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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충북 영동 변기원 한의사

‘어의 仁術’ 그 정성 5대째 흐른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어의 仁術’ 그 정성 5대째 흐른다

‘어의 仁術’ 그 정성 5대째 흐른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비봉산 자락. 금강 상류가 내려다보이는 1만5000여평의 너른 대지에 한약재로 쓰이는 약초 1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발에 밟히는 식물이 모두 귀한 한방 약재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그곳에 ‘제월당(齊月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초가 한 채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굴뚝이 인상적인 이 초가집은 1905년 고종 황제의 주치의이자 조선의 마지막 어의(御醫·정삼품)였던 죽천 변석홍 선생이 처음 한의원을 연 이래, 100여년간 조선 한의학의 맥을 이어왔던 ‘변한의원’이 있던 자리다. 죽천 선생의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가운데 증손자만이 10년간 한약을 짓다 공무원으로 ‘외도’했을 뿐, 모두가 한의사로서 이곳을 꿋꿋이 지켰다.

이곳은 죽천 선생이 고종의 명을 받아 전국의 환자를 치료하러 돌아다니다 비봉산의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잠시 머물던 곳인데, 일본의 조선 점령이 가시화되자 “왜놈에게 녹봉을 받아먹을 수 없다”며 낙향해 정착했다.

고조부가 고종 주치의 죽천 변석홍 선생 … ‘왜놈’ 녹봉 거부 낙향

죽천 선생이 비봉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 100년, 지금은 선생의 5대손인 고손자 변기원 박사(한의학)가 한의원을 지키고 있다. 변한의원으로 쓰였던 제월당 바로 옆의 아담한 양옥집이 변 박사가 진료를 하는 ‘변기원 한의원’(www.okbyun.co.kr)이다. 한의원 이름만 바뀌었을 뿐, 100년의 전통과 비방은 변 박사와 그의 한의원에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다. 충북 영동, 옥천 지역에서 변기원 한의원을 모르면 외지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변기원 한의원에는 고조부 죽천 선생과 선조의 향취가 묻어 있는 물건들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남아 있다. 약장, 날이 무뎌진 작두 등 약재를 조제할 때 썼던 물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천 선생이 보던 다 해어진 동의보감까지 그대로 있어 쓰이고 있다. 약재 손질법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항부자의 경우 열두 살이 넘지 않은 남자 아이의 소변에 쟁이는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300가지에 이르는 약재 손질법이 모두 예부터 전해온 전통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유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절대 환자들과 병을 속이지 말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 변 박사가 중요 약재를 1만5000평의 대지에서 직접 재배해 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5대가 한의학에 종사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약재를 자신이 직접 재배해 쓰는 것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어의 仁術’ 그 정성 5대째 흐른다

변기원 박사의 고조부인 변석홍 선생(위 왼쪽)이 처음 자리 잡은 제월당과 그의 이름을 딴 경옥고(아래).

변 박사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조부인 변상훈 선생(1989년 작고)이다. 변 박사는 원광대 한의대를 다닐 때 이미 조부에게서 진맥, 약초의 감별볍, 수치법(약을 볶는 일) 등을 배워 학교 공부의 한계를 보완했다. 변상훈 선생 또한 이름난 명의였다. 영동 산골의 한의원에 전국에서 환자가 몰렸던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곳에서 약초 재배와 약재 손질을 돕고 있는 김종순(72) 할머니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어서 변한의원을 ‘송장 한의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말기 암 환자가 변상훈 선생의 침과 약재를 맞고, 먹은 뒤 완쾌돼서 나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고 전했다. 변 박사를 돕고 있는 김 할머니도 코에 난 종양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가 암을 치료하곤 눌러앉은 경우. 김 할머니는 “간이 좋지 않던 박정희 대통령이 변상훈 선생의 명성을 듣고 약을 지어먹은 뒤 병세가 호전되었다”며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가족을 비롯, 재벌가 사람들이 변상훈 선생을 찾아 약재를 지어갔다”고 귀띔했다.

‘어의 仁術’ 그 정성 5대째 흐른다
국내 침구학 연구에 크게 공헌한 변상훈 선생은 손자에게 약재에 대한 엄격함을 함께 가르쳤다. 변한의원의 약값이 유달리 비쌌던 이유도 그 때문.

“황달에 쓰이는 약재 시호는 야생을 써야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는데 수입산이나 농가에서 키운 싸구려 약을 쓰면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재배하는 약초에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즉 약값이 비싸지더라도 제대로 된 약재만을 쓰겠다는 고집이 이 집안의 내력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약값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인술 또한 대물림을 했다. 조부가 약값이 없는 사람은 무료로 치료를 해줬듯, 변 박사도 면사무소를 통해 약값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있는 것.

5대째 제월당을 지키고 있는 변 박사는 지금 100여년을 이어온 변씨 가문의 각종 비방과 경험을 임상의학 차원에서 집성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3년 전부터 생산, 판매를 시작한 ‘변석홍 옥고’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황제의 보약’으로 알려진 경옥고는 만성피로, 중풍 후유증, 기억력 감퇴, 신성 고혈압의 치료와 전신의 열(熱)을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제조과정이나 들어가는 약재에 따라 효능이 백인백색이라는 점. 변 박사는 “옛 방식 그대로 최고 품질의 생지황, 백복령, 홍삼, 꿀을 백자 속에서 72시간 동안 중탕해서 경옥고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예전 초가 가마솥에 머슴이 밤새도록 물을 맞추고 불을 땐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자신했다.

제월당 인근의 변석홍 옥고 생산공장은 공장이라기보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깝다. 공장 입구는 죽천 선생부터 변상훈 선생을 거치며 5대째 내려온 약장, 약 짜는 틀, 약재용 작두, 약 빻는 절구 등 한의학과 관련된 각종 도구들이 전시돼 있어 한의학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변 박사는 “이곳을 찾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한의학의 전통을 좀더 알게 하고 싶어 만들었다”고 말했다.

변 박사가 두통과 현기증, 어지럼증 등 현대사회의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 치료로 명성이 자자한 것도 고조부가 만든 경옥고를 다시 만드는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변 박사는 전통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한의학적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모든 치료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쭛쭛약을 썼더니 낳더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치료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꿩 대신 닭을 잡지 말라.’

변 박사는 조부인 변상훈 선생의 가르침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지금도 좋은 약재를 생산하고 5대째 이어오고 있는 한의학 전통을 과학적으로 집대성하는 데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82~83)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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