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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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장기이식 뿌리뽑는다해”

중국, 장기관리법 2월 중 발효 앞두고 의견 수렴 … 한국인 연말 무더기 원정 수술 부작용 우려

  • 베이징=김수한/ 통신원 xiuhan@hanmail.net

    입력2006-01-18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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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2005년 12월23일 중국 위생부는 ‘인체 장기이식수술 임상 적용 관리방법(장기관리법)’을 제정, 현재 관련 전문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규정은 이르면 올 2월 중 정식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회색지대, 즉 합법과 불법의 중간에 걸쳐 있던 중국 장기이식 의료행위에 대한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중국 위생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만 중국에서 이뤄진 간 이식 수술은 2700여 건이며, 신장 이식 수술은 6000여 건에 달한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된 것. 중국은 1970년대 이미 장기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최근 중국 장기이식 의료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지난 10년간 수술 건수는 3배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도 관련 임상 결과가 국제의료계에 보고된 바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이 수술에 사용된 장기의 출처를 대외적으로 밝히기 꺼렸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장기 기증자의 대부분은 사형수다. 시사잡지 ‘차이징(財經)’에 따르면 중국 장기이식 수술에 사용되는 장기의 95% 이상이 사형수로부터 적출된 것. 국제사면위원회는 2005년 중국에서 사형 집행된 사람은 전 세계 사형집행 건수의 90%인 3400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사형수 장기 적출은 약자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해 중국 당국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사형수 장기기증과 관련된 중국의 유일한 법 조항은 1984년 발표된 ‘사형수 시신과 장기 이용에 관한 임시조례’. 이 조례는 사형수 본인과 가족의 동의를 장기기증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장기 기증자 95%가 사형수



    중국 관영 인터넷 신문인 ‘런민왕(人民綱)’에 따르면, 2000년 5월 장시(江西)성의 법원이 총살된 사형수의 신장을 빼돌린 뒤 병원에 매각해 사형수의 아버지가 비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2003년 9월에는 간쑤(甘肅)성의 형무소가 사형수의 동의 없이 사형집행 후 장기를 적출한 사실이 적발돼 유족에게 2000위안(약 26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한 적도 있다.

    또한 사형수 장기의 허술한 관리는 부적합 장기이식 병원의 난립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장기이식 수술은 고도의 의료기술과 장비를 필요로 한다. 또 효율적이고 투명한 장기 수급을 위해 관련 의료기구를 집중 관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의료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간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100여 곳에 불과하다. 홍콩은 단 한 곳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중국에 간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200여 곳, 신장 이식의 경우 368곳에 달한다. 장기이식을 위한 의료진과 설비를 갖추지 못한 지방 군소병원도 지방법원을 통해 속칭 ‘재료’, 즉 사형수 장기를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병원 수익을 늘리기 위해 너도나도 장기이식을 주 진료항목에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 성공률이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 간 이식 수술의 경우 수술 성공률이 5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이식과 관련한 각종 폐단과 추문 속에서 중국 국무원 위생부 황제푸(黃潔夫) 부부장(차관급)은 2005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회의에 참석, 사형수 장기의 불투명한 거래를 근절해 장기이식 시장을 정비할 것임을 강조했다. 황 부부장은 당시 회의에서 “관련법으로 사형수의 장기 제공에 대한 관리를 규정하겠다”며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중국 장기이식의 회색지대가 하나씩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장기관리법’은 이와 같은 중국 당국의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장기이식 수술을 담당하는 병원은 해당 분야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진과 상응하는 설비 및 시설을 갖춰야 한다. 또 수술에 앞서 의학적, 윤리적 검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윤리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며, 이 위원회는 이식수술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

    장기매매와 관련해서는 원천적으로 불허하는 규정을 만들었고, 기증자가 기증을 약속했다 해도 장기 적출 전 본인의 최종 의사에 따라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장기이식 수술을 진행할 의료기관들은 규정 시행 6개월 내에 평가신청서를 제출해 평가를 받아야 하며, 평가에서 합격되지 않거나 신청서를 내지 않은 병원은 이식수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장기관리법 실행은 우리나라 환자들의 원정 이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장기 기증자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상당수 간암 환자들이 중국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받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립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장기이식이 절실한 국내 중증 환자는 모두 1만5000여명. 하지만 한 해 장기 기증 건수는 그 10%에도 못 미치는 1300여 건에 불과하다.

    그래서 장기이식 대기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국이다. 대한이식학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한국인 환자는 1999년 2명에서 2004년 8월 124명으로 6년 새 62배가 증가했다. 학회는 중국에서 이식수술을 받고 현지 사망하거나 조사에 응하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원정 이식수술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외국인 장기이식 수술은 불법 의료행위다. 그럼에도 중국 병원들은 내국인보다 몇 배 웃돈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에 대한 장기이식 수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한국인들이 중국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간 이식의 경우 4000만원 정도다.

    그동안 중국 원정 수술은 불투명한 현지 수술 절차와 이를 이용한 일부 악덕 브로커의 횡포로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특히 수술 후유증 등 각종 부작용에 환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도 했다.

    장기 매매 원천적으로 불허

    한편 향후 엄격해질 관리를 앞두고 많은 원정 이식수술이 지난 연말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기 간암 환자인 김모 씨는 중국에 거주하는 친지를 통해 간 이식 수술로 유명한 베이징의 한 병원에 수술 신청을 했지만 대기자가 밀려 있어 2006년에나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능한 한 빨리 중국에 들어오라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인 2005년 12월23일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김 씨의 보호자는 비록 한국에서 환자의 의료 자료와 샘플을 중국 병원 측에 건넸지만 그것으로 간 이식 같은 대수술의 사전검사가 충분했는지 걱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2006년부터 장기이식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행된 이번 수술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김 씨가 수술받은 병원에는 현재 이식수술을 받은 20여명의 한국 환자들이 입원 중이다. 입원실 주위는 삼삼오오 모여 환자의 회복상태와 이후 중국 장기이식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환자 보호자들과 병 수발을 위해 고용된 중국 조선족 아주머니들로 북적인다.

    중국 장기이식 시장의 제도화라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서둘러 진행되는 의료행위가 혹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가져오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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