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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요직은 공무원 출신 독차지, 비인기 직위만 민간인으로 … 공직사회 견제·복지부동에 적응도 어려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지난해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공무원 연봉(1억1909만원)을 받은 김명곤 전 국립중앙극장장(현 문화관광부 장관), 400억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거리던 우정사업본부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공을 세운 박재규 전 우편사업단장, 관세청의 첫 여성 과장이라는 기록을 세운 최영란 교역협력과장….

각각 연극인, 대기업 임원, 금융경제 전문가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비정규직’ 즉 민간인 출신의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공직사회의 민간 개방 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행정고시 출신 위주로 구성된 공직사회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 아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민간 전문가 채용 규모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도입된 개방형 직위제도(민간 전문가와 공무원을 경쟁시켜 선발하는 제도)의 경우 도입 당시 129개였던 것이 3월 현재 157개로 증가했고, 대상 직위도 실·국장급(1~3급)에서 과장급(4급)으로 확대됐다. 2004년 말 기준으로 중앙정부에 채용된 사무관(5급) 이상 계약직 공무원은 370명(일반계약직 및 직제 외의 전문계약직 포함)이며,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800명을 웃도는 규모다.

정책·기획 분야 채용자 82%가 공무원 출신

민간 전문가들은 공직사회의 경쟁력 제고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을까. 민간 전문가를 무리 없이 받아들여 ‘혁신’을 꾀할 만큼 공직사회는 경직된 체질을 개선했을까. 지난 6년간 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사람들의 출신 및 해당 직위 등을 분석한 결과, 공직사회는 여전히 ‘민간 거부 증후군’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사회 진입에 성공한 민간 전문가들 가운데도 경직된 조직문화나 민간보다 낮은 보수 등으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았다.



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사람 중 민간 전문가 비중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현재 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143명 중 민간 출신은 54명으로 38%에 불과하다. 반면 공무원 출신은 89명으로 62%를 차지한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0년(민간인 출신 17%, 공무원 출신 83%)보다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민간인 출신이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아예 민간인 충원을 외면하는 정부 부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검찰청. 대검은 검찰 사무 전반을 관리하는 사무국장(3급) 자리 3개를 개방형 직위로 지정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개 직위를 모두 미충원 상태로 두고 있다. 검찰청의 조직 및 인사 등을 규정한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민간 출신 인력을 사무국장으로 채용할 수 있는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받았음에도 법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검 측은 “민간인을 채용할 경우 수사기밀 유출이 우려되는 등 개방형 직위 도입이 부적합하다는 논란 등으로 법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민간 채용이 증가하면서 행정고시 출신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행정고시 원서접수장에 모여든 지원자들.

그렇다면 개방형 직위 중 어떤 자리는 공무원이 계속 붙들고 있고, 어떤 자리는 민간 전문가에게 넘겨주고 있을까. 개방형 직위에 채용된 357명(2000년~2005년 10월)의 해당 직위를 분석한 결과 ‘요직’이라고 불리는 직위는 대부분 공무원이 차지하고, ‘비인기’ 직위는 민간 전문가에게 넘겨주는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정책이나 기획 관련 직위는 대부분 공무원 차지였다. 정책·기획 관련 직위에 임용된 38명 중 공무원 출신은 28명이지만, 민간인 출신은 10명에 불과했다. 민간인으로 분류된 이들 중 3명은 전직 공무원으로, 이들까지 포함하면 정책·기획 관련 직위에 채용된 사람의 82%는 공무원 출신인 셈이다. 반면 전산 관련 개방형 직위는 거의 대부분 민간 전문가로 채워졌다. 정보화관리관, 정보화담당관, 정보화기획관 등으로 임용된 14명 중 공무원 출신은 단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출신이었다.

