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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마력에 푹 빠진 ‘新조선족’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치명적 마력에 푹 빠진 ‘新조선족’

치명적 마력에 푹 빠진 ‘新조선족’

중국은 꿈을 좇는 한국인을 급속도로 흡수하고 있다. 산둥성 칭다오의 해안가 풍경.‘我自豪 我自信 我是中國人(기백과 자신감을 지녔으니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중국 공립학교 벽에 새겨진 중화주의 선전물(작은사진).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5개의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말 그대로 대국(大國)이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56번째 민족이 추가됐다고 한다. 바로 신조선족, 때로는 한국족으로 불리는 30만 재중 한국인이 그 주인공이다. 신조선족이란 표현은 더 이상 실패한 한국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제는 중국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탈바꿈했다. 이민을 불허하는 중국 정책상 이들의 국적은 엄연히 한국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으로의 복귀를 꿈꾸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특수한 환경 때문. 일각에서는 “중국이란 환상에 눈이 멀어 더 이상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일 뿐이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 신조선족들은 “중국의 흡인력이 두렵게 느껴질 뿐이다”고 고백한다. 예전에도 산둥반도에 ‘소백제’ ‘신라방’ ‘고려촌’ 등이 세워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흔적도 없이 중국에 동화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향내에 취해 여기서 살게 되는 거죠. 중국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순수하고 깊은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갈 수 없는 흡인력 두려울 뿐”

공업도시 톈진(天津)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맹순자(42) 사장이 중국에 장기 체류하는 이유다. 맹 사장은 1994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가죽공장에 파견 나오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이래 어느새 11년째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자신과 함께 일하는 조선족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가족 같은 회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제 중국에 대해 모국 같은 느낌을 갖게 됐다고 토로한다.



신조선족이 절망감을 느끼는 때는 ‘중국 대륙에서 성공할 만한 저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털어놓는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다 쓰고 귀국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 결국은 중국 잔류를 택하게 되는 이유조차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중국의 마력(魔力)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못다 이룬 꿈을 혼자라도 성공시켜보겠다는 의욕 같은 게 생겨 주저앉았다.”

베이징에서 조그만 IT(정보기술)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는 류기선(40) 사장은 이를 일종의 ‘오기와 꿈’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이란 나라가 주지 못했던 ‘의욕과 희망’을 느꼈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중국 땅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조선족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들의 의견을 종합한 최소한의 조건은 △실패를 경험한 이들로 중국에 대해 ‘겸손’한 사람 △30대 후반 이상의 중국어 소통 가능자 △가족과 함께 살 것 △자녀가 중국을 선택해도 서운해하지 않을 것 등이다.

신조선족의 최대 고민은 역시 아이 교육 문제다. 자신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자녀만큼은 중국과 한국 문화 양쪽에 완벽한 국제인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때문에 중국 공교육을 마다하지 않고, 서울 강남식 사교육도 포기하지 않는다.

치명적 마력에 푹 빠진 ‘新조선족’

베이징 충무검도관 유민수 관장(왼쪽)과 정병두 부관장. ‘베이징 한인 정보의 메카’를 꿈꾸는 베이징 포커스의 김동석 부장. 북경한국투자기업협의회 유기선 사무국장산둥성 교주(膠州)에서 화학공장을 운영하는 길명진 사장(왼쪽)과 김승남 이사. 조선족과 함께 12년째 개인사업체를 일궈오고 있는 맹순자 사장. (위부터 시계방향)

칭다오에서 5년째 거주하는 정선화(가명·43) 씨는 아이 셋을 모두 중국 공립학교에 보냈지만, 한국식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대학은 아이들이 원하는 쪽으로 보낼 생각인데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 온 아이들은 베이징을 택하고, 그 이후에 온 아이들은 서울을 선호하더군요.”

정씨의 중국어 실력이 수준급이긴 하지만, 사업하는 데 충분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신조선족은 미국 이민 1세대가 영어에 무지했던 것과 달리 상당한 중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 신조선족이 탄생한 배경이 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중국과의 특수 관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툰 중국어 탓으로 40대 이상의 신조선족이 중국에서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면 20, 30대 신세대 젊은이들은 준비된 정보와 숙련된 중국어로 차근차근 미래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충무검도관을 운영하는 유민수(28) 관장은 중국 런민(人民)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군대 제대 후 한국에서 공인된 그의 검도 실력은 6단. 지금 중국 내 모든 일본인 검도사범들을 누르고 ‘중국에서는 최고수’라는 명예를 획득했다. 그는 아시아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 땅에 당도했지만, 이제는 중국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꿈을 하나 더 추가한 셈이 되었다. 그는 이전의 선배들과 달리 돈 한 푼 없이 중국에 건너왔지만 나름의 실력을 바탕으로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젊은 신조선족인 것이다.

