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2008.12.09

건설업 살린다고 서민 살림 좋아지겠니

경기 부양·일자리 창출 효과 ‘별로’ … 한국경제 건설업 의존도 지나치게 높아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12-03 10: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건설업 살린다고 서민 살림 좋아지겠니
    #부산에서 20년 넘게 일용직 건설근로자로 일해온 김모(53) 씨는 요즘 술에 취해 부산시가 위탁 운영하는 일일취업안내소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릴 때가 자주 있다. 조적(組積·돌이나 벽돌 따위를 쌓는 일) 기술이 좋다는 평을 듣는 그는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하루 두 건의 공사현장을 누빌 정도로 일감이 넉넉했다. 그러나 요즘은 한 달에 열흘도 일하러 나가지 못하고 있다. 건설현장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김씨는 앞니를 포함해 이가 3개나 부러졌는데도 치료받을 형편이 못 된다. 하루 1만원짜리 낡은 여관에서 숙식하며 낮에는 취업안내소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이곳 서민열 부소장은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하루 30명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줬는데, 요즘은 그 절반도 하기 힘들다”며 “김씨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 중견기업 간부 정모(44) 씨는 요즘 멍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집 걱정 때문이다. 그는 2006년 가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154㎡짜리 아파트를 8억원에 구입했다. 주택담보대출로 4억5000만원을 빌렸다. 그런데 매달 200만원가량이던 이자가 최근 금리가 올라 300만원을 넘어섰다. 이자 부담 때문에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게 정씨의 판단. 그러나 최근의 집값 하락 때문에 그의 아파트는 6억원에 내놔도 팔리지 않고 있다. 정씨는“2년 전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올라 빚 내서라도 사지 않으면 영영 내 집 장만을 못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며 “거기에 휩쓸려 섣불리 계약했다가 이도저도 못하게 됐다”며 후회를 했다.

    11월25일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대주단(채권단) 협약 1차 접수가 27개 건설사 가입으로 마감됐다. 그러나 “미가입 땐 대출금 상환을 요구한다”는 으름장이 나올 정도로 정부의 가입 압박은 여전하다. 건설사 부실 → 금융기관 부실 → 실물경기 위축 → 가계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악순환을 조기에 끊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강하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6만 채로 사상 최대이고,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된 부도 건설사 수는 327개사로 전년 동기 대비 47%나 증가한 상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국내 주요 예측기관들이 내년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고, 이에 따라 기업 도산과 실업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설업 살린다고 서민 살림 좋아지겠니
    이러한 난국 앞에 놓인 정부는 건설업 부양으로 위기의 확산을 막고 경기 또한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8월 이후 건설사를 살리고, 사회간접자본(SOC)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푸는 건설업 부양 정책을 네 차례 발표했다(18쪽 상자 기사 참조). 10월31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병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방 SOC 사업과 같은 경기활성화가 큰 사업을 할 것”이라며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가장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언제까지 건설업에 의존할 것인가. 과연 건설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적인가.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11월5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수요정책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위기로 전이되지 않게 적극 대응하되 (건설업에 대해) 무차별적인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업 부가가치 비중을 언급했다. 2006년 한국의 건설업 부가가치 비중은 7.7%로, 미국(5.3%) 독일(4.0%) 일본(6.1%)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 같은 점은 10월 말 경제개혁연대도 지적한 바 있다. OECD가 출간한 국민계정 분석자료를 기초로 30개 회원국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건설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오른쪽 그래프 참조). 1995~2006년 한국의 GDP 대비 건설업 부가가치 비중은 평균 8.8%로 30개국 평균인 5.48%보다 3.32%포인트 높았다. ‘토건국가’로 불리는 일본(7.36%)보다도 1.44%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도 평균 19.22%로 전체 평균(11.67%)보다 8%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경제개혁연대는 “호주 캐나다 아이슬란드 미국 등 최근에 건설업 비중이 크게 증가한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며 “신도시 및 뉴타운 건설, 부동산 규제 완화, 대형 토목공사 발주 등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건설업의 산업구조적 문제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위적 건설경기 부양 부동산 버블 또 만들 수도

    인위적인 건설경기 부양이 또 한 번의 ‘부동산 버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한국은 건설경기 호황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이 나타나는 현상을 목도했다. 앞의 정씨 사례처럼 너도나도 더 오르기 전에 사겠다며 무리하게 주택 매입에 나섰다. LG경제연구원이 2004년 6월에 펴낸 보고서 ‘건설경기 연착륙 필요하다’는 내수 부진 속에서도 건설 부문 호황이 내수경제의 버팀목이 됐다고 하면서, 한편으로 건설경기 호황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평균 10%에 이르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켜 ‘살 집’을 구하려는 서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즉 건설투자는 내수를 살리는 동시에 서민의 형편을 목 죄는 ‘두 얼굴’을 가진 셈이다.

