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2008.12.09

“사법부는 검은 법복 걸친 허수아비”

엄상익 변호사, 판사의 한계와 비리 다룬 소설 펴내… “판사들 진실 아닌 논리만 추구”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12-01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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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는 검은 법복 걸친 허수아비”

    엄상익 변호사는 사법부 내에서 지독한 거짓을 벗기려고 노력하는 판사들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면서 실체적 진실은 외면한 채 논리의 허점만 보려는 판사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글쓰는 변호사로 유명한 엄상익(54) 변호사가 판사의 한계와 비리를 고발한 소설 ‘검은 허수아비’를 펴내 화제다. 국민들은 판사가 진실을 가려 억울함을 풀어줄 것으로 알고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일부 판사는 도식적인 방법으로만 기록을 검토할 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과 소송에 임한 사람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판사는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은 없고, 자판기처럼 몇 가지 증거만 집어넣어 ‘논리상으로만’ 하자가 없는 판결문을 뽑아내기에 억울함을 호소하려던 국민들은 주저앉게 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의식이 없는 판사는 혼이 없는 사람이다. 검은 법복을 걸친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다. 재판 경력 30여 년의 엄 변호사를 통해 한국 사법부의 현실을 들어보자.

    “상당수 판사 세상살이 모르면서 재판”

    “판사들 중에는 사건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 몇 개만 보고, 그 점을 잇는 증거와 증언만 채택하고 나머지는 배척하려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하면 진실이 뒤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형사사건에서 용의자로 붙잡힌 사람이 있는데 그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기에 경찰과 검찰은 범인으로 속단했다. 이어 경찰은 사건현장을 감식하기 전에 그의 머리카락 하나를 현장에 떨어뜨려놓는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DNA 분석으로 머리카락의 인물을 밝혀내면, 판사는 더 의심하지 않고 그를 범인으로 판정한다.

    이처럼 판사들 중에는 몇 가지 체크포인트만을 활용해 판단하려는 이들이 있다. 문서가 있거나 DNA를 비롯한 과학적 증거만 있으면 조작 여부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현장에 용의자의 머리카락을 떨어뜨려놓는 수사관이 있겠냐고? 나는 수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에게서 그러한 ‘영웅담’을 숱하게 들었다.



    경찰과 검찰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특정인을 용의자로 삼아 사건을 만들고, 1심 판사는 이들이 만든 논리에 속아 판결을 한다. 2심과 3심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논리상 허점이 없으면 이를 그대로 인정한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3심제가 있어도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게 된다. 판사들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논리상 허점 여부만 중요시한다.”

    엄 변호사는 “국민들은 판사가 험난한 세상살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하느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식으로 재판에 임하지만, 판사 중에는 세상살이가 뭔지 모르고 재판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그들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논리만 추구한다. 논리가 옳으면 상급심은 재판을 잘한 것으로 판단해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엄 변호사의 지적은 계속됐다.

    “사법부는 검은 법복 걸친 허수아비”

    판사의 한계와 비리를 고발한 소설 ‘검은 허수아비.’

    “우리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은 소송 당사자들이 증거를 가져와 자기 주장을 변론하는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를 택하고 있다. 판사는 양쪽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판사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추적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양쪽이 룰을 어기지 않는지, 어느 쪽 주장이 더 논리적인지를 판단하는 심판 역할만 하니 판사는 진실이 아닌 논리의 노예가 되는 셈이다. 결국 판사는 몇몇 증거를 토대로 만들어진 그럴듯한 논리 쪽으로 기울어진다.

    세상에 완벽한 거짓으로 구성된 사기는 없다. 대개는 90%의 진실에 10%의 허구를 보태 사기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90%인 진실에서 뽑아낸 증거만으로 논리를 만들면, 10%의 허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기는 직접 파고들어가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현장을 조사하지 않는 판사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혼이 없는 검은 허수아비인 것이다.”

    오판해도 판결문에 논리 허점 없으면 그만?

    엄 변호사는 완벽한 논리를 갖춘 지독한 거짓은 법원에 의해 완벽한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때 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그 다음 진실은 뒷전으로 밀린다. 판결문에 적시한 내용만 진실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지독한 거짓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지독한 거짓을 벗기려면 판사는 형식적인 룰만 지키려는 심판관이 아니라 지독한 탐구자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법부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하는 판사를 찾기 어렵다는 게 엄 변호사의 말이다.

    “사법부는 검은 법복 걸친 허수아비”

    대법원‘법관윤리강령’은 판사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당위’만 강조할 뿐, 오판에 대한 처벌 조항은 담고 있지 않다.

    엄 변호사는 판사가 탐구자의 모습을 보인 사례를 하나 들었다.

    “TV 수사 다큐멘터리로도 보도된 유괴사건의 범인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범인이 틀림없었는데,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만 보면 그는 절대 구제해선 안 되는 악질이었다. 그러나 내가 접견해본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달해 조금이라도 형을 줄여보려 노력했는데, 모 재판장이 내 의도를 간파했다. 재판장은 유괴당했던 아이에게 ‘범인에게 붙잡혀 폐가(廢家)에 갇혀 있을 때 범인 아저씨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저씨가 피에로처럼 분장하고 나를 웃겨주었다’고 대답했다.

    그 뒤 재판장은 판결 이유서에 ‘아이는 법정에서 범인을 오랜만에 보자 ‘아저씨’하고 불렀다.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범인은 비록 아이를 유괴했지만 살해까지 할 의사는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쓴 뒤 범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렇듯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는 것이 판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판사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한국 사법부의 문제점이다.”

    대법원은 규칙 2021호로 ‘법관윤리강령’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이 강령은 판사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조할 뿐, 잘못 판결한 법관을 처벌한다는 조항은 담고 있지 않다.

    이런 것이 계기로 작용했는지 판사들은 논리적으로만 문제가 없으면 더는 진실을 파헤치지 않고 판결을 내린다. 오판해도 판결문에 논리상 문제가 없으면 사법부에서는 논란이 되지 않는 게 관례다. 이에 대한 엄 변호사의 말이다.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구실로 오심을 한 판사의 처벌에 반대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대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한가, 국민의 기본권이 중요한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면 국회는 고의로 진실 파악을 외면하고 어느 한쪽에 유리한 논리만 택해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는 배상을 요구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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