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수학으로 본 떡값과 뇌물의 차이

  • 미국 MS수학연구소 선임연구원/ jehkim@microsoft.com

    입력2005-09-02 09: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세 아이의 엄마가 최근 한국의 인구 증가율이 낮아진다는 기사를 읽고 넷째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을 가족들에게 얘기해 동의와 협조를 구했다. 모두들 새 식구가 생기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는데 둘째만은 시무룩한 얼굴이다. “영어 배우기도 힘든데 중국어까지 해야 되잖아!” 뜻밖의 반응에 조심스레 엄마가 물었다. “새 동생을 갖는 것과 중국어가 무슨 관계가 있니?”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둘째는 세계 인구에 관한 책을 들고 와서 말했다. “이 책에 보면 요즘 태어나는 아기들 네 명 중 한 명은 중국인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엄마는 한국 아이 셋을 낳았으니까 다음 아이는 보나마나 중국 사람일 거예요.” 수학적인 논리가 약한 아이의 오해이지만 이와 비슷한 착각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오해와 착각을 없애기 위해 수학에서는 각 단어를 정확히 정의하고, 한 단어가 한 가지 이상의 뜻을 갖지 않게 한다. 반대로 같은 경우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확한 단어만으로 표현된 문장도 그 내용이 추상적이 되면 이해하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 ⅹ, ? 등의 수학적 기호를 쓰게 되었다. ‘지금 태어나는 아기 네 명 중 한 명은 중국인’이라는 것은 수학적 기호로 표현하면 ‘y=x/4, 여기서 x는 전 세계에서 어떤 주어진 시간에 태어나는 전체 아이의 수, y는 그중 중국 아기의 수’로 쓸 수 있다. 물론 위의 문장보다 더 길어지긴 했지만, 이 표현은 언제 어디서나 한 가지 뜻만을 갖는다.

    요즘 신문을 보면 촌지, 떡값, 용돈이라는 단어들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촌지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떡값은 음력설이나 추석 때 회사 등에서 직원에게 주는 특별수당’, ‘용돈은 개인이 날마다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으로 그 뜻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이 세 단어는 모두 적은 양의 돈을 정성스레 주고받는 느낌을 준다. ‘자기가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남에게 몰래 주는 정당치 못한 재물’을 국어사전에서는 ‘뇌물’이라고 정확히 정의하고 있다. 뇌물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변명을 위해 쓰는 말들이 촌지, 떡값, 용돈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해주고 동정하기 위해 이 단어들을 쓸 필요는 없다. 이렇게 뜻을 흐리는 단어를 쓴 결과 내가 받은 50만원은 떡값이고, 남이 받은 2000만원은 뇌물이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느 날 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나는 국어 시험에서 한 문제만 커닝을 했는데 내 짝은 다섯 문제를 커닝했으니까 나는 실수이고 짝은 부정행위를 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초기의 대수학(algebra)은 숫자에 적용되는 여러 법칙을 수를 대신하는 문자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2+3=3+2 대신에 x+y=y+x, x=2, y=3이라 쓸 수 있다. 모든 과정에서 수학자들은 혼동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하기와 빼기 기호는 숫자나 문자에서 아무 혼동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곱하기 기호는 문자 x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두 문자를 나란히 쓰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대수학에서 xy는 x와 y의 곱을 의미한다. 혼동을 일으킬 것이 뻔한 기호를 계속 쓸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잘 정리된 수학적 기호를 바탕으로 17세기 말 수학과 과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깨끗한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오해와 착각은 없어야 한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뇌물은 뇌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