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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폐쇄 ‘노키아의 배신’?

독일 보쿰 시설 뜯어 루마니아로 이전 … 獨 외자 유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도마에 올라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공장 폐쇄 ‘노키아의 배신’?

1월15일 전격 발표된 한 가지 소식이 독일을 강타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 제조회사 노키아(Nokia)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보쿰에 소재한 공장을 올 여름까지 폐쇄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노키아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독일의 비싼 인건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키아는 독일 공장을 철수하는 대신 인건비가 독일의 10분의 1에 불과한 루마니아에 새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키아의 이번 결정으로 2000명이 넘는 독일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게다가 독일 소재 휴대전화 하청업체들의 줄도산도 불 보듯 뻔하기에 일자리를 잃는 독일인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독일 정치권은 노키아의 발표 하루 만에 노키아 경영진과의 대화를 요청했다. 공장 폐쇄 결정을 재고해달라는 간청도 하고, ‘파렴치한 처사’라는 비난 성명도 냈다. 특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 위르겐 뤼트거스는 아무런 사회적 책임의식도 없이 훌쩍 독일을 떠나려 하는 노키아를 가리켜 “보조금만 따먹고 튀는 메뚜기”라고 맹비난했다.

뤼트거스의 발언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외국자본 유치 정책의 일환으로 노키아에 6000만 유로(약 826억원)의 보조금을 지불했으며, 연방정부도 2800만 유로를 추가 지원했다. 지원 조건은 노키아가 보쿰 시에 286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당시 이 약속은 2006년 9월까지 유효한 것으로 합의됐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노키아는 루마니아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 공장 폐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독일인들은 그저 노키아가 사세를 확장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독일 공장을 통째로 들어다 루마니아로 옮긴다는 것이다.

2000명 실직 하청업체 줄도산 불 보듯



물론 ‘약정 기한’이 지난 이상 노키아에 책임을 물을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뤼트거스 주지사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는 독일 정부의 기업 보조금이 과연 독일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쓸데없이 허비됐는지를 따져보고 여차하면 환불 소송까지 가려는 태세다.

‘보조금만 따먹고 튀는 메뚜기’라는 비유가 지적하는 또 한 가지는, 루마니아가 노키아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3000만 유로가량의 정착보조금이다. 독일은 이 돈이 유럽연합 발전기금에서 흘러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럽연합 발전기금은 회원국 가운데 산업기반이 취약한 나라를 보조하려는 취지에서 조성된 자금으로, 부유한 독일이 가장 많은 기금을 부담한다. 그런데 독일이 내놓은 돈 때문에 수천 개의 자국 내 일자리가 날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물론 유럽연합 집행부는 이런 독일의 의혹을 부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다만 지난해 정식 회원국이 된 루마니아가 자국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필요한 비용 가운데 일부를 지원했을 뿐이며, 지원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해당 국가의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지원금을 받아 조성된 루마니아 내 클뤼(Cluj) 산업단지의 이름이 ‘노키아 빌리지(Nokia Village)’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사실 보쿰의 노키아 공장은 독일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보쿰은 1950~60년대 소위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루어 공업지역의 대표 도시로, 당시에는 석탄과 철광석 채굴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산업구조 개혁이 시대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업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도시’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그런 만큼 첨단기술의 상징인 휴대전화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노키아가 1990년대 초반 보쿰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시민들이 가졌을 기대와 긍지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쿰 시는 노키아 공장의 진입로를 넓히고, 공장 전용 기차역까지 별도로 신설했을 뿐 아니라 빈약한 시 재정의 일부를 떼내 노키아에 제공하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들도 노키아와는 언제라도 대화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는데, 이는 관료주의로 유명한 독일에선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 지난 연말 노키아 측은 보쿰의 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더 많은 종업원들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핀란드 본사에서는 독일 공장 폐쇄가 결정된 상태였다. 독일인이 더욱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점은, 노키아가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다. 독일은 인건비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하지만, 인건비가 휴대전화 생산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채 안 된다. 이 사실은 노키아도 인정한 바다. 4년 전 1만명이 넘는 직원을 대량해고한 자동차회사 오펠은 회사 사정이 워낙 어려웠다는 점을 참작할 수 있지만, 노키아는 매년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알짜배기 회사다. 독일 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도 60%가 넘는다. 그럼에도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독일을 떠나겠다는 노키아를 두고 대다수 독일인은 어이없어하고 있다.

격앙된 독일 실망 넘어 분노의 목소리

노키아는 독일 내 이미지 손상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 뤼트거스 주지사는 “독일 소비자들을 얕잡아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곧이어 페터 슈트룩 사민당 원내대표는 자신의 노키아 휴대전화를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호르스트 제호퍼 연방 농산부 장관은 자신의 개인 휴대전화뿐 아니라 자기 부서의 어느 누구도 노키아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혹한 세계적 경쟁체제에서 온정주의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푼의 이윤이라도 더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인데, 노키아가 모국 핀란드에라면 몰라도 ‘외국’인 독일에 사회적 책임을 느낄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노키아의 배신(?)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독일이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는, 그토록 공들인 외자유치를 통해 독일 산업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휴대전화 산업에 투입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판명됐다. 똑같은 품질의 휴대전화를 훨씬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독일의 비싼 노동력 때문에 독일 차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독일 차는 전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며 여전히 잘 팔린다. 누구나 그 탁월한 품질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벤츠 메이드 인 차이나’는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 혈세를 퍼부은 무리한 외자유치가 아니라, 국민이 각 분야에서 양질의 노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외자유치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외자유치 실적은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그보다는 외국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 외국기업은 다른 나라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안받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대규모 외자유치는 대량실업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8.02.05 622호 (p34~35)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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