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3

2004.12.09

빼앗긴 사랑, 사라진 기억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2-02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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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사랑, 사라진 기억
    만약 사랑하는 자식이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하지만 ‘포가튼(forgotten)’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4개월 전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우리의 주인공 텔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아들이 사실은 존재한 적조차 없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텔리는 아이를 사산했고, 그 뒤로 아들이 있다고 믿어버렸다.

    ‘포가튼’에서 가장 근사한 건 바로 이 설정이다. 영화는 상심한 여자 주인공의 심장에 칼을 박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심장을 뜯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정말로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심장이 터져라 애도해온 이에게 애도의 대상이 존재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이 지금까지 품어온 사랑과 슬픔은 이제 무엇이 될까?

    근사한 설정이지만 그만큼 까다로운 설정이기도 하다. 철학적 질문도 많고 해결해야 할 드라마의 문제점도 많다. 한마디로 용감하기 그지없다고 해야 할까.

    슬프게도 ‘포가튼’은 이 용감한 설정을 그대로 살릴 만큼 담력이 큰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설정이 던져주는 모든 도전들로부터 달아난다. 따라서 영화의 해결책은 너무나 쉽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아들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도 결국 텔리의 주장이 옳다. 아들은 존재했고 무언가 거대한 음모 집단이 텔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관객들도 험상궂은 NSA(미국 국가안보국) 요원들이 주인공들을 쫓아다니고,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눈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늘로 휩쓸려 올라간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스포일러냐고? 그런 것 같지만, 거기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마시길. 이미 트레일러에서 내용의 대부분을 폭로하는 영화니까 말이다.



    ‘포가튼’은 지나치게 늦게 만들어진 영화다. 5년 전만 해도 이 영화는 괜찮은 ‘엑스파일’ 에피소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한 시간 반짜리 영화 대신, 지적이고 경제적이며 모든 아이디어들에 기회를 주는 효과적인 ‘엑스파일’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영화의 아이디어는 너무 늦게 발화되었고 할리우드 작가들과 배우들에 의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싱겁게 다루어졌다. 영화가 선택한 해결책은 초현실적이긴 하지만, 밋밋하고 개성이 부족하며 아이디어를 끌고 어디로 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포가튼’은 게으른 영화다. 적어도 굉장한 노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영화의 기본 설정을 따르기엔 지적으로 지나치게 안이했다.

    남은 건 좋은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다. 영화에서는 줄리안 무어, 게리 시니즈, 알프레 우다드와 같은 배우들이 놀랄 만큼 성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심심한 이야기에 빠진 특징 없는 캐릭터들이 탈출구를 찾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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