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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애벌레는 범인을 알고 있다

범죄수사 응용 ‘법의곤충학’ … 변사체서 발견된 곤충, 사건 해결 중요 단서와 증거로 활용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파리·애벌레는 범인을 알고 있다

파리·애벌레는 범인을 알고 있다

닭 사체에 모여든 개미와 파리 유충.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외화 시리즈 ‘과학수사대 CSI’(라스베이거스 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시 경찰 현장감식반의 활약상을 다룬 수사물로 첨단 과학수사의 결집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25년 경력의 범죄수사국장 길 그리섬. 흥미로운 것은 각 분야의 전문 수사요원들을 총지휘하는 그가 곤충학자라는 사실이다. 살인사건 현장의 시체에서 발견된 곤충은 그를 통해 사건 해결의 단서와 증거가 된다.

2002년 실종 11년 만에 대구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발견됐을 때도 곤충은 사인 규명의 중요한 단서로 주목받았다.

국내 유일의 법의곤충학자로 개구리소년 유골 조사에 참여했던 고신대 생명과학부 문태영(48·이학박사·의학박사) 교수는 “처음 유골이 발견된 현장이 훼손됐고, 사망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곤충학적으로 쓸 만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었다. 곤충의 유충은 발견되지 않았고 두개골과 골반, 신발 속에서 파리 등의 탈피각(허물)이 채집됐는데, 그 양으로 미루어 자살은 아닐 것이라는 추정만 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모발, 치아, 유전자 감식과 시체 부검 등의 법의학 분야는 오늘날 살인·사망 사건 해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됐다. ‘법의곤충학(medicolegal entomology)’은 바로 이 법의학과 곤충학을 연계해 범죄수사에 활용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시체 서식 생물 중 85%가 곤충



법의곤충학은 곤충의 생태와 발달생리를 이용해 변사체의 사후 시간 경과와 시체 유기 여부 등을 밝혀냄으로써 사건 해결에 단서를 제공하거나 증거로 활용된다. 수많은 생물 가운데 곤충학이 범죄수사에 활용되는 이유는 시체에 몰려들어 서식하는 생물 가운데 약 85%가 곤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체에 몰려드는 곤충을 일명 ‘시체곤충’이라고 부르는데, 법의곤충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시체곤충의 종류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문 교수에 따르면 시체에 몰려드는 곤충 중에는 파리의 유충(구더기)처럼 시체를 직접 먹이로 활용하는 종류도 있지만 유충을 잡아먹기 위해 오는 반날개와 반날개에 기생하러 오는 기생벌이나 기생파리 등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시체의 부패 정도에 따라 접근하는 곤충의 종류가 바뀐다.

시체에 가장 먼저 몰려드는 곤충은 파리다. 반면 딱정벌레는 시일이 많이 경과해서 시체가 건조해진 뒤 나타난다. 또 시체를 먹고사는 곤충 중에 금파리와 쉬파리의 애벌레는 부패가 시작되고 2주가 되기 전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송장벌레는 검정파리 구더기가 성충이 된 이후에야 모습을 나타낸다. 수많은 검정파리 구더기가 시체를 왕성하게 먹는 시기에 발생하는 암모니아가 송장벌레에게는 유해하기 때문이다.

파리·애벌레는 범인을 알고 있다

2002년 개구리소년 유골을 감정하고 있는 문태영 교수(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법의곤충학 세미나 참석자들이 동물 사체곤충 실험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시체에서 발견되는 곤충의 종류와 부패 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곤충들의 천이(遷移)를 밝히면 사후 경과시간과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해진다.

계절, 지역, 기후, 토양, 온도 등 주변 환경에 따라 서식하는 곤충의 종류와 성장시기 등 생태가 다르기 때문에 시체에서 발견되는 곤충에 의해 사망 장소뿐 아니라 살해 후 시체가 다른 장소에서 옮겨졌는지의 여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시체가 발견된 지역에서 서식하지 않는 곤충이 시체에서 나왔다면 이는 사후 유기의 증거가 된다. 시체의 사인을 밝히는 증거로도 곤충학이 이용된다.

