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2008.07.29

근대화 물결에 휩쓸린 청년들 비망록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7-21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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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물결에 휩쓸린 청년들 비망록

    <b>부랑청년 전성시대</b><br>소영현 지음/ 푸른역사 펴냄/ 320쪽/ 1만5000원

    7월12일 초등학생, 중·고생, 대학생, 교사, 일반인 등이 고루 섞여 한 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김용택 시인이 머무는 진메마을에 다녀왔다.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학도넷)가 주관하는 ‘김용택 시인과 함께하는 섬진강 기행’이란 제목의 이날 행사에서 올해 환갑을 맞이한 시인은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 내력, 섬진강, 자신의 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특히 맑은 강물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굽이, 여울, 소(沼) 등이 있기 때문인데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말은 어린 학생들까지 감동시켰고, 사람을 끄는 그의 능력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적당한 욕과 유머, 중간중간 던지는 학생들에 대한 질문 등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모습은 오랜 세월 초등학교 2학년을 가르쳐온 시인만의 장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각자 소감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일행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그 행사가 인생의 전환기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 중에는 교사도 몇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시인 김용택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은 청년이 아닌가. 독서노트를 쓰려고 골라놓았지만 미처 다 읽지 못해 쥐고 갔던 ‘부랑청년 전성시대’를 보면서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과 함께 ‘문학청년의 탄생’을 펴낸 저자 소영현에 따르면, 청년은 1900년대 전후에서 1920년대를 걸쳐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적 주체의 실질적 명칭이 되었다. 사실 그 시기에는 학교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사설교육기관, 청년회 등을 통한 강연, 토론, 연설 그리고 잡지 등이 교육기관 구실을 했다. 독립운동가 조만식이 계몽의식에 눈뜨게 된 계기는 안창호의 연설이었다.

    우리에게 청년 담론이 필요했던 것은 근대적 교육을 받고 근대적 의식을 흡수한 청년이 미래의 희망이자 가능성의 무한지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 이후 문화청년은 시대의 단절을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김용택 시인의 ‘짧은’ 이야기는 사실상 시골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체득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8월 정년퇴직하는 시인은 빈집이 많은 진메마을을 문학마을로 만들고 어린이 도서관도 짓겠다는 계획을 내게 귀띔했는데, 그날 참가자들의 소감을 듣고서야 나는 그가 갖고 있는 계획의 진정한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학교를 하나 세울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시절 청년은 가난했고 진지했으며 열정적이었으나, 때로 전투적이었고 본의 아니게 비열했으며 신랄했다. 바람직한 인간형의 표상이었지만 비판받을 행동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근대적 학교를 다니면서 근대적 의식을 접했고 서양문화에 익숙했으나 그들의 의식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펼칠 수 없었던 존재들, 즉 고등부랑자이기도 했다.

    3·1운동 전후로 이들은 변혁의 기운이 가져다준 양가적 감정인 희망과 좌절감을 가슴에 품고 있었기에 아버지 세대의 인습에 순응하지도, 근대적 일상을 살아갈 방안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의식 차원에서는 과거 세대와의 단절을 이뤄내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의식과 생활의 간극 앞에서 살아 있는 시체처럼 ‘참담한 포로생활’을 이어갔다.

    그들은 일종의 정신적 자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때로 반항아적 기질을 발휘하며 현실을 거부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현실에서 도피해 스스로 부랑자의 외피를 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책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정에서 당연한 절차처럼 나타난 입신출세주의라는 메커니즘, 신화가 된 고학생들의 내러티브, 문명한 청년의 자질로 격상한 자선적 행위,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빛으로 비쳐진 에스페란토, 하나의 시선이나 단일한 층위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현상이 돼 있던 경성, 불륜과 배신을 통한 자아찾기에 가까웠던 연애와 이혼소동 등 14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통해 청년이 불려나오고, 만들어지며, 분류돼갔던 구체적 장면들을 둘러보면서 진정한 청년의 모습을 탐색한다.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갈 주체들이 공부에 대한 열정은 없이 기생집, 요릿집을 들락거리며 차림새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은 분명 옳지 않은 태도였다. 그러나 그런 태도마저 ‘청년이니까’ 하며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보는 눈에 따라서 그것이 불량청년의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틀을 깨뜨리는 창조적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는 ‘촛불소녀’의 등장 이후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는 것은 ‘청년’이라는 세대의 오랜 특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미래의 희망을 읽곤 했다. 그런 면에서 ‘촛불소녀’의 등장은 우리의 희망이다.

    김용택 시인의 문학마을은 앞으로 신념으로 무장한 또 다른 유형의 촛불소녀를 배출할지도 모른다. 하루의 감동이 운명을 바꿔놓을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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