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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북 통일기간 행사 ‘벌써 삐걱’

공동선언 5주년 기념 6·15~8·15 개최 예정 … 해외준비위 결성과정서 민단 배제로 ‘잡음’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남북 통일기간 행사 ‘벌써 삐걱’

남북 통일기간 행사 ‘벌써 삐걱’

북측준비위가 일본준비위에 민단을 끼워줄 수 없다는 내용을 적어 남측준비위에 보낸 전문(왼쪽). 2004년 6월15일 인천에서 열린 6·15기념 통일대행진 모습과 국내 마라톤대회 모습. 통일기간 행사는 군사분계선에서 마라톤대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올해는 6·15 공동선언 5주년이자 8·15 광복 60주년을 맞은 해다. 북한식 표현으로는 ‘꺾어지는 해’인 것이다(북한에서는 5주년이나 10주년이 된 해를 꺾어지는 해라고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해가 벌써 3분의 1 가까이 지나갔다. 6·15와 8·15는 코앞에 닥쳐오는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는 올해도 무의미하게 넘길 것인가.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한 4월은 남-북 관계도 물오르는 때였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도 4월에 발표되었고, 2002년 임동원 특보의 방북도 4월에 이루어졌다. 지금의 남-북 당국자 만남은 지난해 7월 이후 중지된 상태. 그러나 북한에서는 조류독감이 맹위를 떨치고 있어, 조류독감 방제를 위한 남-북 당국자 회담이 4월 중에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살아나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제4항에는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조항은 정치·군사적인 문제로 남-북 관계가 열리지 못하면, 사회·문화·체육 등 비(非)정치·군사 분야로 개척해보라는 암시다.

남-북 일각에서는 이 조항에 의거해 ‘의미 있는’ 6·15와 8·15 행사를 준비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꿈은 올해를 남북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것. 즉, 6·15와 8·15 사이의 두 달을 ‘통일기간’으로 선포해 국민들에게 ‘예비적인 통일을 맛보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남북통일이란 결국 군사분계선을 뚫고 자유왕래를 하는 것이다. 현재 문산에서 비무장지대 안쪽의 남방한계선까지는 왕복 6~8차선인 신국도 1호선(경의선)이 뚫려 있고, 그곳에서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지나 개성공단 입구까지는 왕복 4차선의 포장도로가 놓여 있다. 문산에서부터 개성공단 입구까지 거리는 24km 정도. 하프마라톤을 해볼 만한 거리인 것이다.



문산~개성공단 통일마라톤 기획

남북통일기간 준비를 해온 사람들은 첫 번째 행사로 6월15일 문산을 출발해 개성공단까지 달리는 ‘통일마라톤’을 기획해왔다. 공교롭게도 군사분계선 남단에서부터 개성공단 입구까지의 거리는 6·15공동선언을 연상시키는 6.15km 정도. 때문에 마라톤에 자신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평화대행진’도 검토해왔다. 주최 측은 이 행사가 진행되면 컴퓨터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접수자가 폭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독도 영유권과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고 있으나 3년 전에는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한국 처지에서 통일기간 행사는 파트너를 일본에서 북한으로 바꿔 치르는 ‘제2의 월드컵’이다. 개막식은 6월15일 평양에서 치르고, 폐막식은 8월15일 서울에서 펼친다.

그러나 여기에 말 못할 고민이 있다. 한 달간 펼쳐진 한일월드컵에서는 하나하나의 경기가 희비가 엇갈리는 대드라마였다. 그러나 통일기간에 펼쳐질 행사에서는 남-북이 승부를 겨뤄서는 안 된다. 승부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도 없는데, 한일월드컵보다 두 배나 긴 기간 동안 열리면서 철저히 승부를 배제시켜야 하는 이 행사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이러한 한계를 안고 있지만 6·15와 8·15 사이를 통일기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행사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북한은 물론이고 670만 해외 동포도 참여시키기 위해 각각의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먼저 2004년 12월20일 북한이 북측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올해 1월31일에는 한국이 남측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어 해외준비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주요 국가별 준비위원회 결성에 들어갔다. 670만이 넘는 해외 동포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은 재미동포(220만)와 재중동포(210여만), 재일동포(63만, 귀화자 포함하면 90만).

상당수의 재미동포는 한국과 훨씬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재미동포 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은 재미한인총연합회인데 한국 정부도 이 단체의 대표성을 인정해오고 있다. 그런데 해외준비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미국준비위원회를 만들 때 이 연합회는 배제되고 미주동포전국연합 사람들이 중심이 돼 결성되었다.

재중동포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과 한국 국적을 가진 재중 한인, 그리고 북한 국적의 재중동포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를 배경으로 한 조선족. 그런데 중국준비위원회 또한 조선족 대표를 제외시키고 재중 북한인 중심으로 결성됐다.

재일동포 사회는 한국적을 가진 민단계 45만, 조선적을 가진 총련계 18만이 주축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27만 귀화인은 이렇다 할 조직이 없으나, 정서상 민단계에 가깝다. 그런데 일본에는 한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민단과 상극인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옛 한민통) 계열이 있다. 한통련은 스스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재일 한국인 조직”이라고 주장하나 대법원은 이들을 이적단체로 결정한 바 있다.

2월26일 일본에서도 준비위원회가 결성됐는데, ‘이상하게도’ 한통련과 총련이 주축이 돼 위원회를 만들었다. 재미동포와 재중동포의 대부분은 미국 국적과 중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들이다. 그러나 재일동포 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단계는 일본 영주권만 갖고 있는 우리 국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일본준비위가 만들어졌으니 민단계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민단은 “민단과 총련이 일본준비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교묘히 민단을 따돌렸던 총련과 한통련은 ‘민단은 우리가 만든 일본준비위의 산하 단체로 들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3월1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국가 단위로 결성된 각 준비위원회의 대표가 모여 해외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때 해외준비위원회 대표로 결정된 것이 한통련 의장이자 일본준비위 대표인 곽동의 씨였다. 이에 대해 민단은 물론이고 남측준비위도 “해외준비위가 북한 위주로 결성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북측준비위와 해외준비위는 곽동의 씨와 함께 재미동포인 문동환(고 문익환 목사의 동생) 씨를 해외준비위 공동대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제의가 남측준비위원회를 뒤흔들었다. 남측준비위는 보혁(保革)을 불문하고 통일운동에 기여해온 단체들로 구성돼 있어 좌우 대립이 일어난 것. 결국 남측준비위는 문동환 씨가 곽동의 씨와 함께 해외준비위 공동대표를 맞는 것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민단은 더욱 좌절하게 되었다. 민단은 “민단과 총련이 주축이 돼 일본준비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는 5월10일 나고야(名古屋)에서 재미한인총연합 대표 등을 초청해 별도 해외한민족 대표자 대회를 열겠다”고 치고나왔다.

이로써 통일기간 행사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게 되었다. 과연 민단의 요구는 지나친 것일까. 아니면 북 측이 순수해야 하는 행사를 너무 정치적으로 끌어가는 것은 아닐까. “통일기간 행사가 한일월드컵을 여는 것보다 몇 백 배 힘들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30~3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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