베이징 내 유명 한인매체인 ‘포커스’의 김동석(29) 부장 역시 3년 전 학업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와 아예 중국 전문가가 되고자 베이징에 눌러앉은 경우다. 그는 신조선족의 부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평가를 내린다.

준비된 정보와 숙련된 중국어가 정착 이유

“사실 중국은 근대적 한국인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땅이다. 서구로 향한 한국인은 접시부터 닦았고, 동남아시아로 간 한국인은 왕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한국인은 귀족으로 건너왔다가 점차 보통 사람의 길을 걷는 것이다.”

신조선족은 “과거에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결국 그들의 존재까지도 흡수해버렸던 대국이 바로 중국이었음을 우리 모두 한번쯤 되새기자”고 입을 모은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모든 게 가짜거나 또는 불법입니다. 그렇게 인식했다는 것은 ‘나는 중국을 전혀 모르는 초짜’라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편안해집니다. 대신 한국에서의 삶은 무의미해져요. 결국 여기 신조선족의 삶터가 영원히 중국이란 의미입니다.”

과연 한국인들의 도전은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느 정도 성공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치명적 마력에 푹 빠진 ‘新조선족’


■ 사회·정리=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인천에서 뱃길로 15시간, 그러나 비행기로 단 1시간 거리에 있는 한국 최대의 투자처인 칭다오(靑島). 이미 우리에게는 낯선 땅이 아닌 친근한 곳으로 자리잡았다. 인구 300여만명의 칭다오를 중심으로 반경 100km 이내에 진출한 한국인 공장만 무려 6000여개, 상시 거주 한국인만 10만여명, 조선족만도 30만명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거주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인천시 칭다오구’ 또는 ‘경기 칭다오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가 됐다. 선박이나 항공편으로 직접 부산 인천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한국과 차이가 없어 중국 투자를 꿈꾸는 이들의 제1의 시장 조사지이자, 투자 고려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진출도 활발해 중국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첫 번째 상륙도시인 셈이다. 칭다오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온 이들로부터 한국인의 중국 진출에 대한 속내를 들어봤다.

-모두 칭다오에서 잔뼈가 굵으신 것 같다.

(길명진·이하 길) “중국에 온 지 한 100년 된 것 같다.”(웃음)

(박상진·이하 박) “이미 10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 할 일이 없어졌다. 앞으로 우리 삶의 주거지는 계속 중국일 것이다. 한마디로 제2의 고향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살기 좋은 것 같아 서쪽의 LA라는 말이 연상된다.

(일동) “하하. 실상을 접하면 모두들 살기 위해 전전긍긍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들 교육에서부터 경제·문화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힘겹다.”

(박) “요즘 우스갯소리로 중국에서 오래 산 사람을 ‘신조선족’이라 부른다. 중국은 이민제도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이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에서 계속 살아갈 사람을 말한다.”

(전우영· 이하 전) “중국에 정착한 이들 가운데 부유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면 맞다. 그때 잘되던 사업 아이템은 지금하고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부침이 심할 수밖에…. 우리가 어째서 신조선족이라고 자조하는가 하면, 내가 떠나온 한국은 96년도가 마지막인데 우리는 계속 이곳에서 정체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신 문화나 한국의 새로운 정보에서 차단됐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서 멀어졌다.”

-한국인이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소외됐다면, 신조선족이란 표현에 모두 동의하는가.

(오숙자·이하 오) “우리끼리 모였을 때 하는 말이다. 교포라는 표현이 여기서는 ‘조선족’을 지칭하고, 우리는 한국 사람도 조선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인도 아니기 때문에 신조선족이다. 5년차까지는 한국인으로 보고, 5년에서 10년까지는 신조선족, 10년차부터는 중국인으로 봐도 좋지만 나이 먹은 이들은 중국말이 능통하지 않아 영원히 신조선족으로 살아야 한다.”

-한국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갈수록 LA와 비슷해지고 있는데, 칭다오는 중국 진출을 위해 한 번 거쳐가는 관문인가.

(박) “글쎄다. 실제로 주재원을 제외하면 한국 사람이나 한국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요즘 퇴직금 몇 억 들고 일단 중국 진출을 시도하는데, 뜨내기들이 많아서 우리 같은 신조선족에게 피해가 크다. 여기 한국 아이들까지도 ‘칭다오에는 한국의 돈 없는 어른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온다’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 표현을 해도 되나.

(전) “자기비하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중국 내 한인 커뮤니티의 수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도피처로 생각하는 곳이 중국이고, 그런 뜨내기들이 가장 많은 동네가 바로 이곳 산둥반도다. 여권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중국에 오는 현실을 알고 하는 소리다.”

(박) “일례로 한국 학생들이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손쉽게 중국을 떠올린다. 심지어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까지 돈 써서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실정이다. 이게 한국인들의 중국 투자 수준이다.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긴데,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점은, 중국은 이미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렸고, 수천년간 한국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강대국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중국에 1억~2억원 투자하면 환율 차이 때문에 5억원 정도의 효력을 갖는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시각이다.

