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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 망신’당할 자 진정 누구냐

실체 없는 사조직 ‘나눔회’ 핑계로 육군 인사 개입 시도한 세력 있는 듯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패가 망신’당할 자 진정 누구냐

‘패가 망신’당할 자 진정 누구냐

육군 진급비리 관련 재판을 위해 군사법정에 출두하는 피고인들.

지난해 육군 진급비리 수사를 한 국방부 검찰단(군검찰)이 비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이는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었다. 그러나 남 총장은 4월7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명예롭게’ 전역한 반면, 군검찰이 남 총장의 하수인으로 보았던 ‘부하’들은 고통스런 재판을 받고 있다. 몸통은 놓치고 깃털만 잡았다? 군검찰은 왜 이렇게 희한한 구도를 만들어냈을까.

군검찰의 진급비리 수사는 2004년 11월16일 육본 인사참모부 인사관리처 진급계장인 차모 중령을 소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군검찰관이 차 중령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은 질문은 “이번 인사가 남 총장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 위주로 펼쳐진 것 아니냐”는 것. 차 중령의 전임자인 류모 중령과 차 중령의 상관인 이모 준장(인사관리처장)이 조사받을 때도 같은 요지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군검찰은 공소장에 사조직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뚜렷한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공판장에서 피고인 신문을 하던 중 사조직 문제를 거론했고, 남 총장이 전역한 후엔 그를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군검찰이 아직도 집착하는 사조직의 이름은 ‘나눔회’.

97년 한 신문에 ‘나눔회’ 명부 첫 공개

남재준 전 총장과 김종환 전 합참의장은 육사 동기다(25기). 육군에서 준장 진급자가 확정된 뒤 김 의장은 윤광웅 국방부 장관 사무실 앞에서 남 총장을 만나 마구 화를 냈다. 이유는 합참 소속 대령의 준장 진급 수가 예년보다 현저히 적었기 때문. 소식통에 따르면 김 의장은 다른 자리에서 남 총장과 윤일영 육본 인사참모부장 등 다섯 명을 거명하며, ‘이번 인사를 망친 오적이다’고까지 비난했다고 한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사조직이다. 나눔회 명부는 지금까지 일곱 가지가 떠돌고 있는데, 김 의장과 남 총장은 여러 개의 ‘나눔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후배 사조직원을 진급시키기 위해 공모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사가 발표된 뒤 두 사람은 강하게 충돌했다. 그것도 많은 부하가 지켜보는 장관실 앞에서….

4월7일 노무현 대통령이 합참의장에 임명한 이상희 대장과 육군 총장에 임명한 김장수 대장도 나눔회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국정원과 기무사 등으로부터 각종 정보 보고를 받는 노 대통령이 왜 사조직원을 군 서열 1, 2위 자리에 임명했을까. 답은 모든 정보기관이 나눔회 명부를 허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눔회 명부는 1997년 한 신문에 보도됐던 것으로, 알 만한 사람과 기관은 다 아는 이야기다.

모든 정보기관은 나눔회 명부를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4년 전 대령으로 전역한 전 하나회원 쫛씨를 지목한다. 하나회는 엘리트 위주로 편성된 사조직이었는데, 93년 백승도 대령이 그 명단을 폭로한 뒤 된서리를 맞았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영관급 하나회원들은 스타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쫛씨 동기 하나회원 중에는 단 2명이 구제 경우로 겨우 준장까지 진급했을 뿐이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하나회 척결 후 쫛씨가 잘나가는 사람의 명부를 만들어 돌렸는데 이것이 나눔회 명부로 귀착됐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사람이 여기에 새로이 잘나가는 사람을 추가함으로써 나눔회 명부는 7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기자는 쫛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최초로 나눔회 명부를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쫛씨가 “이 전화가 안전하느냐(도청이 되지 않겠느냐는 뜻)”고 물어, 기자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고 하자 그는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우리가 술자리에서 많은 불만을 토로한 것은 맞다. 그리고 지금 떠도는 나눔회 명부를 사실로 믿으면 크게 실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기자는 진급비리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 기무사가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문서를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기무사에서 누가 7차례 작성된 나눔회 명부를 입수했는지가 나와 있었고, 명부에 거론된 사람들이 사조직을 운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감청까지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 문서가 내린 결론은 ‘나눔회는 실체가 없다’였다. 그러니 노 대통령도 마음 놓고 이상희 대장과 김장수 대장을 합참의장과 참모총장에 임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26일 민주당 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서 “인사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후 ‘패가망신’은 노 정권의 특성을 보여주는 키워드로 회자됐다. 노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 뒤 남재준 대장이 육군 총장에 임명되었다. 남 총장은 ‘인사 청탁=패가망신’이라는 대통령 말을 강하게 의식해야 하는 시점에서 육군의 인사권자가 된 것이다.

