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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세컨드 옵션으로 변신에 성공한 사람들…팔방미인 원하는 사회 새 역할은 필수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SK C&C 박은규 차장은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이라고 강조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게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고유한 포지션 이외에도 상황에 따라 주어진 위치를 훌륭히 완수한 선수는 월드컵에 승선해 4강 신화의 영광을 누렸다. 그렇지 못한 선수는 포장마차에서 쓸쓸하게 이들의 활약을 지켜봐야만 했다.

현실은 냉혹하다. 정보화, 세계화의 물결은 개인에게도 무한경쟁을 요구한다. 한 가지 역할 못지않게 다른 부분에서도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이제 직장인들에게 충분조건이다. 세컨드 옵션을 갖춰 자신의 위치를 한 단계 상승시킨 사람들. 그들은 무슨 사정으로 세컨드 옵션을 갖추려 했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던 것일까? 성공을 이루고 난 뒤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을 갖추기까지 인고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현재 주어진 역할을 넘어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서는 직장인들에게 그들은 선구자다. 세컨드 옵션을 갖춰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선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 컨설턴트에서 인사담당자로

“원래 꿈은 해외영업을 하면서 해외생산 법인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SK C·C 인력본부 인력팀 박은규(41) 차장은 자신의 진로가 바뀌게 된 것이 지금도 놀랍다고 한다. 공대를 졸업한 박 차장은 1993년 하반기 삼성전기에 들어갔다. 내심 해외영업을 욕심냈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사. 공대 출신이라 처음 인사업무를 맡게 됐을 때는 불만도 컸다고 한다.

“너무 생소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 채용업무를 담당하면서 인사업무에 재미를 붙여갔죠. 잠시 마케팅으로 외도를 했으나 인사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8년의 시간을 인사, 마케팅에서 일한 뒤 선배의 권유로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ERP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그가 처음 SK C·C에 들어온 것도 컨설턴트로서였다. 하지만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당시의 상황이 불안했다고 한다. 컨설팅 업체는 대기업처럼 크지도 않고 고용 불안도 적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네 살 때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하루하루가 무척 바빴습니다. 하나의 컨설팅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선배가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서 본격적으로 다른 뭔가를 찾기 시작했죠.”

그는 비록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지만 인사업무를 계속하고 싶었다. 가장 오래 해보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사과정이나 공인노무사 둘 중 하나를 하기로 마음먹고 그는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장인이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특히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가외시간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당시 지방출장이 잦았을 뿐 아니라 밤 10시에 일이 끝나면 회식이 새벽 1, 2시까지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박 차장은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잠잘 시간은 있죠. 잠자는 시간을 줄여 시간을 벌려고 했습니다. 회식을 끝내고 돌아온 뒤 새벽 4시까지 공부하며 책상에 엎드려 자기 일쑤였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삼각김밥 먹으며 공부했죠.”

SK C·C로 옮긴 뒤에도 같은 생활이 계속됐다. 물론 주위에서는 그가 세컨드 옵션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좋게 보지만은 않았다. 선배들 중에는 ‘지금처럼 바쁜 시기에 무슨 짓이냐’며 핀잔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 차장은 2003년 공인노무사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최종 합격을 했다. 2005년을 컨설턴트로 더 일한 뒤 2006년에 인사팀으로 전환배치를 받게 됐다. 박 차장은 세컨드 옵션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결심’이라고 강조한다. 세컨드 옵션을 추구하기 전에 미리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필수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환경적으로 세컨드 옵션을 쌓는 데 제약이 따르죠. 시간도 부족하고 주위 시선도 고려해야 하고. 하지만 환경 핑계만 대고 포기하기보다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전문 영역을 확대한 뒤 브랜드 매니저가 된 페르노리카코리아 김혜영 차장의 경쟁력은 도전정신과 적극성이다.

⊙ 홍보우먼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임페리얼, 발렌타인 등의 주류를 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 김혜영(34) 차장은 약 한 달 전 회사를 옮겼다. 김 차장은 현재 위스키 브랜드 로얄살루트와 와인, 샴페인 브랜드들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홍보에서 마케팅으로 직무 이동을 한 것을 계기로 브랜드 책임자 자리에까지 오른 성공 사례로 업계에 회자되는 인물.

