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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과학자들 빛의 속도 제어연구 한창 … 광섬유로 빛 감속에는 성공

  • 유지영/ 사이언스라이터 pobye2002@yahoo.co.kr

‘빛’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빛’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마침내 빛이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는가? 과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제어하는 데 속속 성공하면서, 삼라만상의 최고 속도광인 빛의 위세가 누그러지고 있다. 차가운 기체에 갇혀 포획되는 수모를 당하더니, 자전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급기야 광섬유에서조차 제 마음껏 속도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들판을 달리던 야생마가 조련사의 손에 길들여지듯, 빛이 물리학자들에 의해 속도를 조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빛의 속도 제어를 통해 찾아올 새로운 통신혁명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다.

야생마 빛이 전장을 누비는 천리마로 거듭 태어날 것인가. 지금 물리학계는 빛 길들이기 매력에 푹 빠져 있다.

8월22일 물리 분야 최고의 학술지로 꼽히는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plied Physics Letters, APL)’는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소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로잔공대(EPFL) 나노포토닉스 연구실의 세베나즈 박사가 헤라에스, 송광용 등의 연구진과 함께 ‘자극된 브릴루앙 산란법(Stimulated Brillouin Scattering, SBS)’을 이용해 광섬유에서 빛의 속도를 3팩터만큼 늦추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를 빼고 담백하게 다시 설명하자면 ‘값비싼 장비나 초저온 등의 특수 환경 없이, 빛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한국인 과학자 연구에 중추적 구실

지금까지 빛의 속도를 늦추는 실험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절대온도 수준의 초저온이나 값비싼 결정(結晶)을 사용해서 거둔 성과였다. 때문에 보통의 광섬유에서 빛의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한 로잔공대 연구팀의 낭보는 물리학계와 정보통신 분야의 새로운 혁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 연구 성과에 한국인 과학자가 중추적 구실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대체 왜 과학자들은 심순애가 이수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먹이듯, 빛을 잡고 늘어지는 것일까?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삼라만상 중 가장 빠른 존재인 빛을 통신에 활용해보고자 하는 속셈이 숨어 있는 것이다.

현재 기술로 측정한 빛의 속도는 299,792,458m/s. 1초에 약 3억m를 움직이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속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새로운 정보통신 시대의 개막을 꿈꾸고 있다. 빛을 정보 전송에 고스란히 활용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이론에만 머물러 있던 꿈의 영역인 20THz(테라헤르츠, 1THz는 1조 헤르츠)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1초에 무려 600편의 영화(상영시간 2시간)를 전송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빛을 이용한 통신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미 정보를 빛에 실어서 전송하는 광(光)통신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광통신의 속도는 빛의 것이라기엔 너무 느려, ‘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현재 사용하는 광통신은 엄밀히 말하면 반(半)광통신이다. 빛의 속도가 너무 빨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명색이 광통신임에도 그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즉 진정한 광통신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를 늦추는 데 매달려왔다.

보석으로 만든 브레이크 ‘값비싼 게 단점’

빛은 진공상태에서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만, 대기나 물을 통과할 때는 속도가 약간 달라진다. 즉 매질에 따라서 속도가 늦추어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속성을 이용해서 특수한 결정(루비·다이아몬드 등)에 빛을 통과시키거나, 기체를 초저온으로 냉각시킨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상태에서 빛의 속도를 늦춰왔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 과학자들은 순간이나마 빛을 제자리에 멈추도록 하는가 하면, 자전거 속도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일컬어 과학자들은 빛이라는 자동차에 ‘브레이크(제동장치)’를 다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브레이크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데 있었다. 빛의 속도를 늦추는 데 사용되는 특수결정들은 모두 값비싼 보석류인 데다 절대온도 0℃ 수준의 초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니 그야말로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기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상온에서 빛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저렴한 방법의 개발은 새로운 광통신 시대 개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됐다.

이번에 로잔공대 연구팀이 거둔 성과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빛 신호의 속도를 늦췄을 뿐 아니라, 실용화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팀의 수장인 세베나즈의 설명대로 빙산의 일각에 접근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빛과의 속도 싸움에서 인간이 부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과학자들의 끈질긴 구애에 감동한 빛이 잠시 시간을 내어준 것일 수도 있겠다.

브레이크를 단 빛이 얼마나 그 멋진 매력을 뽐낼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5.09.06 501호 (p80~81)

유지영/ 사이언스라이터 pobye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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