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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몸은 ‘곰’, 놀림은 ‘제비’ 53m 길이 수송기 맞아?

(세계 ‘넘버 투’ C-17 탑승기) 74t 화물 싣는 ‘하늘 보급창’ 격렬한 공중기동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몸은 ‘곰’, 놀림은 ‘제비’ 53m 길이 수송기 맞아?

몸은 ‘곰’,  놀림은 ‘제비’ 53m 길이 수송기 맞아?

‘위험천만’…. C-17이 기수를 들어 상승 비행을 하는 중 한 승무원이 활짝 열린 바닥 문 끝에 버티고 앉으려 하고 있다. 영화 ‘에어포스 원’을 찍는 줄 알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송기 C-17의 내부는 정말 넓었다. 천장이 높은 창고 같다고나 할까. 여객기라면 상하층으로 객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간 조종실에는 4개의 좌석이 있었다. 앞의 두 좌석은 조종사와 부조종사용이다. 기자는 조종사의 뒷좌석에 앉았다. 2001년 프랑스에서 비즈니스 제트기 ‘팔콘’의 조종실에 동승해 비행해보고 8년 만에, 이륙하는 항공기의 조종실에 다시 앉았다.

조종실의 안전띠는 5점 연결이다. 양쪽 어깨와 허리,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의 끈을 버클로 연결해 몸을 고정시킨다. 그때 컵 홀더에 꽂혀 있는 반쯤 마신 생수병이 눈에 띄었다. 조종실 창밖에선 F-15가 격렬한 공중기동을 하고 있었다. 그 직전에는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이 8대의 T-50으로 화려한 곡예비행을 보여줬다. 기동성이 좋은 F-15나 T-50의 조종실에는 모든 물체가 고정돼 있다. C-17은 기체가 워낙 커서 저런 기동을 하지 못하기에 물병을 아무 데나 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하나 바로잡기도 힘들어

잠시 후 C-17이 주활주로의 끝에 섰다. 브레이크를 꽉 밟은 상태에서 부조종사가 풀 파워를 가하자 기체가 진저리를 치며 ‘왕~’ 하는 소리를 냈다. 브레이크를 풀자 활주로 정중앙에 찍힌 하얀 점선이 순식간에 실선으로 변하면서 등이 의자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욱 커져, 조종사가 일부러 높은 각도로 이륙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을 내다보니 산이 전부 옆으로 보였다.

내리누르는 압력을 이기기 위해 용을 써가며 간신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창밖으로는 이미 잠실 롯데월드와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였다. C-17은 부활주로보다는 롯데월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활주로에서 이륙했는데, 롯데월드가 이렇게 가깝게 보이다니…. 123층의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부활주로를 이용한 C-17의 이착륙은 아예 불가능할 것 같았다. 대형 항공기를 타고 이착륙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이 현실을 무시한 채,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C-17이 밑으로 떨어지는 비행을 시작했다. 중력을 상실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낭패감이 덮칠 때 조종실 전방 유리창 쪽으로 반쯤 찬 생수병 3개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큰일 났다’ 싶었는데, 조종사들은 ‘익숙하다’는 듯 팔을 뻗어 신속히 생수병을 잡아 내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 몸도 붕 떠오르는 ‘마이너스 G’ 상태인지라 카메라를 들어올렸다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친 카메라는 곧바로 흉기가 된다. 헬멧을 쓰지 않은 조종사의 머리를 때려 실신시키거나 앞 유리창을 부숴버린다면 안전한 귀환은 보장되지 않으므로 촬영을 포기하기로 했다. 조종칸에서는 C-17의 고도가 급속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동으로 ‘앨터튜드(altitude·고도), 앨터튜드!’라는 경고음이 반복해서 나왔다. 그런데도 조종사들은 한참을 더 낙하한 후에야 수평비행에 들어갔다.

몸은 ‘곰’,  놀림은 ‘제비’ 53m 길이 수송기 맞아?

▲길이가 53m가 넘는 C-17이 전투기처럼 큰 각도로 이륙하고 있다. 조종사들은 큰 압력을 극복하면서 조종을 한다.
▼서울공항을 이륙한 C-17 조종실에서 본 잠실 석촌호수와 롯데월드. 이 자리에 123층의 제2롯데월드가 들어선다면 대형 항공기의 서울공항 입·출입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동승한 승무원이 “홀드 온(hold on·꽉 잡아)!”을 외쳤고, 기체는 빨래판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마구 튀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진동을 하다니….

