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9

2011.01.03

신바람, 분다 불어온다

2011년, 도전과 긍정의 선순환 상상만 해도 흥겨워

  • 최기우 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torogiwoo@nate.com

    입력2011-01-03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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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바람, 분다 불어온다
    산줄기와 물줄기가 지나면서 마을마다 풍류를 달리하는 것이 우리네 문화다. 하지만 고깔소고춤과 부들상모놀음, 잡색놀이와 판굿 등의 쇠가락, 장구가락 같은 우리의 가락은 어디에서건 신명 난 감흥을 선사한다. 꽹과리와 징 소리. 생각만 해도 어깨가 들썩이고, 손발에 절로 힘이 간다. 한바탕 어울리는 소리에 놀라 오감이 멍해지다가, 이윽고 한 패거리로 동요되고야마는 풍물놀이의 살가운 힘. 바로 신바람이고 흥이다. 흥을 떠올리면 즐겁다. 하지만 “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는 무척 고되다. 흥에는 ‘흥겹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따른다. 즐거움의 적극적 발산 혹은 발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즐겁고 상쾌한 느낌이다.

    그러나 흥은 즐거움이나 재미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미적 의미를 지닌다. 순우리말로 흥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게 하는 감정. 신이 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콧소리지만, 비웃거나 아니꼬울 때 내는 콧소리이기도 하다. 한 단어에 전혀 다른 뜻이 담겨 있어, 어감으로 의미를 조절하고 알아들어야 하는 복잡 미묘한 단어인 것이다.

    한자어 흥(興)은 ‘마주 들다’는 뜻의 여 자에 같을 동(同)을 집어넣은 글자다. 흥이 나고 흥을 돋우며 흥이 더해가는 것을 뜻한다. 또 힘을 합해 일으켜 성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전적 의미의 흥은 우리의 악기와도 관련이 깊다. 흥은 가야금의 제2현을 이르며, 양금(洋琴)에서 오른쪽 괘 왼쪽 넷째 줄 중려(中呂)의 입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즐거움의 적극적 발산 혹은 발현

    ‘시경(詩經)’에서 말하는 육시(六詩) 중 하나도 흥이다. ‘시경’은 육의(戮義)를 통해 시작(詩作)을 이야기하는데, 내용에 따라 풍(風)·아(雅)·송(頌)으로, 표현기법에 따라 흥(興)·비(比)·부(賦)로 분류한다. 여기에서 흥은 사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분위기를 일으킨 후, 말하려 하는 사물의 본뜻을 다시 드러내면서 시를 짓는 방법이다. ‘시경’이 항간에 구전되는 노래를 엮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흥은 메기고 받는 노래다. 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너와 나와 우리가 소통하는 소리다.



    “ ‘흥(興)’ ‘한(恨)’ ‘무심(無心)’의 본질이 서로 유연하게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함으로써 풍류의 체계를 구축하는데, 이는 동아시아적 미의 기반이 된다.”

    우석대 신은경 한국어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으로 풍류를 앞세웠다. 신 교수는 흥의 의미를 ‘흥분’ ‘즐거움’ ‘긍정적인 시선’ ‘헌사함’ ‘신바람’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데, 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흥분’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움직여 춤을 추고,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을 완전히 발산할 정도의 유쾌한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 참된 ‘즐거움’이다. 여기서의 흥은 한민족의 가무(歌舞)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춤과 노래에는 주변 사물이나 사람, 삶 자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흥미나 관심으로 표현되는 ‘긍정적인 시선’은 자연스레 따르는 흥의 조건이다.

    또한 흥은 생명감 넘치는 활기찬 상태를 뜻한다. 흥은 그것을 느끼는 주체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할 때 비로소 발현되기 때문이다. 회사가 즐거워야 기업이 산다는 펀(Fun) 경영, 가축이나 농작물에 음악을 틀어주면 병충해에 강해지고 열매도 더 많이 맺는다는 사실이 일례다. 떠들썩하거나 흥청거리는 느낌은 ‘헌사함’이고, ‘신바람’은 감정이 고조돼 자기 자신을 잊고 도취 상태에 이르는 엑스터시(ecstasy)다.

    흥이 한이나 무심과 다른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대상이 향유한다는 것이다. ‘한’은 주로 어떤 이유에서건 소외를 체험하는 계층과 깊은 연관이 있고, ‘무심’은 주로 논리적 사고와 인식작용에 훈련된 지식층에 더 밀착돼 있다. 하지만 다른 이와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흥’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계층이 향유할 수 있다.