문 교수는 “음독자살한 시체에서 발견되는 구더기는 보통 시체의 구더기보다 느리게 성장하는 반면 마약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고 죽은 시체에서는 구더기가 훨씬 빨리 자란다. 마약으로 인한 흥분상태에서 시체를 빨리 파먹어 성장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이런 경우 실제 사망시각보다 이르게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동물 사체로 실험 우리나라는 불모지

곤충이 범죄수사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를 전후해서다. 어떤 사건에서 우연한 기회에 곤충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 ‘법의곤충학’이라는 학문으로 정착된 것은 그로부터 90여년이 지나서다.

전 세계적으로 법의곤충학자가 많지 않다. 입문 수준의 사람까지 포함해서 고작 200명 정도다. 법의곤충학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록한 책이 처음 나온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그전에는 영국, 핀란드 등에서 몇몇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낸 연구보고서가 전부였다. 90년대 들어 미국과 유럽 법의학자들이 활발히 교류하면서 1992년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국제곤충학회가 열렸고, 여기서 법의곤충학이 학문적으로 인정받았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법의곤충학의 불모지다. 극소수의 법의학 관련 연구소에서 동물 사체를 이용한 사체곤충 실험을 진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사건현장의 시체에서 발견된 곤충은 총 230여 종. 국내에서 기록된 곤충이 1만3000여 종임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데이터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체를 가지고 실험을 할 수가 없어 동물 사체를 이용한다. 동물 사체는 시체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수사과정에 있는 시체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니까 진척이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게 문 교수의 부연설명.

미국은 30년 전 테네시 주립대학 법의인류학 교수 윌리엄 베이스 3세에 의해 법의학을 위한 시체농장이 세워졌다. 최근에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시체농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테네시의 시체농장은 지난 한 해에만 100구의 시체를 기증받았다. 이곳에서 직접 시체를 이용해 시체곤충을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법의곤충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의 법의곤충학자는 20명 정도. 하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이 국가적으로 법의곤충학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고, 의대 전문의처럼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과정도 개설돼 있어 조만간 그 수가 급증할 전망이다. 미국 법원의 법의곤충학 자료 증거 채택률은 80%로 매우 높다.

각국의 법의곤충학 자료 증거 채택률을 보면 핀란드와 일본은 각각 90%, 영국은 70%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 교수의 설명이다.

“곤충학 역사가 오래된 미국과 유럽은 여러 지역에 퍼져 있는 아마추어 곤충학자들이 서로 간에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곤충의 생태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교환, 축적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법의곤충학이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발달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법의곤충학 데이터는 미미할 뿐 아니라 아직 신뢰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것이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는 이유다. 또 법의곤충학 자료가 증거로 채택되려면 이에 대한 검사나 판사의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데 지금 시점에서 그걸 바라는 건 무리다.”

