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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당신의 사생활은 알몸

감쪽같은 장비, 007도 기절하겠네

볼펜·손목시계형 디지털 녹음기 판매 ‘불티’ … 성능 뛰어난 차량위치추적기도 은밀 유통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감쪽같은 장비, 007도 기절하겠네

감쪽같은 장비, 007도 기절하겠네

한 녹음기 판매업체 창고에 가득 쌓인 고성능 녹음기들. 손목시계형 녹음기와 볼펜형 녹음기.

“사업상 사기를 당하는 것 같아 비밀 녹취를 하려고 합니다. 증거 확보용으로요. 초소형, 장시간 녹취 가능, 우수한 녹음 품질, 자체 충전이면 좋겠고요. 메모리를 컴퓨터로 이동 가능하고, A/S도 잘되는 것. 전문가의 추천을 바랍니다.”

“아파트 위층의 쿵쿵거리는 소리를 녹음하려고 합니다. 쭜쭜마트 에서 사려고 했는데, 직원이 그런 건 전문적인 걸로 해야 한다더군요. 어떤 걸로 해야 좋은지요?”

한 녹음기 전문 쇼핑몰의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문의글들이다.

인터넷이 개인 컴퓨터에 의존해 타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소극적인 통로 구실을 한다면, 오프라인에서는 각종 장비를 활용한 적극적인 정보획득 행위가 대세를 이룬다. 예전과 다른 점은 용산이나 청계천의 전자상가에서 도청기 등 불법 장비를 음성적으로 구입하던 것과 달리, 최근엔 합법적인 장비 활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이 또한 ‘셀프 흥신소’ 시대의 도래를 방증한다.

최근 인기리에 팔리는 제품은 단연 디지털 녹음기. 특히 USB 메모리가 내장되어 음성녹음 기능은 물론 MP3 기능까지 갖추고, 일반인들이 좀처럼 녹음기로 인식하기 힘든 손목시계나 볼펜형으로 만들어진 모델들이다.



“비밀 녹취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 압도적”

디지털 녹음기 전문업체 ‘나래Inter’(www.wjkk.net)에 따르면, 가장 많이 팔리는 녹음기는 10만~20만원대의 대만제 볼펜형과 중국(홍콩)제 손목시계형. 둘을 합쳐 월평균 1000여 개가 팔려나간다. 이중 70% 정도는 손목시계보다 위장성이 뛰어난 볼펜형이다. 시계형은 디자인에 까다로운 소비자가 선뜻 고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녹음시간은 최소 8시간에서 최장 72시간에 이른다.

이 업체의 김주근(40) 대표는 “강의내용 녹음 등 학습용이나 선물용으로 사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구입 상담을 받아보면 비밀 녹취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급하게 필요하다며 퀵서비스로 보내달라는 손님도 많다”면서 “지난해 10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아 사업이 잘 된다”고 털어놓았다.

상대방 몰래 대화를 녹취하는 행위는 소송 당사자나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 부동산 계약의 임차인 등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에게도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강의내용을 녹음하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교수나 강사 몰래 마이크가 내장된 소형 디지털 녹음기를 사용하는 광경은 흔한 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현행법상 제3자가 아닌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취하는 행위를 문제 삼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량위치추적기도 은밀히 팔리고 있다. 담뱃갑 한 개 반만한 크기의 추적기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기능을 활용해 추적기가 장착된 차량의 위치를 인터넷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24시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장비. 단 몇 분 만에 누구나 손쉽게 장착할 수 있고, 탑승자의 눈에 띄지 않게 장착이 가능한 위치도 50여 군데나 된다.

기자는 자체 홈페이지 없이 추적기에 대한 판매 문구와 전국 각 지역을 대상으로 한 안내 전화번호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려놓은 한 업체에 차량위치추적기 구입을 문의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4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 그는 “추적기 가격은 100만~250만원대로 국산 제품이다. 50만원을 지정한 계좌로 선입금하면 물건을 보내준다”고 했다. 기자가 “내 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차에 부착할 것”이라고 하자, 그는 “구입자 본인의 차에 장착하지 않으면 물건을 보내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일단 상담을 한번 받아보라”며 ‘도난방지용’임을 유독 강조했다.

감쪽같은 장비, 007도 기절하겠네

영국산 차량위치추적기.

그의 말대로 차량위치추적기의 본래 용도는 고급 자가용이나 렌터카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인터넷의 제품 안내 문구에도 ‘정상적인 유통을 거쳐 나온 합법적인 제품이니 불법적인 문의를 삼가라’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05년 8월, 인터넷 카페에 차량위치추적 광고를 낸 뒤 남편의 사생활을 탐지해달라는 한 여성의 의뢰를 받고 남편의 승용차에 추적 장비를 설치한 업자를 적발했던 경찰관의 말이다.

“차량위치추적기를 판매하거나 구입하는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원칙적으로 없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등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탐지하는 데 사용할 경우엔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배우자의 불륜을 캐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는 불법으로 보기 힘들다. 정확한 실태 파악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또 “차량위치추적기는 추적 대상 차량을 ±10m의 오차범위 내에서 정확히 잡아낸다. 주위의 건물이나 상호명까지 세세하게 모니터로 들여다볼 수 있다”며 “솔직히 경찰관인 나도 범인 검거에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큼 성능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차량위치추적기의 가격은 대당 25만~30만원 정도. 하지만 판매업자들이 100만~250만원을 부르는 까닭은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금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량위치추적기는 인터넷상에서 해당 차량의 현 위치와 주행속도, 주차 여부, 배터리 상태 등 갖가지 항목을 체크할 수 있는데, 한번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관음증 이상으로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남 훔쳐보기 마약보다 강한 중독성

그렇다면 ‘창’에 맞서는 ‘방패’는 없을까.

경호 및 시설보안 서비스업체인 디텍티브레인저스(주)의 한 관계자는 “차량위치추적기 부착 여부를 탐지해달라는 의뢰가 가끔 들어오긴 하지만, 우리 회사를 포함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한국통신보안주식회사의 안교승 대표는 “방이나 사무실 내부의 도청기를 탐지하는 것과 달리, 전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상대방이 비밀 녹취를 하거나 자신의 차량 위치를 추적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제 친구 한 명은 망원경을 사용해요. 별을 보냐고요? 아니요. 여자 관찰용이죠. 자기 아파트 옆 동에 사는 한 여자를 툭하면 망원경으로 훔쳐봐요. 그 친구는 1987년에 결혼했는데, 외형적으로 보면 정말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아이도 있어요. 부부 금슬도 좋고. 그러니 더욱 이상할 수밖에요. 결혼 전부터 그런 행동을 해왔는데, 자기는 ‘관음증’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재밌다나? 저도 호기심에서 한번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상대방 몰래 그의 사생활을 훔쳐보니 짜릿한 감이 오긴 하더군요. 누리꾼들이 남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엿보는 재미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니겠어요? 어릴 때 ‘목욕하는 옆집 누나 훔쳐보기’ 같은….”

올해 38세인 직장인 이모 씨가 은밀히 털어놓는 얘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한 ‘셀프 흥신소’의 주인들은 오늘도 남몰래 장비를 어루만진다.



주간동아 2006.05.23 536호 (p20~21)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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