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2008.07.29

“異性 의식해 벗는 것 아니에요”

여성 노출, 자기만족과 동성간 경쟁이 가장 큰 이유

  •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kjkwak@snu.ac.kr

    입력2008-07-21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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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異性 의식해 벗는 것 아니에요”

    스페인 남부지역 마르베야의 젊은 여성들. 철학자 몽테뉴는 “훌륭한 외모는 그 자체로 훌륭한 추천장” 이라고 말했다.

    여름 태양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져서 그런 걸까? 요즘 서울대 캠퍼스 풍경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마이크로 미니 반바지에 유달리 눈길이 가고, 하늘하늘한 민소매 상의나 어깨끈 없는(!) 튜브 원피스도 자주 눈에 띈다. 어쩐지 불안하다. 저러다 더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폭염, 몸짱 열풍…. 이 모든 게 맞물려 ‘노출 패션’은 이 여름, 우리 사회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여성들은 왜 노출하고 싶어하는가. 이는 그동안 무조건 이성(異性)을 유혹하기 위한 것, 즉 노출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이성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돼왔다.

    그러나 여성들은 무조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해 옷을 입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여성들의 시선을 더 의식해 노출한다. 그저 집단 속에 묻혀버리기보다는 더 대담하고 돋보이게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며 당당하게 걸어갈 때 꽂히는 다른 여성들의 따가운 시선은, 어쩌면 ‘내가 더 우월하다’는 자신감을 만족시켜주는지도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U.C.Davis)의 카이저(Kaiser) 교수는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에 대한 자기상(body image)과 평상시 패션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물어봤다. 특히 노출 패션을 즐기는 여대생들을 면접한 결과, 노출을 통해 매력적인 신체부위를 과시하고 타인, 특히 동성과의 차별화나 구별짓기를 위해 자기표현을 하려는 동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노출할 만한 외모 가꾸기를 일종의 ‘성취 행동’으로 여겼다. 외모 가꾸기가 성공했을 때 여성들은 주변 사람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매우 즉각적이며 가시적으로 자존감을 향상시켜준다. 또한 노출을 통한 타인의 주목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노출했을 때의 이러한 긍정적인 경험이 또다시 노출 패션으로 연결되는 순환성을 가진다.

    외모 가꾸기 일종의 성취 행동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훌륭한 외모는 그 자체로 훌륭한 추천장”이라고 했다. ‘균형 잡힌 몸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추천장이다. 노출해서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몸매를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출은 부지런히 운동하고 자신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노출은 자기표현인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행위다.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갈수록 자기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불안한 상황에서 ‘몸’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나를 말해준다고 인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몸을 둘러싼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뜨거운 여름, 앞다퉈 신체를 노출하기보다는 이와 더불어 내 머릿속 지식의 노출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지식 다지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지식의 노출을 위해 몸짱과 지식짱(?) 연마를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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