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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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만한 스승 어디 있을까요?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05-22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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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만한 스승 어디 있을까요?
    “아이가 뭘 알아요? 나중에 후회할 텐데, 부모가 잡아줘야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와 수학 교육을 하고, 서너 살 무렵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온갖 교육 정보를 섭렵,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는 게 부모의 최고 덕목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하지만 두 아이의 뜻을 존중해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6년째 배짱(?) 좋게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장영란, 김광화 부부가 그들이다. 이들 부부는 1996년 ‘이민 가는 기분’으로 귀농을 결심, 경남 산청에서 젊은이들과 간디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으며, 2년 뒤 전북 무주에 뿌리를 내리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있다.

    요즘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과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두 아이는 홈스쿨링과도 차원이 다르다. 아이들은 어디를 다닌 것도 아니고, 누가 찾아와 교육을 받은 적도, 부모에게서 특별히 뭔가를 배운 적도 없다. 성이 찰 때까지 마음껏 자고 뛰어놀기만 했다. 남들이 보면 사실상 방치다. 그러나 자연을 보고 배운 아이들은 자연을 닮은 사람으로 스스로 커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큰아이 정현(딸, 1988년생, 별명 탱이)이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중간고사를 앞두고서다. 시험공부를 하던 탱이는 어느 순간 친구들에게서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 세계는 이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규현(아들, 1995년생, 별명 상상이)이는 감기에 걸려서 결석, 늦게 일어나서 결석 이런 식으로 며칠 가고 며칠 안 가다가 아예 학교를 장기 결석했다. 결국 상상이는 초등학교 1학년도 마치지 않고 ‘취학의무유예원’을 낸 뒤 학교를 그만뒀다.

    이들 부부에게 무슨 거창한 교육철학이 있는 게 아닐까? 부부가 믿은 것은 ‘모든 생명에는 자기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는 점뿐이다. 부부는 몇 년간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 하기를 기다려줬고, 기다리는 동안 부모가 먼저 자신을 스스로 치유해갔다.



    ‘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망치고 있지 않느냐’는 평범한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아이들은 얼만큼 컸을까. 집에서 6년을 보낸 두 아이는 이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고, 배움의 호기심이 생기면 공부하고, 손수 필요한 것을 만들며, 가족과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됐다.

    탱이는 벌써 18세다. 집에서 지낸 3년째부터 자기가 먹을 음식을 손수 만들고 자기 밭을 열심히 일궜다.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전통무예 수벽치기를 배워 가족들에게 전수해줬다. 지난해에는 자기가 살 집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또한 몇 군데 잡지에 글을 연재하면서 돈도 벌고 있다.

    상상이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초밥을 만들고, 허영만 선생의 ‘식객’을 보고 막걸리를 빚는다. 마음 내키면 한달음에 수학책 한 권을 다 풀지만, 내키지 않으면 절대 보지 않는다. 스스로 놀거리를 만들어 놀고, 몸이 약한 걸 깨닫고 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튼튼해지자 가족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달라졌다.

    이 책은 아이들이 스스로 배움을 찾아가고, 놀 듯이 즐겁게 일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순수하고 가식 없이 적어 내려간다. 자연스러운 부모 노릇과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 이들 가족의 모습이 5월의 푸르름보다 더 싱그럽다.

    장영란·김광화 지음/ 돌베개 펴냄/ 292쪽/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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