤란하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PF 자산 보유 규모를 확대하기에도 한계가 있어 수출입은행, 수출보험공사 등 공적수출신용기관(ECA) 참여 없이는 원전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ECA도 결국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려와야 하는데, 문제는 조달금리다. 한국과 일본의 신용등급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 ECA는 일본 금융기관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일본 국내의 기준 금리는 우리보다 훨씬 낮다. 원전은 건설과 운영에만 20년이 넘게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1%의 조달금리 차이도 큰 비용 차이를 유발한다.

금융 파이낸싱이 취약하다면 효율적인 수주 시스템으로 이를 만회해야 하지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또 다른 발목을 잡고 있다. 원전 수주는 민(民)과 관(官)은 물론 제조업체와 금융회사가 힘을 합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수주 시스템은 한전이 혼자서 수주를 전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 수주는 한전의 여러 사업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전이 원전 수주에만 ‘다걸기’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원전 수출 환호성 1년 만에 ‘장탄식’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이 UAE가 발주한 원전 프로젝트 수주와 관련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역시 “그동안 한전이 너무 독단적으로 원전 수주에 나섰다”며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박영준 지경부 2차관은 “원전 수출이라는 것이 국가 대항전인데, 한전이라는 공기업 중심의 현재 (원전 수출) 시스템은 너무 실무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리드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각 부처와 상의해 그런 안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중동에 이어 한국이 다음 원전 수출 대상 국가로 지목하는 곳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권 국가다. 이들 국가는 원전 도입에서 무엇보다 ‘국민 수용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신규 원전 용지 선정이나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정책 방향 결정이 원전 수출에도 핵심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동남아 국가서 르네상스 시대 여나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정익철 연구위원은 “이들 국가는 원전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원전 건설에 거부감을 느껴 실질적인 원전 도입 절차를 선뜻 밟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한국형 원전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이 우리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과 국민 수용성 증진 방안, 그리고 원자력 커뮤니케이션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원전을 발주하는 개별 국가의 사정에 맞는 ‘수요 맞춤형 원전 수출전략’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장문희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원전 시장은 1400MWe급 이상, 1000MWe급 중소형 등으로 원전의 용량이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수요자 맞춤형 기술과 상품으로 금융 파이낸싱의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는 원전산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수출 실적을 내지 못하면 국내 원전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UAE 수주 다음의 실적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1년의 시간을 겪으면서 원전 수출에 대한 환상은 깨졌고, 냉엄한 현실로 돌아왔다. 진정한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할 시점이다.



주간동아 2011.01.03 769호 (p32~33)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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