이에 대해 계명대 박세정 교수(행정학과)는 “노른자위는 민간에 내놓지 않고 한직만 내놓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큰 규모의 예산을 다루며 승진 또한 유리한 정책·기획 관련 자리는 선호되고 있는 반면,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데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 승진에도 불리한 전산 관련 직위는 기피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1~3급 고위직 88명 중 공무원 출신은 74명

한편 1~3급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 산하기관의 장(長) 또한 ‘공무원 독식’ 실태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지난 6년 동안 개방형 직위로 임용된 산하기관장 88명 중 공무원 출신이 74명으로 84%를 차지, 승진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산하기관장 자리를 백분 활용하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방형 직위로 지정한 이래 단 한 번도 민간 출신을 임용하지 않은 자리도 많았다. 외교부 문화외교국장, 법제처 사회문화법제국장, 정통부 우정사업본부장, 산자부 자본재산업국장, 해수부 항만국장, 국세청 납세홍보과장 등이 그러한 사례. 이 자리들은 모두 서너 차례씩 개방형 직위로 공모돼 많은 민간인들이 지원했지만 최종 낙찰자는 항상 공무원이었다. 특히 2003년 이후 세 차례 개방형 직위로 공모된 국세청 납세홍보과장의 경우 민간 지원자가 8~11명씩 있었음에도 매번 국세청 소속 공무원이 선발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투명 감시’를 목적으로 정부 부처의 감사관 자리를 외부인으로 충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정부 부처들도 외부인을 영입해 조직 내부를 투명하게 감사하자는 취지에서 감사관 자리를 개방형 직위로 지정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감사관을 개방형 직위로 지정한 곳은 산자부, 국세청, 외교부, 행자부, 환경부 등 6개 부처.

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하지만 여전히 감사관은 100% ‘공무원 몫’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이후 개방형 직위로 임용된 16명의 감사관은 전원 공무원 출신이었다. 이 중 15명은 자기 부처 소속 공무원이며, 유일한 타 부처 출신은 외교부 이재붕 감사관(감사원 법무담당관 출신)이다. 많게는 12명까지 민간 지원자가 있었음에도 6년 동안 단 한 명의 ‘민간 출신 감사관’은 탄생하지 못한 셈이다. 국세청은 아예 2002년 8월 이후 감사관을 개방형 직위에서 빼버렸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감사관은 해당 부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민간 지원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임용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민간 출신 감사관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공무원들이 감사관 자리를 민간에 내놓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감사관이 ‘서기관(4급)에서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하는 3.5급짜리 승진 계단’으로 요긴하게 활용되는 현실에서 절대 민간에게 양보할 수 없는 자리라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승진을 앞두고 있는 조직원은 내부 비리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관은 민간 전문가에게 반드시 개방해야 한다”면서 “해당 부처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의 논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감사관으로 적합하다”고 충고했다.

어려운 벽을 뚫고 공직사회 진입에 성공한 민간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공직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직된 조직문화 탓에 의욕을 가지고 일하기 쉽지 않으며, 일반 공무원들의 은근한 ‘견제’와 ‘왕따’ 문화가 여전하다는 것. 재임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계약직 공무원도 상당수다. 서울시에 근무한 적이 있는 K 씨는 “6개월도 채 안 돼서 그만두는 계약직 공무원이 6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 출신으로 중앙정부에 근무하는 P 씨는 “복지부동한 분위기에 질려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민간에서보다 극히 낮은 보수 또한 중도하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4년 9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송무담당관으로 근무한 김성묵 변호사는 최근 재임기간을 6개월 정도 남겨두고 퇴직했다. 그는 “60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연봉을 받고서 정부에서 장기간 일하기는 개인적으로 곤란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방형 공무원제 ‘무늬만 개방형’
많은 계약직 공무원들은 “제대로 일해보려는 의욕을 가지고 공직사회에 진입했지만, 복지부동한 조직문화 때문에 좌절을 많이 겪는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에서는 각 부서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지에 대해 의논하는데, 공직사회에서는 가장 먼저 업무분장표부터 가져온다는 것. 한 홍보담당관은 “언론기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신이 나는 게 ‘홍보맨’인데, 여기서는 ‘뭐 대단한 게 있다고…’ 하면서 귀찮아하는 모습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이진섭 전 국회 공보관은 “국회 기관지에 ‘지정석인 본회의장 자리 배치를 자유롭게 앉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가 ‘왜 언론도 지적하지 않는 것을 공보관이 나서서 문제 삼느냐’는 핀잔을 받은 적 있다”고 전했다.

