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9

2008.11.04

‘폭락 펀드’ 줄소송 이어질라

뿔난 투자자들 위험회피 의무 부실 등 불완전 판매 이유로 손배소송 제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10-27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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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락 펀드’ 줄소송 이어질라
    -50%, -30%, -40%.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며 지난 2년간 대한민국을 펀드 열풍으로 달궜던 펀드들의 현주소다. 자고 일어나면 떨어져 있는 펀드 수익률을 보면 속이 까맣게 탄다. 반토막 펀드가 아닌, 원금이 하나도 남지 않는 이른바 ‘깡통 펀드’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수익이 높다’ ‘안정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라며 펀드 가입을 권유하던 증권사와 은행 직원들이 괜스레 미워진다. 수익은 고사하고 원금이라도 되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투자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특히 ‘이런 점을 설명해줬다면 가입하지 않았을 텐데…’ ‘이거 설명 들은 것과 너무 다르잖아’라는 생각마저 들면 심각하게 소송까지 고려하게 된다.

    끝 모를 원금 손실을 보다못한 투자자들이 결국 ‘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 Power Income 파생상품투자신탁 1호’(이하 파워인컴펀드)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하모(70·여) 씨 등 2명은 “위험회피 의무 등을 부실하게 이행해 손해를 입었다”며 우리CS자산운용과 판매사인 경남은행을 상대로 10월2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누리 법무법인에 위임장을 제출한 160여 명의 투자자 역시 경남은행과 또 다른 판매사인 우리은행을 상대로 소장을 낼 것으로 알려져 펀드 투자자 소송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가입할 땐 펀드 아닌 줄 알았다”

    문제가 된 파워인컴펀드는 2005년 11월 ‘국공채 신용등급으로 5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 1.2%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6년간 분기마다 고정이자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우리CS자산운용이 설계 및 운용하고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경남은행 등이 판매했다. 당시 판매사 가운데 하나인 우리투자증권은 “장외파생상품의 원리금 지불 능력은 대한민국 국채 수준의 신용등급과 동일해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언론사에 뿌린 보도자료에서도 파워인컴펀드는 높은 수익과 안정성을 갖춘 신개념 상품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홍보와 광고에 남편의 사망보험금에서부터 토지수용을 통해 받은 보상금과 일평생 모아온 돈까지 몰리면서 파워인컴펀드는 절찬리에 판매됐고, 2호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8년 10월 현재 수익률은 -80%로, 높은 수익과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설명이 무색할 지경이다. 만기인 2011년까지 3년이나 남았지만 조만간 원금이 하나도 남지 않는 깡통 펀드가 될 전망이다.

    가입자들은 이 상품이 펀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투자운용보고서를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확정금리라는 이름으로 꼬박 이자가 나왔기 때문에 안정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경남은행을 통해 이 펀드에 가입한 이모 씨는 “지점장이 찾아와 5%짜리 싼 한정 상품이 있으니 돈을 빌려 6.7%짜리 원금보장형 고정금리 특별 상품에 가입하면 연간 1000만원은 가만히 앉아서 벌 수 있다며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면서 “2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후 해약도 해주지 않았고, 지금은 원금 손실까지 났다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가입자들은 우리파워인컴 비상대책위원회

    (http://cafe.daum.net/uripowerincome)를 결성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비롯한 판매사 측은 불완전 판매는 없었다고 항변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손해를 본 데 대해 은행 측도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콜센터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충분히 위험고지를 한 만큼 불완전 판매는 없었다”며 “펀드라는 것이 수익이 나는 반면 손해도 날 수 있는 것 아니냐. 정말 손해가 컸으면 중간에 환매해 손절매할 수도 있지 않았겠나”라고 반문했다.

    투자운용보고서를 왜 가입자들에게 보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주소지가 바뀌었거나 펀드 가입 당시 개인정보가 우편으로 공개되는 것을 꺼려해 운용보고서를 받지 않기로 한 경우가 많았다”며 “투자자들이 원하지 않는데 은행이 임의로 보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투자운용보고서를 받은 투자자는 희귀할 정도다. 반면 대규모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운용보고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판매사 측에서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폭락 펀드’ 줄소송 이어질라