    전북대 최승범 명예교수는 ‘삶의 참의미 찾는 넉넉한 마음’이라는 글에서 선인들의 흥을 북돋운 것으로 ‘자적정신’을 거론했다. 자적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자적이요, 자적기적(自適其適)의 자적이다. 자적정신은 선비정신, 풍류정신, 애락정신과 통하지만, 이들에는 각각 지절(志節), 멋, 도(道)의 색이 짙은 반면 자적정신에는 자족(自足)의 느낌이 앞선다.

    그래서 자적정신은 다사한 세속 밖에서 한가로움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만족하며 즐거이 지낼 때 가꿀 수 있다. 세상의 영달을 한 조각 뜬구름으로 보고, 마음에 알맞은 것을 즐기자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근심 없는 삶을 스스로 가꾸고 누리는 데서 꽃피는 자적정신이 흥의 본질이다. 우리 선인들은 이 자적정신으로 사람살이의 맛을 더했던 것이다.

    흥이 신명과 만나면 ‘신바람’이 된다. 신명은 밝은 마음가짐이 힘차게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막힘없는 바람처럼 불어가는 기운인 신바람은 곧 풍류에 가닿는다. 풍류라는 말에는 자연의 뜻이 내포돼 있다. 자연처럼 성품이 고지식하지 않고 속되지 않아 운치와 멋스러움이 있다는 뜻이다.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흥’

    신바람, 분다 불어온다

    단순한 즐거움, 재미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흥’은 생명감 넘치는 활기찬 상태를 뜻하며, 한민족의 가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민족은 새로운 문화의 바탕이 되는 전통문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안에 체화된 원형질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판소리 기운이 깃든 비보이 공연이 대표적이다. 부르는 사람과 거드는 사람, 그리고 듣는 사람 모두 흥이 맞아야 하는 판소리와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 가쁜 숨, 순간의 파워 등으로 구성되는 비보이 공연은 대표적인 흥의 자원이다. 가야금의 잔잔한 음률이나 사물놀이의 풍성한 움직임과도 조화를 이루는 비보이의 몸짓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명절과 세시풍속, 축제와 민속놀이 등에서 보이는 흥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명절은 절로 흥이 나는 날이다. 이번 대목에 한밑천 뽑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상인들과 색동옷에 마냥 흥겨운 아이들, 정자나무 밑에서 벌어지는 온갖 밤놀이….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명절에는 마을 가득 전 부치는 냄새도 흥겨움에 한몫을 한다.

    물론 명절을 앞두고 갖는 기대에 비해 명절 당일은 다소 심심한 경우도 있지만, 모처럼 가까운 친인척과 둘러앉은 것만으로도 삶에 새 기운이 채워진다. 축제는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모두가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는 마당, 마주한 사람 따라 즐거운 것이 흥이다.

    ‘흥’은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씨암탉을 잡아주는 장모의 은근한 미소, 한껏 물을 머금은 모를 바라보는 농부, 친구 어머니가 고봉으로 퍼준 밥 한 그릇, 목욕을 한 뒤 맞는 청량한 바람, 찬거리 없는 주부에게 들려오는 딸랑딸랑 두부장수의 종소리, 비스듬하게 밀짚모자를 쓴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바꾼 은행 앞 노신사의 온화한 미소, 동백기름 발라 참빗으로 곱게 머리 빗어 가르마 타고 쪽을 진 할머니들의 나들이, 남동생 손톱에 몰래 봉숭아 꽃물을 들인 장난꾸러기 누나의 낄낄거림, 실직한 가장의 주머니에 몰래 넣은 두둑한 용돈, 청년백수의 책상에 놓인 아버지의 격려 편지, 보리타작 신나게 하고 마시는 얼음 동동 미숫가루….

    떠올리기만 해도 입꼬리가 하늘로 오르는 유쾌한 상상. 흥을 풀면, 흥에 겹다. 흥을 풀면, 슬픔은 머무르지 않고 환희의 세계로 승화된다. 흥은 경계가 없다. 흥으로 하나 되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즐겁다. 모든 사람이 흥에 겹다. 신바람 나면 없던 의욕이 샘솟고, 불평과 짜증은 모습을 감춘다. 2011년 ‘신바람 신묘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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