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

고뇌와 환희, 노동자의 일상

  • 김준기 미술평론가

    입력2006-05-22 10: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뇌와 환희, 노동자의 일상
    그동안 크고 작은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접해왔지만, 지난해 ‘삼성화재 소송사건’(교통사고로 사망한 ‘작가’의 보험금을 놓고 삼성화재와 고(故) 구본주 유족이 벌인 소송사건)이 말끔히 해결된 뒤라서 그런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20여 점은 한결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구본주다운 작품의 맥락과 조형적인 변모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품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비교해보면 그가 10여 년 작가 생활을 통해 지켜내려고 한 것과 바꾸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나무를 깎아 ‘노동자’라는 작품을 남겼고, 형광 폴리코트로 떠낸 1000개의 샐러리맨 조각을 천장에 매달아 밤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게 만든 설치조각 ‘별이 되다’를 유작으로 남겼다.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인물상 ‘노동자’는 그의 초기작들이 가지고 있는 인체 표현의 전형을 보여준다. 탄탄한 구조 위에 과장과 생략을 더한 근육 표현을 추가해 ‘리얼리즘을 넘어선 리얼리즘’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의 탁월한 솜씨가 한껏 드러난 작품이다.

    그는 노동자를 사랑한 작가다. 그가 세상에 눈을 뜬 시기는 80년대 후반이다. 1987년 6월을 거치면서 한국의 노동자들이 계급적 각성을 일구던 시절, 그는 스무 살의 젊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한때 현장 노동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수원 일대에서 암중모색할 정도로 예술가와 노동자의 삶을 불이(不二)의 것으로 여겼다. 그는 현대사회가 어떻게 ‘노동’이라는 인간의 존엄한 본성에 냉엄한 족쇄를 채워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가슴에 깊이 새겼고, 이후 두고두고 일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고뇌와 환희를 작품에 담아냈다.

    그가 설치 개념을 도입한 것은 40대를 준비하며 21세기 문화의 변화지형에 몸을 싣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그의 초기작과 유작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작은 나뭇조각을 이어 붙여 인체를 만드는가 하면, 두꺼운 쇠를 두드려 종이짝처럼 휘어내 옷자락과 머리카락, 신발을 만들었다. 철판으로 거대한 구도를 만드는 데까지 도달했던 구본주는 이후 작은 샐러리맨을 수없이 만들어서 천장에 매달기도 했다. 거대하고 묵직한 조각 작품에서 날렵하고 가벼워 보이는 인체 표현으로 전환한 그는 개체와 군집의 미학을 통해서 공간을 장악해 들어가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날카로운 이성과 섬세한 감각, 힘과 유연성을 모두 갖추었던 구본주. 노동자를 사랑했던 구본주. 노동절로 시작하는 5월에 그를 다시 생각한다. 5월28일까지, 갤러리엠, 053-745-4244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