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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원더걸스 ‘아메리칸드림’ 이뤘나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76위 선전 … 마케팅의 힘(?) 개운찮은 뒷맛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원더걸스 ‘아메리칸드림’ 이뤘나

원더걸스 ‘아메리칸드림’ 이뤘나

지금까지 원더걸스의 미국 내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콘셉트형 그룹, 아시아 출신 등 ‘비주류’적 한계를 딛고 일어서려면 활동의 방향성을 재점검할 필요도 있다.

여성 아이돌그룹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미국 데뷔 후 4개월여 만인 지난 10월 셋째 주, 영어로 개사한 ‘노바디’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76위에 오른 것.

그동안 보아 등이 하위 갈래 차트에서 성과를 보인 적은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핫100’에 들어간 가수는 원더걸스가 처음이다. 원더걸스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에 따르면 “1980년 이래 동양인 가수가 싱글차트 ‘핫100’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방어적 자축 파티’… 석연치 않은 JYP

이 정도면 한국을 넘어 아시아 차원에서도 꽤나 중요한 성과다. 한류(韓流)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줬다. 그러나 JYP의 반응을 찬찬히 살펴보면 마냥 축제 분위기만은 아닌 듯하다. 일단 이를 홍보하는 박 대표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박 대표는 10월23일 가진 빌보드 차트 진입 자축 기자회견에서 방어적 자세로 일관했다. 빌보드 차트 진입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는 “핫100은 바닥부터 인기몰이를 하지 않으면 올라가기 불가능한 차트” “핫100은 단순 판매량이 아니라 라디오 방송 횟수가 55% 비중이며, 미국 라디오 방송 횟수는 조작과 로비가 불가능하다”는 등의 답을 이어가면서 흔히 나올 법한 로비설을 일축했다. 심지어 미국 내 한인들의 반응을 묻는 평범한 질문에도 “(빌보드 차트에 반영되는) 톱40 라디오 20개 방송국 중 동양인이 근무하는 회사는 샌프란시스코에 딱 한 곳뿐이다.



나머지 19개에는 한국인을 포함해 동양인이 전혀 없다”면서 “원더걸스에게 교포들의 응원은 분명 큰 힘이 되지만 현재 성과의 실질적 원동력이 됐다고는 볼 수 없다”며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과민반응을 보인 원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표의 JYP 자체에 있다. JYP의 미국 진출 기획은 원더걸스가 처음이 아니다. 원더걸스가 뜨기 직전, JYP의 구세주로 꼽히던 가수 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언론 플레이가 따랐다. 비의 미국 진출 기획은 2006년 2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으로 시작됐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미국 뮤지션이라면 한 번쯤 서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임이 분명하다. 엘튼 존 같은 세계적 스타만이 이곳에서 공연했다. JYP 측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가 공연한 장소는 우리가 흔히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알고 있는 곳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시어터’라고 불리는 곳으로, 별관 격의 부속 건물이다.

규모도 훨씬 작고 유명 뮤지션들은 이곳에서 공연한 적이 없다. 공연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관객의 95%가 아시아계, 90%가 여성”이었다며 “오래된 MTV 비디오를 한국어로 더빙해 보는 것 같았다”고 혹평했다. 국내에선 ‘미국을 평정한 비’로 묘사됐지만, 사실상 ‘그들만의 잔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일본 도쿄돔 공연이 있었다.

2007년 5월25일 ‘레인스 커밍 인 재팬’ 공연이 바로 그것. 도쿄돔 역시 일본 뮤지션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하마사키 아유미, 글레이, 라르크 앙 시엘, 스피드 등 쟁쟁한 스타들이 도쿄돔에 섰다. 일본에서 비는 분명히 별관이 아닌 도쿄돔 본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왜 도쿄돔인가’에 의문이 일었다. 도쿄돔 무대는 최소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뮤지션만이 설 수 있다. 도쿄돔 수용인원은 공식적으로 4만6314명이지만, 일반적으로 5만50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 인원을 단번에 끌어모을 수 있는 뮤지션은 많지 않다.

