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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흐르는 핏물처럼

  • 편집장 김진수

흐르는 핏물처럼

2주 전 한갓진 일요일 오후, 코피를 엄청나게 쏟았습니다. 마흔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많은 양의 피를 흘린 건 처음이었습니다. 평소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복용해온 저용량 아스피린 탓인지 지혈(止血)이 되지 않아(아스피린은 혈액 응고를 막는 작용을 합니다) 코와 입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보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 그것은 출혈의 충격과 공포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난생처음 119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았음에도 이틀 뒤 다시 하루에 두 번이나 피를 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출혈 부위를 약물로 지지고 전기 소작을 해도 효과가 없어 결국 항생제를 묻힌 거즈를 왼쪽 콧구멍 안에 채워넣는 비강(鼻腔) 패킹을 꼬박 48시간 동안 한 뒤에야 피는 멎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묽은 피가 비치긴 했지만요.

어쨌든 사흘간의 ‘피 같은’ 휴가를 의지와 무관하게 사용하고 생각지도 못한 고통스런(!) 휴식을 취한 끝에 며칠 전 드디어 코피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래도 큰 피를 뿌렸던 콧속 혈관들이 회복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걸리겠지요.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도 그와 같은 궤적을 그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몸이 축나서 출혈이 생기듯, 사회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수많은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불만의 분출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는 ‘국민 주치의’인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유기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건강을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병원 이사장’인 대통령의 신속하고도 적정한 진료행위에 달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 총에 맞아 사망하고, 코스피 지수가 연일 급락하고, 뻔히 예상됐던 일본의 독도 침탈이 반복되고, 서민들의 “못 살겠다” 아우성이 흐르는 핏물처럼 터져나오는데도 이렇다 할 처방은 눈에 띄지 않네요.



흐르는 핏물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도 비강 패킹 같은 강도 높은 방혈(防血) 조치가 취해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소신과 실력 없는 의사들이 득시글거리는 병원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환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다출혈을 피하려면 지혈부터 해야 합니다.

뻥 뚫린 두 콧구멍으로 숨쉬며 살아간다는 것, 별것 아닌 것 같나요? 쉴 새 없이 근심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아간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주간동아 2008.07.29 646호 (p8~8)

편집장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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