고시 출신의 순혈 위주 조직에 나타난 ‘외부인’에 대한 은근한 경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정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평가받는 정국환 전 행정자치부 전자정부본부 본부장은 “국장단 회의 때 내가 장관이나 차관에게 보고를 하면 다른 국장들이 관심을 전혀 나타내지 않거나 업무 협조를 잘 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에서 근무한 바 있는 위기숙 위기관리연구소장은 “‘이러저러한 점이 문제다, 개선하자’고 제안하면 해당업무 담당자는 그것을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곤 했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민간 개방 폭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부처별로 직급별 정원의 20%까지 일반계약직 공무원을 자율적으로 채용할 수 있게 됐다. 5급 신규채용 인원의 경우 50%까지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도 있다. ‘민간 확대’는 공직사회의 전문성 강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민간 거부 증후군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공직과 민간의 ‘창조적 융합’은 어렵다.

“감사관·법무관에 민간 전문가 영입해야”

박 교수는 “무엇보다 민간에 개방하는 직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소한 각 부처 내의 감사관, 법무관(법률전문가), 출납관(예산 지출을 관리·감시하는 직위)은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국적기업인 프록터&갬블러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환경부본부장 출신으로 환경부 상하수도국장을 역임한 남궁은 교수(명지대 환경생물공학과)는 “공직사회와 민간 전문가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난 민간 전문가만이 기존 공무원을 잘 이끌 수 있으며, 공직사회 또한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게 평가하는 체계에서 성과 중심의 평가체계로 체질 개선을 해야만 민간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충고다. 위 소장은 “정부조직은 밖에서 쌓은 전문성을 소모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모두 공직과 민간 분야를 유연하고 자유스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약직 공무원의 비애

길어야 5년, 이후엔 갈 곳 없어 … “철밥통이 부러워”


현재 모 정부 부처에서 2년 가까이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계약직 공무원 A 씨(여)는 박사 학위를 소지한 경제전문가. 하지만 그는 “종종 신분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자리에서는 앞으로 길어야 3년까지만 더 근무할 수 있다. 이후에도 정부에서 일하려면 몇 개 안 되는 자리를 놓고 공무원, 민간 전문가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는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여성인 데다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 직장 구하기가 쉬울 것 같진 않다”면서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을까봐, 또 연장한 재임기간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계약직 공무원의 재임기간은 ‘2+3’으로 운영되고 있다. 첫 임용될 때 2년을 계약한 뒤 업무 성과에 따라 3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것. 5년 재임기간을 마치면 다시 계약직 모집공고에 지원서를 내고 다른 지원자들과 동등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계약기간 동안 부서 이동이나 승진 등의 기회는 계약직 공무원에겐 제공되지 않는다.

계약직 공무원이 정년을 보장받는 일반 공무원으로 신분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특별채용’이 그것인데, 결원이 생긴 경우에만 특채가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해 8월 행정자치부 전자정부본부 본부장을 퇴임한 정국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에서 더 일하는 것은 개인적인 커리어 관리에서 손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별채용이 된다 하더라도 타 부처나 타 부서로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직사회 내에서 더 이상의 승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임기간 만료 후 다시 지원할 만한 ‘자리’가 없다는 데 계약직 공무원의 비극이 발생한다. 4급 직위에서 2~5년간 근무했다면 최소 3급 이상에 지원해야 할 텐데, 지원할 수 있는 자리가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현재 각 정부 부처 정책홍보팀에 채용된 민간 출신 홍보 인력은 줄잡아 70여 명. 이들은 모두 4~5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민간에 개방된 3급 이상의 홍보 관련 직위는 국방홍보원장(2급)과 영상홍보원장(2급), 단 두 자리에 불과하다. 모 정부 부처 4급 홍보 직위에 근무하고 있는 B 씨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해도 사다리가 끊겨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라며 답답해했다. 5년 동안 5급으로 근무한 계약직 공무원 C 씨는 “정부에 근무하는 동안 직속 과장이 모두 다섯 번 바뀌었다”며 “남들은 다들 승진하고 부서가 바뀌는데 나만 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강제상 교수(행정학과)는 “민간에 공직을 개방하는 비율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고위직 부족 문제는 일부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평가체계를 만들어 민간 출신 공무원들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행정자치위원회)은 “우수 인력이라면 다른 부처의 유사한 직위에 재응시할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6.03.21 527호 (p36~39)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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