엔진이 고장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하늘에서, 좌우로 몸을 트는 비행이 시작됐다. 차 핸들을 급하게 틀어도 몸이 확확 쏠리기 일쑤인데, 자동차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항공기가 요동을 치니 내 몸 하나 바로잡는 데에만 신경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도 기자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게 창밖을 내다보니 산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길고 긴 C-17의 날개가 당장이라도 산 어딘가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조종칸에서는 기체가 산에 근접했음을 알리려는 듯 ‘터레인(terrain·지상), 터레인!’이라는 경고음이 반복해서 나왔다.

본능적 공포 이겨내는 승무원

이런 비행을 한 후 기자는 몇 명의 동승자가 기다리고 있는 화물칸으로 내려왔다. 화물칸은 높은 곳에 작은 창문 2개가 있고 형광등만 켜져 있었다. 이 흐릿한 조명 속에서 동승자들은 어떤 비행을 했는지 몰라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기분을 물어보니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닥에 놓인 짐들이 뒤쪽으로 쓸려가 매우 놀랐다. 생수병이 천장으로 올라가 터지는가 하면, 기체가 덜덜거려 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덩치 큰 수송기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휴대용 대공(對空) 미사일이다.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이 미사일은, 제대로 유도하면 3km 이하의 고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5km 밖에서도 격추할 수 있다. 저고도 비행체의 대표가 헬기인데, 미군 헬기는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쏜 이 미사일에 걸려 자주 격추되고 있다.

이착륙 시 모든 비행기는 저공비행을 해, 적군은 이 미사일을 갖고 공항 근처에서 숨어 기다린다. 수송기는 이러한 위험을 피해야 하므로 저공·저속에서 이 미사일의 조준을 피하는 ‘회피기동’을 연습한다. 2004년 12월8일 노무현 대통령을 태운 우리 공군의 C-130 수송기도 회피 기동을 하며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이라크의 아르빌 공항에 내렸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강한 충격을 경험한 수행원들은 “죽는 줄 알았다”는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화물칸 좌석의 안전띠는 허리만 묶어준다. 안전띠를 채우고 잠시 앉아 있으니 ‘램프(ramp)’라고 불리는 화물칸 뒤쪽의 바닥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전차도 빠져나갈 수 있는 넓고 넓은 문이 열린 것이다. 10km쯤 되는 고도를 고속으로 날아가는 항공기의 문이 열리면 기압 차이 때문에 한순간에 사람과 화물이 밖으로 빨려 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두 다리에 힘을 꽉 줬다. 그러나 C-17은 저공에서 저속비행하며 문을 열었기에 밖으로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은 생명줄을 허리에 묶은 한 승무원이 바닥 문 끝으로 걸어가 우뚝 서는 바람에 다시 긴장감으로 변했다. 특전대원이나 화물을 공중투하하는 경우를 상정한 묘기인 듯했다. 그 순간 C-17이 기체를 들어 상승 비행에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뒤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안전띠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바닥 문 끝에 서 있던 승무원은 바닥에 앉은 채로 버티는 게 아닌가. 영화 ‘에어포스 원’을 찍는 것도 아닌데 어쩌려고….

먼 거리였지만 그의 군복 자락이 세차게 팔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태연히 앉아 있는 그를 보면서 거듭된 훈련은 본능적인 공포도 이겨내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C-17은 바닥 문을 열고 상승 비행을 해야 화물을 투하할 수 있으니 승무원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지진 같은 큰 재해가 일어나 육로 수송이 불가능해지면, 수송기와 헬기로 구호물품을 공중 투하한다. 이때 이용하는 발진기지가 서울공항인데,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이 공항을 활용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항공기와의 충돌 가능성 때문에 서울공항을 폐쇄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씁쓸한 마음으로 서울공항에 돌아와 땅을 디디니 땅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C-17은 74t의 화물을 싣고 이륙할 수 있다. 긴수염고래 같은 ‘체구’를 지니고도 참치처럼 물 위로 뛰어오르는 기동을 한 C-17이 달라 보였다. 역시 군용기는 군용기였다. 여객기는 절대로 이런 비행을 하지 못한다.



주간동아 2009.11.10 710호 (p68~69)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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