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0

2007.04.10

카이사르 암살 ‘그때 그 사람들’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4-04 2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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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 암살 ‘그때 그 사람들’
    로마는 공화정에서 어떻게 제국이 됐을까. 거기에는 우선 한 남자의 죽음이 있었다. 그의 피살로 어떤 사태가 전개됐는가. 그에 대해 답을 내놓는 과정이 바로 로마 제정화의 답을 찾는 길이다.

    카이사르의 암살과 그 후의 숨가쁜 며칠간을 다룬 영화 ‘엠파이어’가 최근 국내 방송에 소개됐다.

    그의 암살은 만약 서양사 100장면을 사진첩으로 꾸민다고 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을 장면 중 하나다. 영화에서 토가를 두른 14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의 몸을 난자한다. 무려 23군데나 찔린 그가 죽어가면서 남긴 너무나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

    카이사르의 죽음이 로마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회자되는 것은 그 후의 사태 전개가 매우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개에서 어떤 한 사건이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경우도 있다.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가 바로 그랬다.



    1963년에 만든 ‘클레오파트라’라는 영화는 당시로선 유례없는 스펙터클 대작이었다. 이 영화에는 카이사르 암살 이후 정국의 흐름을 급반전시킨 대목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카이사르를 제거한 뒤 정국은 공화정 수호를 명분으로 카이사르를 죽인 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이 같은 흐름을 뒤집는다.

    먼저 연설한 이는 암살파의 핵심인물인 브루투스였다.

    “카이사르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다.” 그는 로마의 공화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황제가 되려 한 카이사르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리처드 버튼이 연기한 안토니우스 차례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재산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카이사르보다 로마인 당신들을 사랑한 이가 과연 있었는가.”

    결국 카이사르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연설에 의한 정치적 검투 경기는 안토니우스의 완승으로 끝났다.

    영화의 장례식장 연설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어스 카이사르’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영화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대로라면 공화파의 패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권력 분점,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제정체제 이행은 말 한마디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연설 대결에 대한 영화와 희곡의 묘사는 사실(史實)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브루투스의 뒤를 바로 이어서 안토니우스가 연설하지도, 이 때문에 상황이 급반전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러나 사람들은 그 같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영화 속의 극적인 장면을 더 사실로 믿고 싶어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카이사르의 말처럼.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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