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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도보여행가 김남희

“왜 힘들게 걷느냐고요? 행복해 지거든요”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왜 힘들게 걷느냐고요? 행복해 지거든요”

“왜 힘들게 걷느냐고요? 행복해  지거든요”

“외국인 도보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김남희 씨.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한 프랑스 언론인이다. 그는 퇴직 후인 1999년 62세의 나이로 터키에서 중국까지 1만2000km의 실크로드를 걸어서 건너는 ‘모험’을 시작했다. 4년에 걸친 대장정이 끝났을 때, 그에게 남은 건 ‘나는 걷는다’라는 제목의 세 권짜리 책. ‘이스탄불에서 시안(西安)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기 성찰의 보고서’였다.

3월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찻집 마당에 김남희(36) 씨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 내용이 떠오른 까닭은 두 사람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김 씨도 지난 3년간 중국, 라오스, 미얀마, 인도, 이란, 파키스탄, 터키, 포르투갈 등 엄청 긴 길을 두 발로 걸어서 여행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를 걷고 쓴 두 번째 도보여행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물론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가 산티아고를 알게 된 것도 그분이 실크로드 장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 길을 걸었다고 책에 썼기 때문입니다.”

생면부지의 프랑스 언론인이 쓴 책을 읽고 산티아고 길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모아서, 결국엔 답사를 하고 왔다니 보통 한국 여성으로선 갖기 어려운 강단이다. 그렇다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이란 책 제목은 그냥 상술(商術)로 붙인 제목이었나?

- 지금까지 몇 나라를 다녀봤습니까?



“가본 나라는 40개국이 넘는 것 같은데, 세보진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한 10여 개국 될까요? 제가 원체 느리게 이동하니까. 인도·네팔 같은 곳에선 1년씩 머물렀고…. 근데 그건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에요.(웃음) 어디가 가장 좋더냐, 외롭지 않더냐, 여행은 왜 하느냐 등등 왜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빼놓지 않고 묻는 것들 있잖아요.”

김 씨는 나이 서른이 되던 해 가을에 지리산 종주를 했던 얘기를 하면서 “산에 있던 3박4일 내내 비가 왔지만 너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서른 살 때 먹었던 ‘떠나겠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진 3년이 더 걸려야 했다.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더는 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는 것.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생각은 해요. 사람들마다 자기에게 간절하고 절실한 것을 부여안고 사는 게 아닐까, 저한테는 그때 떠나는 것이 간절하고 절실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거든요.”

스스로 까탈스럽다고 고백하는, 외모도 연약해 보이는 30대 여성이 혼자서 외국의 오지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그녀가 지났던 곳마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론 위험한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여성으로서 곤란한 지경도 겪었을 터. 그럼에도 그녀가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도보여행이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일까?

“왜 힘들게 걷느냐고요? 행복해  지거든요”

티베트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한 김남희 씨.

-왜 걷습니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은 달라요. 사람들과 만남의 밀도가 찰지다고 할까요. 걸으면서 접하는 세상도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세상보다 제 눈에 훨씬 오래 남고 깊이를 더해줘요.”

- 내면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 예컨대 걸으면서 수행한다는 어떤 스님의 수행법도 있잖아요?

“저도 그걸 해봤는데 오히려 잡념이 더 생기던데요?(웃음) 하지만 정말 지쳐서 한 발짝도 더 걷지 못할 것 같을 때, 머릿속이 텅 비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의 비움, 몰입, 그런 게 좋아요. 걷기 좋아하는 제 친구가 ‘자기 자신이 걸음 그 자체가 돼 있더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에요.”

- 몇 년째 걸으면서 자기 성격이 달라졌다고 느낍니까?

“좀더 참게 되고, 포기하고 수용할 줄 알게 되고, 욕심도 좀 줄어든 것 같고…. 예전엔 사람 관계에 연연했는데, 여행을 하면서 그런 면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 사람을 보는 눈도 더 밝아졌고요?

“예전에 한 사람을 알기 위해 10시간쯤 얘기해야 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상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제 판단이 정확해지는 확률도 점점 높아지는 것 같고요. 나이 먹어가면서 생기는 미덕이랄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신의 책에서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고 썼다. 비행기로 10여 시간이면 갈 거리를 몇 년씩 걸려 걷는 것은 무지막지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아를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생산적인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김 씨의 생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여행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밖에 나가서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내가 무엇을 버릴 수 있고 버릴 수 없는지 알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키워서 돌아오거든요. 그러면 돌아온 뒤의 생활이 훨씬 건강해져요. 결국은 제가 뿌리를 내리고 살 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떠나는 거지요.”

“왜 힘들게 걷느냐고요? 행복해  지거든요”

김 씨가 최근 낸 산티아고 도보여행.

- 산티아고 길을 소개해주시지요.

“프랑스-스페인 국경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의 길인데요. 2000년 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부터 걸어갔다는 길입니다. 길의 종착지에 그의 무덤이 있어 예로부터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 길은 한마디로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에요. 그곳 협회에서는 순례자용 여권도 발급해줘요. 5~10km마다 배치된 도보여행자용 숙소에 여권을 제시하면 싼값에 하룻밤 묵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찾아오는데, 지금까지 한국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

- 도보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매우 미흡한 우리로선 꽤 부러운 모습이군요.

“요즘은 대학생들도 도보로 국토순례를 많이 하잖아요. 정부가 이들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도보여행 코스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해요. 도로 안쪽으로 여행자용 길을 내주고, 이들을 위한 증명서도 발급해서 식당이나 숙소에서 할인해주게 하면 외국인 도보여행자들도 우리나라를 많이 찾게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훗날 외국인 도보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한반도는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횡단 도보여행의 출발점이 될 수 있고, 그때를 대비해 전국망을 가진 게스트하우스 체인망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럽지만’ 제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다니는 그녀인 만큼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았다.



주간동아 2006.03.21 527호 (p66~67)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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