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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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추억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는가

극장 개봉 30주년 맞아 이벤트 다채 어린이대공원서 특별전, TV 시리즈도 제작 추진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6-05-22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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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의 추억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는가

    ‘신씨네’가 제작한 태권브이의 새로운 시안. 외형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태권도 동작을 더 정교하게 제작할 예정이다.

    “너 어릴 때 ‘로보트 태권브이’ 극장에서 봤어?” “그럼, 일곱 살 때였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하고 노래 나오면서 태권브이가 빰빠라밤 출동하던 장면에서는 가슴이 막 벅차오르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

    며칠 전 기자가 친구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비단 이 친구만이 아닐 것이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이 노래를 듣고도 가슴이 뛰지 않는 30, 40대가 있을까. 멋진 이단 옆차기와 로켓 주먹으로 악당 로봇을 제압해버리는 로봇 태권브이, 그리고 태권브이의 조종사인 훈이와 영희는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모든 이들의 우상이었다.

    3040 대부분의 어린 시절 우상

    태권브이가 벌써 서른 살이 되었다. 태권브이의 정확한 생일은 태권브이 1탄인 ‘로보트 태권브이’가 개봉한 1976년 7월26일이다. 이 해에 ‘로보트 태권브이’는 서울에서만 관객 18만 명을 동원해서 76년 개봉된 전체 영화 중 2위, 한국 영화 1위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기간인 21일 동안만 개봉했던 사정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다.

    이후 같은 해 겨울에 개봉된 ‘태권브이 2탄 우주작전’, ‘로보트 태권브이 수중특공대’(1977), ‘슈퍼 태권브이’(1982) 등 일곱 편의 태권브이 시리즈가 연이어 제작됐다. 그러나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초창기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긴장감이 실종된 데다가 컬러 TV와 비디오 시대가 개막되면서 태권브이는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1990년의 ‘로보트 태권브이 90’을 마지막으로 태권브이는 극장가에서 조용히 퇴장하고 말았다.



    그런 태권브이가 올해 들어 여기저기서 서른 살 생일잔치를 하고 있다.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에서 5월21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장난감나라 캐릭터존’에서는 로보트 태권브이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또한 동아사이언스, 서울산업대 김영석 교수팀(기계설계자동차공학부), 과학문화재단은 2006년 대한민국과학축전 개막식에서 태권브이 로봇이 태권도를 시연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2003년 4월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발견된 태권브이의 듀프 필름이 상영되기도 했다. 2년의 복원 기간을 거쳐 디지털로 말끔하게 복원된 이 필름은 곧 극장에서 재개봉될 예정이다.

    태권브이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기획사 ‘신씨네’는 태권브이를 주인공으로 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과 50회 정도의 TV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신씨네의 장순성 기획실장은 “극의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많은 기성세대가 추억하고 있는 태권브이의 외형은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태권브이 외에도 국내에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어떤 캐릭터도 태권브이 같은 꾸준한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장순성 실장은 “7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이 중 70%가 태권브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면서 태권브이가 단순히 70,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인층의 사랑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복원된 ‘태권브이 1탄’을 상영했을 때도 관객의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고.

    2003년 태권브이의 듀프 필름을 처음 발견한 영진위의 김보연 대리는 “기계이면서도 태권도라는 무술을 구사한다는 독창성, 로봇과 인간의 중간 형태라는 나름의 정신세계, 악한 캐릭터에게도 인간미를 부여한 수준 높은 시나리오” 등을 태권브이의 장점으로 손꼽았다.

    유년의 추억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는가

    어린이대공원에 전시중인 태권브이 특별전.

    “태권브이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나름의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들입니다. 그리고 당시 기술로서 태권도 동작을 구사하는 로봇을 애니메이션화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김 대리는 태권브이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태권브이의 마징가 표절설’에 대해서도 “마징가 Z 역시 완전한 오리지널 캐릭터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의 등장인물을 차용한 것”이라며 “이 정도의 차용으로 태권브이라는 작품의 가치가 절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원본 필름 행방불명되는 등 보존 노력 미흡

    2000여 명이 활동하는 온라인 태권브이 팬클럽의 시삽 김지환 씨는 “일본 로봇은 대부분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데 비해 태권브이는 오직 태권도로 적을 무찌르는 로봇이다. 정정당당한 싸움 태도에 옛날 우리나라 장군들의 위엄까지 갖춘 카리스마가 태권브이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권브이가 쓰고 있는 투구는 김청기 감독이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고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2003년 ‘태권브이 1탄’의 듀프 필름이 발견되기 전까지 태권브이는 원본 필름이 아예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나운규의 ‘아리랑’처럼 한 세기 전 영화도 아닌, 우리가 어릴 때 보며 열광하던 태권브이가 불과 한 세대 만에 기억의 저편으로 퇴장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 한층 거세진 태권브이 부활 움직임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난감나라 캐릭터존’에 전시된 1000여 점의 태권브이 관련 용품을 수집한 남상우 씨는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의 문구점을 돌며 태권브이 관련 용품을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게 남 씨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추억의 로봇은 이제 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몇 년 후,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같이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하고 태권브이 주제가를 부른다고 상상해보라.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인터뷰|태권브이 김청기 감독

    “태권브이 보고 과학자 됐다는 팬레터 받았다”


    “70년대에는 애들 보는 만화영화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 없었지. 그래서 내가 집을 저당 잡혀서 제작비를 댔어. 50, 60명이 모여서 밤낮없이 그림을 그렸지. 남들은 태권브이로 내가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집 저당 잡혀서 낸 빚을 갚는 데만 3년 걸렸어. 로열티 같은 개념을 잘 모를 때였으니까.”

    유년의 추억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는가
    ‘로보트 태권브이’의 김청기 감독(64·사진)은 아직 젊고 짱짱했다. 1976년, ‘로보트 태권브이’를 제작할 당시 그는 겨우 30대 초반의 신예 감독이었다. 단행본 만화를 그린 경험이 있던 김 감독은 태권브이를 비롯해 훈이와 영희, 깡통로봇, 메리, 악당 카프 박사 등 대부분의 캐릭터를 직접 그렸다. 당시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모션캡쳐 기법을 사용해서 태권브이의 동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나더러 태권도 몇 단이냐고 묻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난 태권도를 할 줄 몰라. 태권브이의 태권도 장면은 유단자에게 실제로 태권도를 하게 한 뒤 16mm 필름으로 찍어서 그 화면 위에 셀로판지를 대고 그렸어. 해외 자료를 보니까 디즈니 같은 데서 그렇게 한다더라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태권브이를 상영할 때 김 감독 역시 현장에 있었다. 상영이 끝나자 중년 관객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어릴 때 태권브이를 봤는데 지금 보니 더 가슴이 찡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쁘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해. 가끔 태권브이의 영향으로 과학자가 됐다는 팬레터를 받을 때도 있어.”

    환갑이 지났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는 요즘 극장용 애니메이션 ‘광개토대왕’을 제작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태권브이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더니 펜을 꺼내 단숨에 태권브이와 깡통로봇을 쓱쓱 그린다. “아직 잊지 않으셨군요”라는 질문에 노(老)감독은 “잊을 리가 있나. 다 내 자식 같은 캐릭터들인데” 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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