법의곤충학 이용 사건 해결 사례는

해안서 발견된 남자 15일 전 배에서 살해 후 바다에 던져


●1966년 6월4일 스웨덴의 한 해안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 죽은 남자 시체가 발견됐다. 내부 장기는 심하게 부패돼 있었고 얼굴과 가슴의 일부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10일 부검이 이루어졌는데 가슴에서 10~12㎜ 크기의 파리 구더기가 나왔다. 검사 결과 해안에 떠내려온 해초에 몰려드는 습성을 가진 해초파리류였다. 이를 토대로 시체가 해안에 떠내려온 시기가 확인됐다. 시체 발견 장소는 보통 5월과 6월 초에는 온도가 낮아서 시체에서 채집된 구더기 크기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약 2~3주가 걸리는 것으로 판단됐다. 또 이 지역에서는 흔히 시체에 몰려오는 금파리류가 5월 말 이후에 출현하는데 금파리류 구더기가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5월 말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범인은 5월14일 해안으로 들어오는 배에서 피해자와 말다툼 끝에 그를 살해한 뒤 구명조끼를 입혀 항구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 던진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 8월 미국 워싱턴주 스포켄시의 한 폐차장에서 목과 가슴을 여러 차례 얻어맞은 채 숨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상처 주위에선 파리 성충들이 발견됐다. 시체를 부검하자 몸속에서 파리의 알들이 나왔다. 현미경으로 알의 발생 시기와 성장속도를 검토한 결과, 모든 알들은 산란된 지 8시간이 경과하지 않은 단계임이 판명됐다. 이로써 피해자는 시체로 발견되기 전 어두울 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파리는 어두우면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만약 낮에 살해됐더라면 파리가 알을 더 일찍 산란해 시체가 발견된 시점에선 알이 아닌 구더기가 상처 부위에서 육안으로 발견됐을 것이다. 수사 결과 피해자는 시체가 발견된 당일 아침 해 뜨기 전에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1996년 5월 노르웨이 남동부에 위치한 숲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는 일부 부패돼 있었고 얼굴 주변에 많은 구더기가 있었다. 부검 시 몇 개의 파리 알을 채집해 관찰하자 검정파리류로 추정됐다. 그런데 크기가 유독 작은 구더기들도 발견됐다. 또 파리 성충들도 발견됐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모두 관찰되는 종으로 판명됐다. 그런데 일반 사건현장에서 채집되는 곤충 수에 비해 매우 적은 수만 채집됐고, 채집된 부분도 대부분 입 주변이어서 약물중독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사건현장 주변의 기온은 15℃로 낮았는데 이 온도에서 여러 종의 성장속도를 확인한 결과 사건은 시체 발견 26~30일 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결과를 토대로 약물중독 검사를 하자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판명됐다.

■ 자료 제공 : 고신대 생명과학부 문태영 교수, 국제곤충학회 보고 사례


문 교수가 지금까지 사건현장에서 직접 조사한 시체는 20구 정도다. 문 교수는 이를 토대로 올해 안에 법의곤충학 책을 펴낼 예정이다. 법의곤충학 이론, 시체 부패단계별로 관련된 곤충에 대한 이론, 토끼나 개 등 동물 사체로 실험한 사체곤충 종류와 특징 및 구분법 등이 주요 내용.

한편 법의곤충학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최근 의미 있는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경상대 농생물학과 대학원에서 응용곤충학을 전공한 임채석(44·경남 사천 곤양고 생물교사) 씨가 발표한 박사 논문 ‘법의학적 지표로서 유기된 동물 사체와 관련한 절족동물’(지도교수 추호렬)이 그것.

임 교사는 실험 데이터를 얻기 위해 닭과 돼지·소의 사체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야산, 들판, 하천, 빈집, 웅덩이, 가방, 옥상 등에 노출과 매장 상태로 각각 유기한 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곤충의 발생과 생태 추이를 추적했다. 그 결과 파리, 사슴벌레, 딱정벌레, 방아벌레, 수시렁이, 반날개, 노린재, 거미, 개미, 진드기 등 닭의 사체에서 발견된 곤충 종류만 331종에 달했다.

임 교사는 “계절은 물론이고 매일의 날씨나 기온에 따라 곤충의 성장속도가 달랐고, 사체 유기 후 시간경과에 따라 나타나는 곤충도 달랐다. 또 일부 파리류와 딱정벌레, 진드기류 등은 사체 유기 전 사전조사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이후에만 채집됐다. 실내인지 실외인지에 따라 동일한 종의 파리가 사체에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달랐다. 또 비가 온 뒤 사체에 있던 구더기가 주위 나무에서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사체곤충 종류뿐만 아니라 사체에서 파리 유충을 채취해 성장과정을 추적하는 실험도 진행했는데 논문에는 그 결과를 미처 싣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동물 사체에 나타나는 곤충을 포함한 곤충학 관련 데이터는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축적 양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사건현장의 시체에서 관찰되는 곤충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때문에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현장의 시체에서 곤충을 채집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축적될 때 비로소 법정이나 범죄수사에서 법의곤충학의 단서나 증거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6.03.21 527호 (p40~42)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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