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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에 시스템 인사가 휘둘렸다”

오강현 前 가스공사 사장 “굴복보다 당당한 해임, 반드시 명예회복”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찌라시에 시스템 인사가 휘둘렸다”

“찌라시에 시스템 인사가 휘둘렸다”

3월31일 한국가스공사 주주총회에서 우리사주 조합원 등이 “오 사장 해임은 대주주인 산업자원부의 횡포”라며 항의하고 있다.

오강현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사장이 결국 해임됐다. 가스공사는 3월31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오 사장 해임안을 75.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정부가 임명한 공기업 사장이 비상임 이사회 의결을 통해 임기를 남겨두고 해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산하 공기업 사장이, 정부가 옷을 벗기려 하자 거세게 반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해임’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관료 출신으로 ‘알 것 다 아는’ 그가 자진 사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강현 사태’는 공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자율성과 노무현 정부의 인사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 전 사장은 ‘항명’이라는 세간의 수군거림에 대해 침묵해왔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 지방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심스럽게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찌라시(사설정보지 등을 일컫는 은어)에 정부 인사 시스템이 휘둘렸다”며 “법적인 절차를 통해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가스공사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해임됐다.

“내가 평일에 골프 친 건 사실 아니냐. 대주주가 물러나라고 했으니 물러나는 게 맞다. 업무적으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그게 가장 아쉽다. 골프는 관례였다. 고객사를 대상으로 전부터 해오던 행사다.”



평일에 골프를 친 것은 가스공사 이사회가 내건 해임 이유 중 하나다. 이사회는 △오 전 사장이 지난해 11월 비상근무령이 발동됐을 때 골프를 쳤으며 △노조의 정부 반대 집회를 용인했고 △정부 방침과 달리 5조 3교대 근무를 용인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해임 사유로는 궁색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해임에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나.

“내가 부덕한 소치다. 그러나 납득할 수 있는 해임 사유는 전혀 없었다. 퇴직금, 성과금도 못 받고 옷을 벗었다. 게다가 물러나게 하는 방식이 정정당당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산자부 쪽으로는 할 말이 없다. 일이 더 이상 확대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비상임 이사와 가스공사를 상대로 소송할 것이다. 재판에서 반드시 이겨 회사법 연구자들과 공기업에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위’에 소명할 기회는 없었나.

“퇴로를 열어주고 명예롭게 물러나게 했다면 내 발로 걸어나왔을 것이다. 정부에서 이런저런 사유가 있으니 물러나 달라고 했으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을 것이다. 음해나 오해를 근거로 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을 이런 식으로 몰아내는 건 잘못됐다.”

그는 이 대목에서 가스공사 사장 재직 시절 경영 실적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경영에 대해 욕심이 매우 컸고 가시적인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도덕성을 비롯한 오 전 사장에 대한 가스공사 내부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다.

-정부 쪽에서 여러 경로로 가스공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달라고 ‘사인’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개별적으로는 얘기가 있었다. 비리 인사로 노출된 다음이다. 내가 차관급까지 한 사람이다(그는 특허청장을 지냈다). 산자부 후배들의 눈도 있다. 퇴로가 있었더라면 고맙게 물러났을 것이다. 그런데 온갖 ‘찌라시’에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상황이 돌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물러나면 비리가 있어 옷을 벗는다는 누명을 피할 수 없었다.”

-인사 시스템이 소문, 음해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해임을 밀어붙인 쪽에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정부에서 공기업 사장을 내보낼 수 있다. 맘에 안 들어도 옷을 벗길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유가 있어야 한다. 소문이나 음해, 찌라시를 근거로 공모를 통해 임명된 사장을 몰아내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예전에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누구 안 된다’고 결론 내리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상황과 시스템이 묘하게 돌아갔을 뿐이다.”



-밀어내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대충 알고 있다. 1월부터 투서가 몰아치고 찌라시에 내 이름이 오르내렸다. 조직적이고 집중적이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사장이 되면 어떻게 할 건가.

“….”

-강원랜드 사장 재직 시 일부 비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퍼졌다.

“근거 없는 얘기다. 강원랜드 사장으로 갈 때는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산자부 과장 출신이 간 곳이라 격에 안 맞는다는 거였다. 아내도 도박회사 사장은 좀 그렇지 않느냐고 만류했다. 강원랜드 사장으로 가면서 고향에서 정치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 가졌다. 그런데 비리니 뭐니 해서 엉망이 됐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왔는데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주역 중 한 명인 L 전 의원의 도움을 받아 가스공사 사장직에 올랐다는 시선도 있다.

“그렇지 않다. L 전 의원과 친한 건 맞다. 걱정됐는지 얼마 전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강원랜드의 경우엔 전임 사장이 구속되면서 갑자기 주총이 열렸다. 산자부 출신에다가 고향이 강원도라는 점에서 청와대 민정 쪽에서 나를 낙점했다. 고향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가스공사의 경우엔 정치인 출신의 사장을 안 뽑는다고 단언했다. 산자부 출신으로선 기회였다. 공모에 뛰어들었고 결국 사장이 됐다.”

-공기업 사장이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자리’라면 오해가 있더라도 주총 이전에 물러났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엔 정치인들이 사장이 됐다. 나는 실무 행정가이지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런 이유라면 사장 공모 때 나를 아예 뽑지 말았어야 한다. 내가 사장으로 온 게 이상한 거 아니냐. 정치적인 자리니 곱게 물러났어야 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산자부와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선 의견은 엇갈리게 마련이다. 가스산업 구조 개편에서 발전회사 등이 가스공사와 경쟁해 가스를 직접 도입하는 제도는 문제가 많았다. 지킬 걸 못 지키면 옷을 벗겠다고 직원들에게 공언했다. 차라리 그때 물러났어야 했다.”(웃음)

-소송은 이길 거라고 보나.

“당연하다. 공모에서 뽑힌 사장을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데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드시 명예회복하겠다. 그리고 내가 오늘 얘기한 내용을 포함해 더 이상 기사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소송에 나설 것이다.”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32~3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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