첫 직장은 광고대행사인 오길비앤매더였다. 광고 매체를 선정하는 미디어 플래너로 일했던 그는 클라이언트였던 디올 코스매틱 담당자의 스카우트 제의로 처음으로 화장품 홍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약 2년 뒤 회사를 옮겨 에스티로더 그룹의 국내 법인인 엘카코리아에서 일할 때도 첫 업무는 홍보였다.

“당시 ‘스틸라’라는 색조 브랜드 홍보를 맡았습니다. 몇 년간 홍보담당자로 일하다 보니 소심한 성격의 전형적인 A형이던 제가 호탕한 O형 스타일로 바뀌기까지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홍보담당자들은 업계 특성상 수명이 길지 않고, 새로운 발전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그 후 김 차장은 직속 상사에게 직무 이동을 하고 싶다고 꾸준히 강조했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기회는 시련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산 책정, 시장조사 등 생소했던 업무를 갑자기 한꺼번에 떠맡게 되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기 때문.

“상사가 회사를 옮기면서 약 6개월간 그 대신 예산을 짜고 가격 책정을 하는 마케팅 매니저 일을 했습니다. 갑자기 수십 가지 업무를 떠맡은 저를 보고 동료들은 ‘더는 못하겠다’고 엄살을 피워보라고 했지만, 당분간 내가 브랜드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앞섰지요. 사장님에게 미팅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더니, 새로운 사람을 뽑는 대신 저더러 마케팅 매니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한 가지 분야에 안주하는 삶이 찔레꽃이라면, 세컨드 옵션을 갖춘 삶은 나중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미꽃이다.

그는 화장품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최근 2년 8개월간 스포츠 브랜드 리복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했다. 티에리 앙리의 방한 이벤트를 기획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것이 대표적 업적 중 하나다.

주류 업계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해보려고 한 이유는 주류 브랜드들이 대체로 수명이 길고 소비자 로열티가 높은 만큼, 장기적 안목에서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브랜드 관리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 “야구와 발야구의 차이를 정확히 모를 정도로 스포츠 문외한이던 제가 몇 년 만에 마니아로 둔갑한 것을 보면, 이곳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됩니다.”

홍보담당자로 일했던 경험은 현재까지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당시 자주 만났던 기자,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했던 업체 관계자들은 지금도 훌륭한 인적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저도 함께 일할 직원을 뽑을 때 홍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게 됩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배우면 되지만 홍보담당자들 특유의 친화적인 성격과 적극적인 자세는 가르치기가 힘들거든요. 기회는 뜻밖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직무를 옮기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 웹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등에 도전해 직무 이동의 기회를 갖게 된 취업포털 커리어의 지한구 과장.

“웹상에 이력서를 등록하면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확인할 때마다 본인에게 알려주는 알리미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요? e메일의 수신확인 기능처럼요.”

“운전용 내비게이션 기기를 벤치마킹해 온라인상에서 각 기업의 정보를 좀더 쉽게 찾는 서비스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취업포털 커리어 서비스마케팅팀 지한구(32) 과장이 웹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했던 아이디어들이다. 수차례 당선돼 짭짤한 포상금도 받았다.

물질적 보상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지 과장의 적극적인 태도를 눈여겨본 임원진의 추천으로 5개월 전쯤 웹 디자이너에서 웹 기획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사내에서 이런 방식으로 직무 전환이 이뤄지기는 그가 처음.

“작은 회사에서라면 모를까, 이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기획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아요. 평소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개진한 덕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게 된 셈입니다.”

2006년 입사한 지 과장은 이전 회사들에서 쌓은 경력을 합쳐 약 7년간 웹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산업디자인. 보통은 자기 업무만으로도 허덕이느라 타 부서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낸다거나 관심을 갖는 게 쉽지 않을 터. 그러나 그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퇴근길부터 집에 도착해 이불 깔고 눕는 순간까지’ 기획 관련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회사에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는데, 제가 낸 제안이 좋은 평가를 받고도 실제로는 잘 구현되지 않는 것을 보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기획자가 되면 적어도 제가 낸 아이디어는 직접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준비한 자가 기회 잡는다

두 가지 이상 전문분야를 갖는 ‘멀티형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멀티플리시티’의 한 장면.