    건설업 살린다고 서민 살림 좋아지겠니

    11월18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에서 은행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건설사 금융지원 프로그램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귀 기울여 설명을 듣고 있다.

    앞의 건설근로자 김씨처럼 건설 한파가 닥치면 당장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건설경기 침체를 막는 것은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단순했던 1960~70년대와 달리 현재는 산업구조가 고도화돼 건설업의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노동연구원 황수경 데이터센터소장은 “전자에서 섬유까지 산업연관 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과 달리 건설업은 산업연관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며 “건설업 부양은 건설경기를 활성화할 뿐, 전체 경기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연히 건설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도 과거와 달리 많지 않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심화될 전망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07년 발표한 ‘2006~2016 중장기 인력수요 전망’에 따르면 건설업의 취업계수(10억원어치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취업자 수)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위 그래프 참조). 2001년 35.0였던 건설업 취업계수는 2016년에 28.5로 6.5 감소할 전망이다. 건설업보다 교육서비스업(36.5 → 54.8), 사회복지사업(45.9 → 83.4)의 일자리 창출 정도가 월등히 높다.

    건설경기 부양에 투입되는 정부 돈이 대부분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사에 묶일 뿐, 경제 밑바닥이라 할 하청업체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현실도 건설업을 통한 경기활성화의 한계에 한몫한다. 현재 건설업계는 발주처 → 원도급자 → 1~3단계의 하도급자 구조로 돼 있다. 원도급자가 발주처에서 공사를 따내 하청업체들에게 일감을 나눠주고 전체 공사를 관리하는 식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원도급자와 하청업체 간에 이중계약서 작성이 보편화돼 있다”고 밝혔다. 저가하도급심사제도에 따라 하청업체에 공사낙찰가의 82%를 지불한다는 ‘가짜’ 계약서를 원도급자가 발주처에 제출하고, ‘이면’ 계약서대로 하도급업체에는 낙찰가의 50~60%만 지급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점차 줄어가는 추세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국내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건설 부양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건설 수주액이 10조원 감소할 때마다 실업자가 20만여 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 건설수주액이 28조원으로 격감하자, 건설업에서는 50여 만명의 실업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송준혁 거시·금융경제부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내년 수출길이 막히고, 기업의 설비투자와 소비가 더욱 움츠러들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건설 부양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경제동향실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민간 주택보다는 SOC 위주로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녹색 성장에 대한 시설 투자, 부족한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하고 공공임대주택 투자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 창출엔 보건·교육 서비스 투자가 효과적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은 이견이 없는 과제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인위적으로 조정할 필요도, 방법도 없지만 부동산 시장이 과도한 열기나 냉각으로 건설업 비중이 급작스럽게 축소 혹은 확대되는 것은 방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선진국은 서비스업 계통 비중이 높다”며 “정부가 유인책을 가지고 서비스업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성대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건설사에 대한 금융 지원 및 구조조정 유도는 시장에 맡기고, 대신 정부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건설사 구조조정을 지연한다면 국민경제 전체의 고통이 심화될 것”이라며 “실업급여, 취업교육 등 사회안전망 지출을 통해 건설 실업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수경 소장은 “불황기에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건설업보다 보건 및 교육서비스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노인요양 서비스, 저소득층 교육 서비스 등에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저소득층에 사회적 지원을 해줄 뿐 아니라 많은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황 소장은 “이렇게 할 경우 정부 지원금이 서민들의 임금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소비가 금세 활성화되는 등 경기를 살리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의 주요 건설경기 부양대책

    -11조원의 공공지출 확대(1조원의 공기업 투자 확대 포함) : SOC 사업과 중소기업·영세상인 지원 등 민생안정 사업 중심으로 재정 지출 확대

    -재건축·재개발 촉진 : 소형평형 의무비율 완화, 용적률 상향 허용, 임대주택 의무 완화

    -부동산 투기 억제 관련 규제 완화 : 부동산 투기지역 해제, 수도권 전매 제한 완화, 양도세 감면 확대

    -건설업체 유동성 지원 : 우량 건설업체에 대해 건설사 회사채 유동화 지원, 환매조건부 미분양 주택 매입 및 세제 지원, 관급공사 공사대금채권 보증 지원, 공공택지 대금 연체이자 경감

    (※8·21, 9·19, 10·21, 11·3 대책 종합)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