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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반쪽짜리 ‘IT강국’ 내일이 두렵다 10

“인간 중심 IT융합기술 개발만이 살길”

최문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지능공간 패러다임 시대, 혁신제품 출현 가능”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인간 중심 IT융합기술 개발만이 살길”

“인간 중심 IT융합기술 개발만이 살길”
개인 노트북에 손가락 크기의 와이브로(WiBro) 장비만 꽂으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이 가능한 세상이다. 와이브로는 200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이 공동으로 개발, IMT-2000으로 통칭되는 3세대 이동통신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와이브로처럼 ETRI는 단기이익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기업들을 대신해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개발을 한다.

1976년 설립된 ETRI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 IT 연구개발의 선두주자 노릇을 해왔다.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의 이동통신 시스템을 199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휴대전화로 TV를 보는 지상파 DMB 기술을 개발한 것도 ETRI다. 최근에는 유기발광 다이오드(AM OLED·빛을 내는 층이 유기화합물로 된 박막 발광 다이오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현재 ETRI는 IT 융합과 원천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최문기(58·사진) ETRI 원장은 “ETRI는 ‘인간 중심 IT융합기술 선도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22년간 ETRI에 근무하며 IT산업의 도약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안에 있는 ETRI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20년간 IT산업이 한국경제를 지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IT산업을 평가한다면.



“그동안 IT산업은 고용창출, 무역수지 개선, 물가하락 등에 기여했고,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자상거래, U-헬스, 재난 및 재해 방지 등 일상생활에 끼친 영향도 크다. 이제 IT는 경제성장의 동력임은 물론, 우리의 삶과 국가사회시스템 운영에 없어선 안 될 필수재가 됐다.”

대표적 IT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는 위기 조짐이 보일 때마다 적극 대처하고, 글로벌 경기침체에 빠진 지금도 일부 업종에서는 호황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IT산업 위기론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지난 5월 전체 무역흑자 51억 달러 중 92%를 IT산업이 달성했다는 지식경제부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경제분석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2008년 IT산업경쟁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지난해 3위에서 올해 8위로 떨어졌다.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도 IT산업 위기론이 계속되는 것은 경쟁력의 원천이 인프라에서 서비스 및 콘텐츠 등 인프라 활용으로 급격히 전환되는데도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수명 주기 단축과 원천기술 부족, 내수시장 포화로 인한 국내기업 간 출혈경쟁,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제도 미비, 시장을 선도하는 신성장동력 부재 등이 미래를 어둡게 한다.”

IT산업은 더 이상 고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므로 이젠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 등 차세대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IT 발전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IT가 단순히 정보처리만을 담당하던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시대, 2단계는 네트워크를 통해 대용량 멀티미디어 정보의 생산과 가공, 유통과 활용이 고도화한 ‘네트워크 패러다임’ 시대다. 지금은 2단계다. 3단계는 모든 사람, 사물, 자원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환경 속에서 IT가 만물을 인지하고 공명하는 ‘지능공간 패러다임’ 시대다. 3단계에선 과거에 없던 혁신적 제품군과 서비스의 출현이 가능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도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를 핵심 정책으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IT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ETRI는 5월18일 KT와 글로벌 IT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상호 협력한다는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ETRI와 KT는 방송통신융합 연구, 소프트웨어 연구, 융합기술 연구 부문에서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신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또한 ETRI는 20여 개 대학과 ‘Open R·D센터’ 구축을 위한 협정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지닌 한계를 집단적 창의의 발현으로 극복하자는 의도.

최 원장은 “단일 기술로 다양하고도 고도화한 이용자의 니즈를 충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개방과 참여, 협력과 공유라는 혁신적 개방(Open Innovation)을 바탕으로 한 융합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IT산업을 이끌 동력은 무엇인가.

“부품소재 경쟁력 취약, 핵심원천기술 미약, 제조업 편중 심화, 경제 전반의 낮은 IT 활용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성장동력 발굴이 가능하다. 부품소재 분야는 먼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투자가 진행된 경로를 분석해야 한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대규모 R·D 투자를 한다면 일본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 특히 박막태양전지 패널,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투명 스마트창(실리콘 반도체 기반의 전자소자를 투명한 전자소자로 대체한 투명 전자기기) 및 OLED 감성조명, 전력 및 센서 반도체, 국방부품 등 녹색성장을 위한 몇몇 품목은 꾸준한 R·D 투자가 뒷받침되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소프트파워 확충 또한 중요하다. 소프트파워란 IT산업 가치사슬 전반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한다. IT 진화의 10%는 IT 자체의 고도화를 통해, 나머지 90%는 IT가 다른 기술과 산업에 내재화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IT산업의 근간인 벤처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크다. 최근에는 창업도 부쩍 줄었다.

“중소 IT기업의 경영 악화는 핵심원천기술 부재에 따른 기술경쟁력 약화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정부가 독창적 기술력 확보를 지원하지 않고 중견급 인력 양성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도 기술 종속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국민소득 3만, 4만 달러 시대는 중소기업이 핵심원천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발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4월 ‘동아일보’가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학자 10명 중 8명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고, 6명은 경제적 처우에 불만족하며, 3명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 원장은 “성과에 대한 획기적인 보상시스템, 모험적·창의적 기업가정신의 함양, 미래에 대비한 융합기술 전문인력 양성, 직업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적 여건 마련이 당면 과제”라고 했다.

IT자원거래소를 설치해 IT 자원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 개발해 시장에 출시하려면 초기 투자비용에 커다란 부담을 느낀다. 이런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IT 자원을 개방해 공유하자는 거다. ‘IT 개방형 자원거래소’는 기업이나 개인이 소유한 개방형 자원(방송통신자원, 컴퓨팅, 센싱, 콘텐츠 등)을 인증절차를 통해 검증한 뒤 거래할 수 있도록 자원 제공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소매상 기능을 할 것이다.”

향후 IT산업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향후 IT 활용의 정도에 따라 IT산업 전후방 관련 산업이 대단히 파격적인 행로를 보일 수도 있다. 최근 일각에서 IT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제기되지만, IT 인력들은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자 각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궁극에는 IT산업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전후방 관련 산업과 IT 응용산업에서 IT 활용의 폭과 깊이를 더해 국가발전을 견인할 것이다. IT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핵심 산업이다.”



주간동아 2009.06.23 691호 (p46~47)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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