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2

2005.04.26

거울아 연구 성공하겠니?

광통신 입자물리 등 곳곳서 맹활약 ‘거울의 힘’ … 1m당 7000만원 호가하는 귀하신 몸도

  • 유지영 기자/ 과학신문 pobye2002@yahoo.co.kr

    입력2005-04-20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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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아 연구 성공하겠니?

    평범해 보이는 거울이 현대 과학의 성능을 뒷받침하는 핵심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광섬유를 통해 도착한 빛이 마이크로 거울에 방사되는 모습(가운데 물체는 바늘귀).포항가속기연구소가 보유한 포항방사광가속기(Pohang Light Source) 시설 전경(위 부터).

    ”거울아, 거울아~. 이 연구가 성공하겠니, 실패하겠니?”

    동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는 ‘미래를 점치고 천 리 밖을 내다본다’는 요술거울에게 자신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는데, 현대 과학자들 역시 그런 식의 질문을 요술거울에게 던지곤 한다. 물론 연구 성패를 거울에게 묻는 과학자들의 심정이야 계모의 그것보다 절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성과 논리를 으뜸으로 삼는 과학자들이 마법의 거울에게 연구 성패를 묻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거울에 백설공주 계모가 가졌던 마법거울의 효력이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데.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거울의 ‘성능’에 연구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거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아니, 막중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거울은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우주망원경이나 레이저, 광통신, 입자가속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백설공주 계모가 애지중지했던 마법의 거울처럼 그야말로 물질의 신비를 밝히고,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다.

    거울이 가장 드라마틱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광통신이다. 광통신에서 거울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은 구실을 한다. 만약 서울에 사는 김씨와 이씨, 그리고 박씨가 거의 동시에 대전, 광주, 부산으로 각각 정보를 보냈다고 하자. 이들이 보낸 정보는 하나의 광통신망에 실려 서울을 출발한다. 열심히 달려 대전에 도착한 세 사람의 정보는 이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갈라져야 한다.



    빛과 거울이 광통신의 전부

    이때 바로 거울이 등장한다. 김씨의 정보를 감지한 시스템이 마이크로 크기의 거울을 움직여 그의 정보를 대전 정보처리소로 반사시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다른 거울이 이씨와 박씨의 정보를 반사시켜 각각 광주와 부산으로 향하게 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설명이지만, 광통신은 대체로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조절된다. 즉 빛과 거울이 광통신의 전부인 셈이다.

    앞으로 모든 정보처리는 빛에 의해 이루어질 전망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더욱 발전된 광정보 처리를 위해서는 빛의 손실을 최소로 줄이고, 굴절률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소재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정보를 실은 빛이 광통신망을 달리고 여러 번의 반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신호가 약해지기 때문에 현재 광통신망 곳곳에는 광신호를 증폭하고 잡음을 걸러내는 필터와 증폭기가 설치되어 있다. 문제는 광신호를 증폭하는 과정이 많을수록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경제적 부담도 커진다는 것이다.

    즉 광정보의 손실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광통신 효율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엔지니어들이 더욱 완벽한 거울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무기물을 이용한 거울의 개발은 물론, 고분자를 이용한 광통신용 거울 소재의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꽃이라 불리는 입자물리학에서도 거울의 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자를 가속해 얻은 X선으로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포항광가속기가 대표적인 예다.

    포항광가속기는 전자를 거대한 자석 트랙에서 빠르게 돌게 하는 가속 시스템과 가속된 전자를 이용해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다양한 분석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 가속장치와 분석장치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는데 이를 유도관이라고 한다. 바로 이 유도관이 고성능 거울로 이뤄져 있다. 가속기에서 뛰쳐나온 X선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려 하는데, 이를 한데 모아서 원하는 장소까지 옮기는 것이 유도관의 기능인 셈이다. X선은 유도관 내부에 부착된 고성능 거울에 계속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거울의 착실한 안내를 받은 X선들이 분석기기로 모여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거울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게 아님을 알게 됐을 것이다. 한껏 고조된 X선을 반사시킬 정도의 능력을 갖추려면, 보통의 거울로는 어림도 없다. 때문에 유도관에 쓰이는 거울은 초정밀 기술이 동원되며, 값도 상상을 초월한다.

    다이아몬드보다 비싸고 마법보다 더 신통력 있는 도구

    포항광가속기에 쓰이는 유도관용 거울은 1m에 4000만원에서 최대 7000만원까지 한다. 유도관은 광가속기 외에도 대부분의 입자이용 시설에 사용되는데,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구축하고 있는 냉(冷)중성자(액체수소를 이용해 온도를 낮췄기 때문에 차가운 중성자, 즉 냉중성자라 한다) 연구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원자력연구소는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 만들어낸 냉중성자를 분석기기까지 끌어내기 위해 약 200m의 유도관을 건설할 계획인데, 이를 외국업체에 턴키 베이스 방식(turn-key base system·열쇠를 돌리면 설비가 가동되는 상태로 인도하는 플랜트 수출의 계약 형태)으로 위탁 생산하는 경우 20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처럼 유도관에 사용되는 거울이 비싼 이유는 초고정밀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냉중성자를 반사시키기 위해서는 니켈과 티타늄으로 코팅된 특수거울을 사용해야 하는데, 1m의 대형 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두께로 코팅하는 것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

    중성자는 투과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보통의 코팅 기술로는 거울의 반사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식이 니켈과 티타늄을 시루떡 쌓듯 번갈아 층층이 코팅하는 기술이다. 한 번의 코팅 두께를 0.1나노미터 정도로 제어해가면서 점차 두께를 늘리는 방식으로 200층까지 코팅해야 한다. 거울의 성능을 좀더 높이려면 무려 1000층까지 코팅해야 한다. 게다가 이 유리를 접합해 진공관을 만들 때 허용되는 오차율은 1마이크로미터에 그친다. 시쳇말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1m의 거울을 코팅하기 위해서는 무려 일주일이 걸린다. 전문 제작업체가 1년을 꼬박 매달려야 100m의 유도관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울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이런 특수거울을 찾는 까닭은 이 거울이 아니면 연구가 진척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국내에는 아직 이런 거울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거울은 백설공주의 마법거울보다 더 신통력 있는 도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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