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2006.05.23

‘한국문학 전령사’ 서울시 명예시민 되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5-22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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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전령사’ 서울시 명예시민 되다
    훤칠한 키에 흰 머리카락이 멋스러운 예순일곱의 백인 신부는 거의 완벽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빈 오록(67) 경희대 명예교수가 서울에서 산 세월이 자그마치 42년이다. 아일랜드인인 그는 1964년 콜롬바노 외방선교회 신부로서 한국에 왔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높은 빌딩이 시청 앞에 있던 10층짜리 호텔이었어요. 그동안 서울 참 많이 변했어요. 청계천이 복개되고 복원되는 과정도 다 지켜봤어요.”

    오록 교수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국문학 박사다. 1982년 연세대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땄고, 30년 가까이 경희대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한국문학 전령사’이기도 하다. 1974년 김동인, 현진건 등 주요 작가의 단편을 모은 ‘한국 단편소설집(Ten Korean Short Stories)’을 펴낸 이후 지금까지 30여 편의 한국문학을 번역, 출간했다. 1980년에 펴낸 한국 시 모음집은 영국 런던의 ‘시회(Poetry Society)’로부터 최우수 번역작품상을 받았고, 2001년 2월 미국 등에서 펴낸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오록 교수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이후 번역에만 몰두하고 있다. 올가을에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시 150선을 모아 책을 펴낼 예정이다.

    “시 번역은 무척 어렵고 까다로워요. 한국 시와 영시는 공통점이 거의 없지요. 영어로 번역한 한국 시라도 영시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춰야 해요. 그래서 번역할 때 뜸 들이는 시간이 긴 편이에요. 일단 번역을 해놓고, 몇 달에 걸쳐 읽고 또 읽으면서 한 자 한 자 다듬어나가지요.”

    오록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미당 서정주다. 서정주야말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서정주의 시는 바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로 시작되는 이 시에서 그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한결같은 자세를 지닌 시인의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95년 서정주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는데,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미당 부부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무엇이 40년 넘게 그를 한국에서 살도록 붙잡았을까. 오록 교수는 “평생을 한국에 살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것을 서양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도 했다. 지금도 활발한 번역활동을 하는 그에게 이 목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달 오록 교수는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그는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흐뭇하다”고 했다.

    “한국문학을 번역하려면 한국에 있어야 해요. 한국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번역된 한국문학이 죽지 않지요. 아일랜드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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