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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추사 김정희

절대 고독 달래주던 마음의 벗

절대 고독 달래주던 마음의 벗

절대 고독 달래주던 마음의 벗
추사 김정희 고택을 가는 도중에 동행한 후배가 묻는다. 산중에서 혼자 사는 것이 외롭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그네는 외로움이 힘이라 말한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기에 불편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어떤 날에는 혼자 마시는데도 찻잔을 두 개 놓는다. 또 하나의 잔은 문득 그리운 사람의 몫이다. 빈 찻잔이 앞에 놓여 있기에 그가 없어도 찻자리는 넉넉해진다.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이다.

추사에게 차 한 잔도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사의 삶은 적거(謫居·귀양살이)가 많았다. 추사가 남긴 편지를 보면 유배생활의 고독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된다. 그러한 절대 고독을 달래주었던 유일한 벗이 맑은 차 한 잔이었을 것이다.

김정희는 병조판서 노경(魯敬)의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인 노영(魯永)의 양자가 된다.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 암행어사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선다. 그러나 아버지 노경이 윤상도의 옥사를 배후 조종한 혐의를 받아 추사는 고금도로 유배됐다 순조의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로 복귀한다. 이후 병조참판,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다 헌종 6년(1840)에 윤상도의 옥사 사건이 재론돼 1840년부터 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한다.

귀양살이 친구 역할 … 茶門 등 호도 차와 연관

제주도로 가던 길에 추사는 초의가 머물고 있는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초의와 진정한 다우(茶友)가 되었고, 이후 초의는 자신이 직접 덖은 차를 품에 지니고 세 번이나 제주도에 간다.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소박한 암자 같은 서옥(書屋)과 추사 자신을 의인화한 듯한 송백(松柏)의 ‘세한도(歲寒圖)’는 제주도 유배시절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던 역관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주었던 문인화(文人畵)인데, 참된 예술이 어떤 조건에서 탄생되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추사는 헌종 말년에 귀양에서 풀려나지만 1851년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의 사건에 연루되어 안동 김씨의 견제를 받아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돌아와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한다.

추사는 북청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초의에게 편지를 쓴다. 밖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는지 ‘큰 눈이 내리고, 마침 차를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고, 또 편지 말미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중품을 자랑하며 아이처럼 초의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송나라 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먹을 한 개 얻었습니다.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24세 때 동지부사인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갔다가 청의 거유(巨儒)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고증학에 눈을 떴으며, 국내로 돌아와 조선 금석학파의 태두가 된 추사. 운수납자처럼 모든 집착을 버렸으면서도 오직 차에 대한 욕심만은 어쩌지 못했던 추사.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같은 차와 연관된 그의 호를 보면 그가 얼마나 차를 사랑했는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오늘은 추사를 다인으로서 만나고 싶은 소망 때문일까. 추사 고택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그의 묘소로 가 맑은 차 한 잔을 올리고 싶다. 여름날이므로 해가 길 터이지만 서녘의 붉은 해를 보자 갑자기 나그네 마음은 조급해진다. 추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택이 잠시 후면 문이 잠길 것이기 때문이다.

☞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당진 인터체인지를 나와 32번 국도를 따라 예산 방향으로 가다, 합덕읍을 지난 뒤 신례원 가기 3km 전 사거리에서 ‘추사 고택’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추사 고택에 이른다.



주간동아 2005.09.06 501호 (p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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