지 과장은 기획업무의 발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디자이너였을 때보다 능동적으로 일할 기회가 많기 때문. 주 전공인 디자인은 뒤늦게 시작한 ‘제2전공’ 웹 기획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디자이너에게 기획 관련 스토리 보드를 전달해 비주얼 작업을 의뢰할 때 디자이너의 처지를 많이 고려해 소통이 편할 뿐 아니라, 아이디어가 웹상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짐작할 수 있으니 이해가 쉽게 되는 편이에요.”

물론 몸에 익숙한 주 전공만 할 때보다 ‘불편한 점’도 있다. 부서를 옮긴 뒤로는 거의 매일 밤 9시 이후 퇴근하게 됐고, 과장 직급을 달고 생초보로 새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타사 벤치마킹을 하고, 전 세계적인 웹서비스 트렌드를 살피다 보니 확실히 외연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도 기획 관련 일을 계속할지, 언젠가 다시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세컨드 옵션’을 이미 마련한 셈이다.

세컨드 옵션 갖춰 부서 이동과 이직에 성공한 사람들



◎ 부서 이동 사례#1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장준수(35) 씨는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직무를 바꾼 사례다.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해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한 대의 신차가 나오기까지 준비기간이 너무 길었고, 많은 디자이너의 기획 중 자신의 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어 업무 만족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국내에는 자동차 회사가 많지 않아 이직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다른 회사를 찾기에는 자동차를 무척 사랑했다. 장씨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수많은 잡지를 탐독하며 자동차 디자인을 섭렵했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칼럼을 써왔다. 장씨는 상부 보고를 통해 회사 고객에게 발송하는 사보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한 인사담당자는 그의 고민과 글쓰기 실력을 보고 부서 이동을 허락했다. 부서 이동 후 블로그 방문자 수는 배로 늘어났다. 장씨 역시 매달 발행하는 사보를 통해 업무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2 수입 가구업체의 비서로 근무하던 김가영(32) 씨는 경영학을 전공하며 마케팅 기획자를 꿈꿨다. 그러나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 그가 발령받은 곳은 부사장직 비서. 3년이 지나자 업무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 이직과 대학원 진학 등 여러 방안이 떠올랐지만 현실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준비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본인의 업무에 충실하는 한편, 동경하던 마케팅부서 직원들과 가까이 지내며 시간 나는 대로 전시장을 찾아 소비자들을 관찰했다. 불경기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한 사업부문을 철수키로 하고, 전시장 재고 물량을 처분하기로 했다. 다른 직원들은 재고를 헐값 매각하는 것이 시간을 버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는 일단 20% 할인 행사를 해보자고 임원에게 보고했다. 매각할 제품이 경기가 어려워 부진한 것일 뿐, 전시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제품에 만족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원은 그의 제안대로 할인 행사를 하며 재고 물량을 처분해 예상보다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상사에게 부서 이동을 요청했고, 꿈꾸던 마케터로 근무하게 됐다.

◎ 이직 성공 사례 #1 K대 식품공학과를 나와 국내 대기업의 식품개발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김도영(37) 씨는 그가 속한 사업부의 갑작스런 철수로 공중에 뜨는 신세가 됐다. 김씨는 연구직에 근무하면서도 연구직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그는 성분 분석이나 신소재 개발 등 마케팅 관련 업무가 있을 때는 조사 설계 및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진로를 마케팅으로 정한 김씨는 백화점 식품부의 MD직에 지원했지만 마케팅 경력이 전무했기에 쉽게 직장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서치펌의 컨설턴트를 통해 새로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의 이력서 맨 앞줄은 학력, 경력이 아닌 그의 통계 패키지 활용 능력과 조사 경력, 보고서 작성 능력 등 직무 스킬로 장식됐고, 결국 그는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2 외국계 기업 경영관리팀에서 근무하던 이준호(가명·34) 씨는 스스로 경제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준비했다. 일반적인 경영관리 업무를 하는 것보다 재무 관련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기에, 자격증 취득 후 재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2~3년간 경력을 쌓은 그는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 회계법인으로 이직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면서 또 하나의 도전거리를 생각해냈다. 전략경영 관련 공부를 통해 전반적인 재무 상황과 경영을 유기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것.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전략 부분에 특화된 공부를 한 결과, 최근 한 외국계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직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주간동아 2008.12.09 664호 (p40~43)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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