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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리메이크

‘황야의 7인’ 낳은 ‘7인의 사무라이’

  • 이명재 자유기고가

‘황야의 7인’ 낳은 ‘7인의 사무라이’

‘황야의 7인’ 낳은 ‘7인의 사무라이’

‘디파티드’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수상이었다. 그는 몇 번의 도전과 실패 끝에 작품상 수상이라는 숙원을 이뤘다.

작품상을 받은 그의 ‘디파티드’라는 영화는 경찰에 침투한 갱, 갱 조직원이 된 경찰이라는 정반대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기발한 발상이지만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홍콩 누아르인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배경을 홍콩에서 보스턴으로 옮겼을 뿐이다. 재해석이 창의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리메이크 영화에 작품상을 선뜻 내준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디파티드’의 수상은 동양산 원작이 할리우드에 수출돼 명품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그 원조격이 된 영화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율 브리너와 스티브 매퀸 주연의 ‘황야의 7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매년 도적떼가 몰려와 약탈을 해간다. 수확한 양식을 번번이 뺏기는 마을 사람들은 도적떼와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농민들이 도적떼에 맞설 수는 없는 일. 마을 사람들은 돈을 주고 총잡이를 구하기로 한다. 7명의 총잡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키며 도적떼와 싸울 태세를 갖춘다.

1960년에 개봉된 이 영화의 원작은 그보다 6년 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



‘7인의 사무라이’다.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에서 제목 일부와 배경만 바꿨을 뿐 이야기 얼개는 거의 그대로다.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직 일본을 통일하기 전인 16세기 중반 전국 시대. 산적에 시달리던 가난한 산골마을 농민들이 사무라이들을 고용해 산적을 막는다.

영화는 제목을 ‘7인의 사무라이’ 대신 ‘7인의 의인’이라고 붙여도 될 것이다. 사무라이들이 받는 대가는 농민들이 피(잡초)를 먹는 대신 내주는 하루 세 끼 쌀밥이 거의 전부다. 숫자가 훨씬 많은 산적떼와 맞서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농투성이들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해 자기 목숨을 내건다.

결말은 ‘7인이 호쾌한 검술로 마을을 구하고 유유히 마을을 떠난다’는 식이 아니다. 사무라이들은 간신히 마을은 구하지만 그 자신들은 구하지 못했다. 그들의 검술은 당시 막 등장한 조총 앞에서 무너지고 하나하나 목숨을 잃는다. 영화는 봉건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것과 함께 사무라이들도 사라져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감독이라는 명성의 후광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이 영화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황야의 7인’ 이후 이 영화는 1980년 로저 코먼이라는 감독에 의해 ‘우주의 7인’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 번 리메이크됐다.

‘7인의 사무라이’는 지금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속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정의의 무사라는 이미지가 동양의 신비감과 겹쳐지면서 숱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미국 의회에서 일본 위안부 결의가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런데 결의안 발의의 주인공이 일본계 의원이다. 조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이 의원이야말로 칼을 차지 않았지만 7명의 사무라이와 같은 ‘참사무라이’라고 할 만하다.



주간동아 2007.03.27 578호 (p77~77)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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