그때까지 총장을 대신해 외면하기 힘든 인사 청탁을 처리해주는 자리가 인사참모부장(이하 부장)이었다. 부장은 전후방과 경향각지의 실력자들에게서 진급시켜줘야 할 명단을 받는데, 이렇게 접수한 명단은 항상 진급자 TO를 넘었다. 때문에 부장은 다시 이들을 만나 ‘꼭 진급시켜야 할 사람만 추려달라’고 부탁하는데, 수십년간 이 일이 반복되다 보니 각 실력자들이 진급시켜줄 수 있는 수가 거의 고정화되었다.

명목상 육군에서는 추천위와 선발위가 진급자를 확정한다. 부장은 추천위와 선발위 지원을 담당하는데, 이때 추천위와 선발위의 간사를 통해 진급시켜야 할 명단을 전달한다. 이 명단은 내로라하는 실력자들 간 합의로 짜여진 것이므로 자신들의 진급도 생각해야 하는 추천위와 선발위 위원들로서는 절대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육군에서는 “추천위와 심사위는 거수기”라는 소리가 떠돌았다.

남 총장의 ‘인사 청탁 거부’ 의지를 120% 실현한 사람이 윤일영 인사참모부장이었다. 평소에도 ‘냉랭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깐깐한 그는 실력자들과 인사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건방지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2003년 준장 진급 심사가 다가오자 평소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ㅂ대령이 윤 부장을 찾아가 선처를 바란다고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그러자 윤 부장은 육군 내부 통신망에 ㅂ대령이 자신을 찾아와 인사청탁을 했다고 밝혀버렸다. ㅂ대령에게는 치명타를 먹이면서, 전군에는 인사청탁을 하지 말라는 읍참마속(泣斬馬謖) 작전을 펼친 것. 그 바람에 진급 대상자는 물론이고 실력자들도 망신이 두려워 남 총장과 윤 부장에게 이렇다 할 부탁을 하지 못했다.

남 총장은 2004년 진급심사에서도 전해와 같이 추천위와 선발위에게 진급 심사를 일임해버렸다. 총장이 청탁을 차단해주니 위원들은 지역 안배 등 정치적 요인을 거의 고려치 않고 점수 위주로 진급자를 선발했다.

그 결과 진급 예정자 중에서 전북과 전남 출신이 각각 2, 3명인 데 반해 경북과 경남은 각각 11, 6명이 되었다. 남 총장은 충청도 출신으로 서울 배재고를 나왔다. 그러나 진급에서 손해본 세력들 사이에서는 “남 총장이 또다시 자기 사람만 진급시켰다” “남 총장이 자기 조직을 갖고 있다”는 비난이 강하게 터져나왔다. 정보기관은 이러한 불만을 수집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군검찰은 병무비리 수사를 펼쳐 국민들에게서 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이때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 면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다가 대권 장악에 실패해, 국방부에서는 “군검찰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리고 2004년 5월 군검찰은 대통령 민정수석실에서 넘겨준 자료를 토대로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독직 혐의로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연타석 홈런’을 친 셈이다.

이러한 군검찰이 사조직을 찾아내 남 총장을 구속한다면 군검찰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때마침 제7판 나눔회 명부도 나돌고 있어 군검찰은 강하게 수사를 펼쳤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군검찰과 대통령 민정수석실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남 총장의 인사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진급 탈락자들이 무책임하게 거론한 ‘남 총장 사조직’론에 놀아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더 큰 의혹이 숨어 있다. 대통령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윤광웅 장관과 김승열 차관보를 동원해 육군이 확정한 진급예정자 명부를 교체하려고 한 점이다. 이러한 행동은 노 대통령이 말한 ‘패가망신을 당해야 하는’ 사유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 임의로 육군 인사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자 재빨리 권부의 그늘로 숨어버렸다. 그로 인해 전면에 나서서 수사를 펼쳤던 군검찰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군검찰이 몸통(남 총장)은 놓치고 진급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한 깃털(부하)만 잡아 법정에 세우는 생뚱맞은 구도를 만든 것은 이 때문.

군검찰은 과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주간동아는 국방부 공보과를 통해 군검찰 측과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국방부 법무관실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담당 검사와의 접촉을 허가할 수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주간동아 2005.04.26 482호 (p44~45)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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