    은행들은 펀드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그 수익을 고객 보호나 직원교육에 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상품에 대해 잘 알고 판매했다는 판매사들의 설명과 달리 실제 판매를 한 당사자들도 문제의 펀드가 어떻게 수익이 나고 손실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해당 상품의 판매를 맡았던 우리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판매자인 우리도 파워인컴펀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내부적으로도 실무자들이 많이 팔 상품은 아니라고 보고했다”고 털어놨다. 시중은행에서 펀드 판매를 맡고 있는 한 PB(프라이빗 뱅커)도 “파생상품펀드는 일선 PB들이 알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며 “솔직히 이번에 문제가 된 파워인컴펀드는 금융공학자 정도나 돼야 그 상품구조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판매사들의 해명과 달리 제대로 상품구조를 알지 못한 직원들이 불완전 판매를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가입자들은 위험고지를 충분히 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를 했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펀드임을 밝히지 않은 만큼, 판매사와 운용사 측이 100%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입자 고대영(40) 씨는 “우리는 펀드인지 모르고 가입했다. 젊은 사람에게는 국공채로, 노인에게는 정기예금으로 팔아버린 일종의 사기행위”라며 “펀드인 줄 알았다면 투자 손실에 대한 일부 책임이 투자자인 우리에게도 있어 전액 보상을 바라지 않겠지만, 우리는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판매사와 운용사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은 가입 당시 펀드라는 사실과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는 우리투자증권 박종수 사장을 위증죄로 고소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여론이 악화되자 우리CS자산운용 이정철 대표이사는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우리은행은 투자자들의 손실에 충분히 공감하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손해를 배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대로 보상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배상할 권한도 없고,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이하 간투법)상에 근거 규정도 없다. 전체를 다 보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만 보상한다는 의미”라며 “정상적으로 가입한 고객들도 있을 테고 모든 경우를 불완전 판매로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사안별로 세세히 구분해야 한다. 결국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폭락 펀드’ 줄소송 이어질라

    불완전 판매 논란에 휩싸인 우리은행은 적법한 절차 내에서만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높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설명이 무색하게 파워인컴펀드의 수익률은 -80%에 이르고 있다.

    소송한다 해도 펀드 불완전 판매 여부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 부담을 한쪽 당사자가 전부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바라는 100% 보상은 힘들 전망이다(상자기사 참조). 소송에 앞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상황이 개별 사안마다 다르고 건수도 적지 않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은행과 증권사들의 펀드 불완전 판매 논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주가가 급격한 상승세를 보여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태생적으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불완전 판매로 인한 펀드 투자자 소송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는 관련 분쟁건수도 2006년 40건에서 지난해 109건, 올해 상반기 117건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피해자들 100% 보상은 힘들 듯

    은행과 증권사 일각에서는 펀드 소송이 제기돼 좋은 사람들은 변호사뿐이라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무분별한 펀드 불완전 판매에 경종을 울리고, 펀드 투자자 소송을 통해 법적 기반이 확립된다면 오히려 내실 있는 펀드 시장이 육성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키코(KIKO) 불완전 판매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소송 움직임과 결부되면서 이번 파워인컴펀드 소송 결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펀드 소송 어떻게 될까

    승소 사례 손가락 꼽을 정도 … 판매사 직원의 부당 권유 밝혀야 승산


    펀드 투자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소송을 고려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펀드가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그 위험 부담을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손해가 난 펀드에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펀드 관련 소송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제기된다.

    첫째는 펀드를 판매한 회사를 상대로 간접투자자산운용법에 규정된 각종 규정 위반, 판매행위준칙 위반 등 판매 과정에서의 부당행위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다. 둘째는 펀드 자산을 운용한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분산투자 의무 위반, 선관주의 의무 위반 등 운용 과정에서의 부당행위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한다. 주로 판매사들의 불완전 판매가 문제 되지만 자산운용사에도 상품 관련 정보가 많기 때문에 운용사를 공동피고로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판매사 직원의 부당 권유 행위를 밝혀내야 한다. 원칙적으로 판매사 직원이 부당하게 투자를 권유해 고객에게 손해가 생기면 판매사는 고객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는 투자자가 확인서에 서명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입증 방법이다. 가입 권유를 하는 직원의 말을 녹음했거나 직원이 자신의 설명에 책임지겠다는 서명을 따로 남겨놓지 않는 한 불완전 판매임을 입증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펀드에 손실이 날 경우 불완전 판매가 아니었다는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지게 된다.

    승소하더라도 투자자가 전액 보상받기는 어렵다. 파워인컴펀드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한누리 전영준 변호사는 “펀드 투자는 기본적으로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위험의 전부를 부담할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최근 법원이 증권 관련 소송에서 증권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더 높은 위험부담을 안기기보다 금융기관이 더 큰 부담을 지도록 판결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아직 펀드 투자자 소송에 대한 선례가 많지 않지만 일련의 판결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01년 당시 ‘러시아 펀드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투자자들이 50% 내외의 배상을 받았다.

    이 같은 펀드 투자자 소송에 대해 전 변호사는 “은행들이 펀드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도 그 수익을 고객 보호나 직원교육에 거의 쓰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은 소송이 제기되면서 펀드시장에 법률적 기반이 조성돼가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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