‘콘셉트형 그룹’의 한계 극복 필요

하물며 일본 내 지지기반이 많지 않았던 비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에서는 100만장은커녕 음반당 2만장도 팔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공연에 오는 팬들은 음반을 구매한 이들보다 적다. 한마디로 너무 무리하게 도쿄돔 공연을 진행한 것이다. 판매구조상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 도쿄돔 공연을 강행했다는 것은 다분히 ‘사대주의 마케팅’을 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더걸스 ‘아메리칸드림’ 이뤘나

10월23일 원더걸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진입 관련 기자회견에서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중문화 선진국’으로 알려진 국가의 아이콘적 장소에서 공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위상을 얻었다고 홍보하고, 이를 통해 국내에서 입지를 굳힌 뒤 한류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권에서 위상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입증하듯, 도쿄돔에 선 뒤 비는 더 이상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 또 매디슨 스퀘어 가든 시어터 공연과 함께 홍보했던 미국 진출 계획도 소속사를 바꾼 현시점까지 별 진전이 없다.

이런 전력이 있다 보니 대중도 더 이상 JYP 측의 ‘미국 진출’ 홍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JYP 역시 원더걸스에게는 그런 의혹이 달라붙지 않도록 너무 앞서 발버둥치고 있다.

진실을 말한 양치기 소년의 비애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JYP 측이 마냥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박 대표는 적지 않은 의문점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올인’ 발언이다. 그는 “(원더걸스는)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 없다. 미국에서 정말 잘 되고 있다. 국내에 홍보하려 미국에 간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성공해 보이려고 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빌보드 차트를 깼으니 아시아 활동을 하겠구나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같은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한국에는 광고촬영 때문에 돌아왔다”고 밝혔고 멤버 예은은 “중국 일정이 있어 곧 출국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미국 성과를 통해 국내 광고 수주를 유지하고, 중국 일정까지 만드는 게 과연 비의 사대주의 전략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빌보드 차트 진입 자축 기자회견의 ‘진정한’ 결론은 이렇다. 원더걸스의 성과는 사실이다. 그러나 치하의 방향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 대표가 아무리 ‘자생적 풀뿌리 인기’를 주장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신인그룹에 불과한 이들의 노래가 ‘그 자체로 매력적이어서 성과를 냈다’고 해석하는 것은 미국처럼 성숙한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만큼 박 대표의 마케팅 능력이 뛰어났고, 또 열심히 뛰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평가해야 할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일본의 우타다 히카루나 마쓰다 세이코가 유니버설, 컬럼비아 등 미국 유수 레이블을 걸치고도 얻어내지 못한 성과를 JYP USA가 이뤄냈다. ‘소속사의 힘’ 하면 곧바로 ‘로비’를 떠올리고, ‘로비’ 하면 ‘조작’을 떠올리는 대중 인식을 염려한 나머지 지나치게 앞서나가면서 이상한 홍보 포인트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 원더걸스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대주의 마케팅을 활용해 국내와 아시아권에 어필하려 할 것이다.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76위면 아직 실수익을 낼 단계는 아니다. 당연히 그동안에도 국내와 아시아권에서 미국 시장에 도전할 자원을 구해야 한다. ‘한국과 아시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의 무리한 방어 발언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또한 “미국에선 복고 콘셉트로 간다”는 박 대표의 계획을 제대로 짚은 미디어가 없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식의 콘셉트형 그룹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장기적 안착이 힘들다.

더군다나 ‘노바디’는 국내 뮤직비디오에서도 알 수 있듯, 할리우드 영화 ‘드림걸스’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지금은 이런 이미지가 먹힌다. 새롭고 신기하다. 일본에서도 ‘드림걸스’를 따라하는 개그맨 와타나베 나오미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일종의 트렌드다. 금세 지나가버린다. 트렌드의 원점이 대중의 기억에서 잊힐 때가 되면 그 트렌드에 따른 유사상품, 그것도 ‘아시아인’이라는 변종적 유사상품은 당연히 힘을 잃는다.

박 대표와 JYP 측의 성과에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원더걸스의 방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고, 지적할 점도 많다. 대중의 의혹과 불신에도 여전히 근거가 있다. 이에 무작정 ‘의혹 전격 차단 기자회견’을 열 일이 아니다. JYP와 박 대표가 대중의 신뢰를 얻고, 원더걸스의 성과에 대해 국민적 찬사를 얻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활동에 더 충실해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미국 진출이 이들의 진정한 목표라면 국내에서의 언론 플레이적 의도가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순간 신뢰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라는 점을 이 ‘놀라운 소녀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주간동아 2009.11.10 710호 (p70~71)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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