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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러다 홧병 걸릴라

국방부에 한미군사훈련 연기 요청했다 거절 … 3월 남북장관회담 차질 우려 ‘속앓이’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통일부, 이러다 홧병 걸릴라

통일부, 이러다 홧병 걸릴라

2005년 12월16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종결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통일부가 3월로 예정돼 있는 한미연합 독수리훈련과 전시증원훈련(RSOI)의 연기를 국방부 측에 요청했다 무참하게 거절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3월은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예정돼 있는 시점이다. 통일부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장관급회담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은 또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실세라는 점에서 국방부가 이종석 장관 내정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도 크다.

통일부는 문서가 아닌 구두(口頭)로 국방부 측에 한미연합 훈련의 연기를 요청했다. 국방부는 과거 같았으면 이를 수용하거나 수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조용히 거절 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부 내 일부 인사가 통일부의 요구를 흘려 언론에 보도되도록 한 다음, 이 보도에 대한 국방부 입장을 발표하는, 아주 ‘공식적인 방법’으로 통일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통일부의 새 장관 모시기?

알다시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1월3일 통일부 장관 내정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통일부가 국방부에 이러한 문의를 한 것은 지난해 연말이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새해 사업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이 두 훈련을 이유로 올해 3월로 예정된 장관급회담을 무산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문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NSC도 남북 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점에서 국방부는 이 차장이 이러한 문의를 하는 데 관여돼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통일부 장관 자리는 노 대통령이 정동영 장관의 사직서를 수리했기 때문에 공석인 상태다. 차관이 장관 업무를 대행하고 있어 형식상으로는 차관이 통일부를 대표한다. 하지만 이 차장이 다음 장관으로 내정돼 있어 통일부는 이 차장의 움직임에 예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이 차장이 통일부 장관에 취임하려면 먼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등원하지 않고 있어 가까운 시일 안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통과가 장관 임명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개최를 요청했음에도 국회가 30일이 지나도록 인사청문회를 열지 못하면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재청을 받아 내정자를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차장이 통일부 장관에 임명될 것은 분명하다. 3월 말로 예정된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는 데뷔 무대와 같은 행사다. 그런데 북한이 한미연합 훈련을 핑계로 회담 무산이나 연기를 통보한다면 ‘최고의 북한통’으로 알려진 이 장관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된다.

통일부, 이러다 홧병 걸릴라

3월 말로 예정된 남북 장관급회담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핑계로 무산시킬 경우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와 합참, 한미연합사는 “두 훈련은 절대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합전시증원훈련은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해 실시하는 연습이다.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되면 미국은 증원군과 장비를 한반도로 보낸다. 이때 사람(군인)은 수송기나 전세 여객기로 몇 시간 만에 한반도로 올 수 있지만, 장비는 배에 실어 보내야 한다. 이렇게 따로 보낸 사람과 장비가 한반도에서 만나야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연합전시증원훈련은 이렇게 별개의 루트로 보낸 사람과 장비를 합쳐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그 다음으로 무장을 갖춘 부대 중 어느 부대를 어느 전선으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한다. 예컨대 한반도 위기가 특수전 부대를 최우선으로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미국은 특수전 장비를 가장 먼저 배에 싣고 이어 특수전 요원을 비행기에 태워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병력과 장비를 신속히 결합시킨 뒤 전선에 투입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식량이 있어야 하고 장비는 실탄이나 유류를 소모해야 하므로, 군수지원 부대가 이러한 것을 보급해줘야 한다. 따라서 특수전 부대와 장비가 한반도로 이동해올 때 이 부대에 대한 보급을 책임진 부대도 함께 옮겨와 작전에 들어가야 한다.

연합전시증원 훈련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므로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진행도 매우 복잡하다. 또 현역만으로는 훈련을 완수할 수가 없어 평소 직장생활을 하는 예비군도 동원된다. 장비 수송을 위해선 해군 함정뿐 아니라 민간 선박도 동원한다. 미국은 민간 선박업자와 연례적인 계약을 통해 선박을 동원하고 있다. 독수리훈련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통일부의 북한 눈치 보기에 국방부 분노?

이러한 훈련을 주관하는 기관은 미국의 태평양사령부다. 그런데 태평양사령부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태국, 필리핀,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여러 나라와 유사한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태평양사령부는 사전에 이러한 훈련 일정을 짜놓고, 순차적으로 동원할 예비군과 선박회사를 결정해놓는다.

따라서 한국과의 훈련을 늦추면 복잡한 계약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다른 나라와의 연합훈련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두 훈련을 연기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이종석 씨를 내정자로 ‘모시게 된’ 통일부는 과감하게 훈련 연기를 문의했던 것이다. 한 국방 관계자의 지적이다.

“만일 국방부가 통일부에 밀려 미군 측에 훈련 연기나 취소를 요청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 측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한미동맹이 와해되는 증거로 받아들일 게 분명하다. 한국이 남북회담을 중시하고 한미동맹을 가볍게 여긴다고 판단한다면 그들은 나름대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카운터펀치를 한 방 먹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북한은 장성급회담 제4차 실무회담을 갖고 제3차 장성급회담 개최 일정을 논의했는데, 북한은 8월 중 실시하는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을 문제 삼으며 회담 개최 날짜를 잡는 데 반대한 바 있다. 통일부가 연합전시증원훈련 등의 연기를 요청한 것은 이러한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통일부는 지레 겁먹고 국방부와의 사전 조율에 나선 것이다.

남북 장관급회담은 이제 분기별로 열리는 것이 안정돼가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말 제주도에서 열린 17차 회담에서는 올 3월 말에 18차 회담을 열기로 하다는 내용이 담긴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장성급회담과 달리 다음번 회담 날짜를 확정한 만큼 이 약속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미리부터 북한의 심기를 살피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 국방부 실무진이 분노할 만도 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통일이 중요하다지만 우리의 생존이 우선이다. 우리의 존재 기반이 탄탄할 때 통일도 의미 있는 것이다. 북한 눈치를 살피며 동맹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는 통일부와 신임 통일부 장관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6.01.24 520호 (p10~11)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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