(길) “그게 결정적 실수고 착각이다. 1억원은 여기서도 1억원일 뿐이다. 몇 억원 들고 와서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실제 아무것도 없다. 제발 중국에서 사업할 때는 퇴직금 갖고 들어오지 마라. 그 돈은 여기에서 ‘먼저 본 사람이 임자’로 통한다. 그래도 오고 싶다면 그냥 와서 중국 사회를 꼼꼼히 살펴봐라. 어학 능력과 기술력이 뒷받침 안 된 퇴직금 정도는 1~2년이면 흔적도 없어진다.”

(박) “사실 그 정도 들고 오는 분들은 여기에서 소문도 나지 않는다. 그냥 왔다가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형편이다. 사무실 얻어서 일 좀 해볼까 하면 돈이 바닥 나서 한국 친척들에게 손 벌리고, 최악의 경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중국 현지에서 취직하여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나.

(일동) “한국 기업이 왜 한국 사람을 고용하겠는가. 아주 적게 줘도 5000위안(약 70만원)을 줘야 하는데, 이는 중국 사람을 5명 정도 쓸 수 있는 돈이다. 10년을 살아온 나도 중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직원은 필연적으로 중국인이어야 한다(중국 대졸자 초임은 1000~1200위안 수준.). 여기는 미국과 같이 가난한 한국인이 접시를 닦아 살아갈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중국인들도 ‘돈 없이 중국에 왜 왔냐?’고 질타할 정도다.”

-여기서 보는 한국 정부는 어떤가.

(길) “이야기하면 끝도 없지만 2년 전 사스 발생 때 한국 영사관이나 정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쓴소리만 전하고 싶다. 유학생들과 대기업 주재원들은 상당수가 모두 한국으로 철수한 반면, 중소기업 사장과 자영업자들만 목숨 걸고 중국인들과의 신뢰를 지켜냈다.”

-중국에서 소규모 사업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길) “98년에 시작한 사업이 시작도 못해보고 망했다. 주요 실패 요인은 합작한 중국인을 너무 믿었다는 점인데, 의사소통의 힘겨움은 물론 사업 환경도 전혀 달랐다. 선배들이 ‘사업 작게 해서, 돈 벌면 무조건 한국으로 보내고, 조직을 제대로 만들지 말고 대충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지만, 나는 그 반대로 하다가 철저하게 패배한 셈이다.”

(길) “주재원으로 생활하다가 개인사업으로 전환하는 한국인이 태반인데, 주재원들은 귀족생활을 즐기다 중국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하는 이가 거의 대부분이다. 조직이 만들어준 꽈ㄴ시라는 게 조직을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 작심하고 사기를 친 게 아니라, 관습이나 생각의 차이,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으로 인한 사기인 셈이다.”

-잘 이해가 안 된다. 사기를 당한 셈이라니.

(일동) “혼자만 이해가 안 되는 거다.(웃음)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은 여기서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한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전) “처음에 가장 실수하는 대목이 조선족과의 관계 설정에서다. 아직도 이들을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들일 뿐이다.”

(박) “조선족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한국인들은 사실 너무나 많다. 조선족이 해먹은 것에 대한 적개심인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조선족 역시 한국인들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봤고, 피해의식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쌍방과실인 셈인데 영원히 적대관계로 남을 것 같아 걱정이다.”

-결과적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을 것 같다.

(길) “그렇다. 우리 같은 신조선족은 뜨내기 한국인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애당초 선진국민들이라 존경받으며 한국에서 가져온 자존심, 긍지를 모두 잃고 말았다. 반일 시위가 일어나지만 일본인 개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존경심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인들을 선진국민으로 대우해주는 중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오) “중국 땅에서 룸살롱 차려 여자와 술 먹는 이상한 문화를 좋아할 중국인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 관광객까지 더해져 추태를 부리니 문제인 것이다.”

(전) “한국인들은 한국 땅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시위가 칭다오 시청광장에서 두 번 정도 열렸다. 학부모 회의에 가보면 차가운 눈빛이 느껴진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 못하고 예의도 없는 애들로 통한다. 중국에서 문화 수준이 중급 정도만 돼도 이제는 한국인하고 안 놀려고 한다. 허탈하지만 자업자득이다.”

(박) “중국 전문가를 빨리 양성해야 한다. 중국과 수교한 지 벌써 13년이 됐는데, 어떻게 요즘은 중국인을 상대로 오지 않고 한국인을 상대로 밥장사 하러 칭다오에 건너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오) “칭다오를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중간 교차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교회가 가장 대표적인 커뮤니티이니 기부활동을 계속 해나가면서 중국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업들을 개발하겠다. 그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진짜 신조선족을 돕는 사업도 계속 할 계획이다.”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22~25)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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